안소니 홉킨스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9)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7.12.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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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홉킨스 /AFPBBNews=뉴스1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 중 한 사람이다. '토르'(Thor) 시리즈의 '킹 오딘'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아스가르드의 왕이자 토르의 생부, 로키의 양부다. 홉킨스는 '토르'가 슈퍼히어로물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나중에 셰익스피어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홉킨스는 부친과 소원했던 자신의 경험 때문에 극중의 부자관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영국 스완지의 작은 극장에서 연기하던 홉킨스는 1965년에 로렌스 올리비에의 눈에 띄어서 런던의 국립극장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올리비에의 대타로 일하면서 연극을 배웠다. 그러나 연극에 싫증을 느낀 홉킨스는 영화로 옮겨갔는데 캐서린 헵번과 같이 나온 1968년 작 '겨울의 라이온'(The Lion in Winter)에서 리처드 사자심왕을 연기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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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홉킨스 / 사진=영화 '양들의 침묵' 스틸컷


안소니 홉킨스는 그 대표작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에서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미국영화연구소(AFI)는 한니발 캐릭터를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인으로 꼽았다. 소설의 원작자도 흡족해 했다고 전해진다. 같이 연기한 조디 포스터는 여우주연상, 조나단 뎀은 감독상, 영화는 작품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조디 포스터는 안소니 홉킨스가 무서워서 영화를 찍는 동안 한 번도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나중에 그래함 노턴 쇼에서 털어놓았다. 항상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영화가 배우들이 주로 카메라를 보고 대사를 하는 영화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촬영 중간 중간 휴식시간에도 피해 다녔다고 한다. 마지막 날에 포스터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홉킨스가 다가왔다. 포스터가 홉킨스에게 무서웠다고 하자 (이해가 안가지만) 홉킨스도 포스터에게 자기도 포스터가 무서웠다고 했다 한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였던 '하워즈 엔드'(Howards End, 1992),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엠마 톰슨) 후보에 오른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93),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올리버 스톤의 '닉슨'(Nixon, 1995)이 특히 인상적인 홉킨스 영화들이다. '닉슨'에 대해서는 닉슨 대통령 기념도서관 측에서 그 일부 내용에 대해 불편함을 표명한 바 있으나 영화는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홉킨스의 연기는 그 탁월함을 재차 입증했다고 여겨진다. 홉킨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Alexander, 2004)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왕의 역할을 했다.

연기는 과도해서 안 되며 저절로 우러나오게 해야 한다고 하는 홉킨스는 연기자는 마치 잠수함과 같아야 한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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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홉킨스 /AFPBBNews=뉴스1


나는 ‘왕좌의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최고의 미드 자리를 지켰던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를 빨리보기를 써가며 3주 동안 다 본 적이 있다. 6년 동안 진행된 유명 드라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소니 홉킨스도 그랬던 모양이다. 6개 시즌 모든 드라마를 2주에 완주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주인공 브라이언 크랜스톤에게 이메일을 썼다. 자기가 본 최고의 연기였다는 칭찬이다. 영화와 연기에 대한 홉킨스의 생각을 잘 읽게 해 주는 이메일이다.

"할리우드에 허장성세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진정으로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분들의 작품은 대단합니다. 정말로 놀랍습니다. 제작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엄청난 에너지는 특별한 것입니다. 그 비결이 뭔가요? 5년, 6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들이 절도를 잃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블랙 코미디가 피와 파괴와 지옥의 미로로 추락하는 모습은 마치 셰익스피어나 그리스의 비극과 같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브레이킹 배드'와 특히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에피소드를 보고 이런 찬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찬사는 크랜스톤과 제작진에게 특별한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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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홉킨스 / 사진='아미스타드' 스틸컷


홉킨스는 철저히 준비하는 배우다. 대사는 최다 200번까지 반복해서 연습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익숙해져야 중단한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Amistad, 1997)를 찍을 때 일곱 페이지 길이의 법정 대사를 단 한 번의 테이크로 끝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화가 있다. 스필버그는 홉킨스에게 위압감을 느껴서 '토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내내 '안소니경'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촬영이 끝난 후에는 대사를 완전히 잊어버린다고 한다. 배우들이 몇 년씩 자기 대사를 기억하는 것과는 반대다.

평생 누군가와 많이 친해 본 적이 없다는 홉킨스는 한 때 심각한 알콜중독자였다. 1975년에 술을 끊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어떨 때는 몇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있기만 한다고 한다. 목적지 없이 며칠 동안 차를 달리기도 하고 두 달 동안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다. 마음속의 화를 삭이지 못하면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홉킨스는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지 못한다면 인생이 창문 없이 닫혀있는 방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담배도 끊고 체중 감량에도 성공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특히 근사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는 스타의 경우 그 스타와 그 캐릭터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사생활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돌아다니면 실망도 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잭 니콜슨이 좋은 예다. 스타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에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배우도 자신의 개성을 가지고 장단점을 골고루 가진 '사람'이다. 스타는 공인이기 때문에 애써 언행을 조심할 뿐이고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살아가면서 고통, 상실감, 분노, 증오 등으로 힘든 일이 있을 것이다. 영화 캐릭터를 통해 비치는 절제되고 진지한 홉킨스의 개성은 그런 개인적인 어려움들을 극복하면서 힘겹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80세를 맞이한 홉킨스가 지미 킴멜 쇼에 나와 인생살이의 교훈으로 든 것은 "계속 가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Keep going. Never give up.)였다. 홉킨스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바로 킹 오딘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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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홉킨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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