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4년 115억원에 계약한 김현수 /사진=LG트윈스 제공 |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리빌딩의 교과서다. 애스트로스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지구 꼴찌. 2014년 최하위를 면한 뒤 2015년 10년 만에 가을 야구를 맛봤다. 2017년 아메리칸리그 최강팀으로 돌아온 애스트로스는 창단 첫 월드시리즈 정상에 입 맞춘다.
애스트로스가 리빌딩에 나선 건 2012년이다. 연봉 랭킹 상위 5인을 모두 팔았다. 연봉 총액이 2500만 달러로 급감했다. 2010년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대신 상위 라운드 유망주를 모을 수 있었다. 2011년 1라운드 11순위 조지 스프링어, 2012년 1라운드 1순위 카를로스 코레아, 2015년 1라운드 2순위 알렉스 브레그먼은 2017년 우승 주역으로 성장했다.
때문에 파이어 세일, 유망주 수집, 인고의 세월 등이 리빌딩을 대표하는 단어로 떠오른다.
하지만 육성이 곧 리빌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 경우도 있다.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는 2014시즌을 앞두고만 5억 달러(약 5400억 원)가 넘는 돈을 썼다. 단일 스토브리그에 5억 달러 돌파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다. 포수 브라이언 맥켄 8500만 달러(약 917억 원), 외야수 제이코비 엘스버리 1억 5300만 달러(약 1650억 원), 외야수 카를로스 벨트란 4500만 달러(약 485억원),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 1억 7500만 달러(포스팅 2000만 달러 포함, 약 1900억 원) 등을 모조리 사들였다. 데릭 지터와 구로다 히로키를 붙잡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돈을 썼다.
즉, 무너진 팀을 재건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 것이다. 육성은 하나의 좋은 선택지다. 리빌딩과 동의어가 아니다. KBO에서는 두산과 넥센이 야수 육성을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리빌딩을 잘한다고 하진 않는다.
KBO리그에선 애스트로스처럼 리빌딩에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일단 풀이 좁다. 유망주 레벨도 다르다. 1차 지명 혹은 2차 1라운드 신인이라고 대박을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양키스와 같은 방식을 택한 팀은 있었다. 한때 '돈성'이라 불렸던 삼성 라이온즈다. 삼성은 우승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선수를 영입했다. 임창용, 조계현, 김기태, 김현욱 등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FA 제도가 시행된 후에는 양준혁, 박종호, 박진만, 심정수를 사들이고 선수협 파동 문제가 있었던 마해영도 끌어 안았다. 성적을 위해 외부 수혈로 선수단 전체를 갈아 엎은 것. 결국 삼성은 2002년 창단 첫 우승을 맛본 뒤 2000년대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LG의 행보는 재미있다. 리빌딩을 선언하며 베테랑을 정리한 LG가 FA 김현수를 4년 총액 115억 원에 잡았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금액이다. 그렇다고 양키스나 삼성처럼 돈으로 도배를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김현수 한 명만 잡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김현수 가세로 당장 우승전력이 갖춰지느냐 묻자면 역시 또 아니다. 일견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다.
아마 LG는 KBO리그서 가장 오랜 기간 리빌딩을 부르짖은 팀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오랜 기간 리빌딩에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퐁당퐁당 포스트시즌에는 나가고 있으나 리그를 대표할만한 스타는 아직도 박용택 한 명뿐이다.
LG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다. 20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LG도 FA 큰 손이었다. 라이벌 팀의 FA 홍현우, 박명환, 진필중 등을 거액에 데려왔다. 2009년에는 당해 FA 야수 최대어로 꼽힌 이진영과 정성훈을 붙잡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외부 FA에 열을 올렸다가 풀이 죽은 LG는 육성으로 기조를 전환한다. 2009년 이후에는 내부 FA 단속에만 집중했다. 대어급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구리 2군 훈련장을 이천으로 옮겼다. 'LG 이천 챔피언스파크'로 명명해 국내 최고의 훈련 시설을 설립했다. 2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다. 잠실구장과 똑같은 크기로 지었다. 헌데 여기도 성과가 미미하다. 이천이 배출한 스타를 누구라고 자신 있게 꼽기 힘들다.
LG가 유망주 육성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야구인들은 너무 많은 자리에 너무 많은 선수가 경쟁하기 때문이라 본다. 선택과 집중이 없다. 확실한 주전이 박용택, 유강남, 오지환 정도라 빈자리가 많아서다. 1자리를 두고 1~2명이 싸울 환경이 아니다. 2~3자리에 4~5명이 후보다. 기회가 줄어들고 짧은 시간에 보여줘야 할 건 많으니 부담이 가중된다. 악순환이다.
LG는 중심 축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경쟁할 유망주 후보를 줄이고 포지션을 간추리는 작업이다. 하루 하루 승리를 다투는 전쟁터와 같은 1군에서 성적과 육성을 동시에 잡기는 어렵다. 타선에 힘을 갖추는 작업은 곧 성장이 필요한 유망주의 부담을 덜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제 3의 길을 찾은 것이다. 전부 육성, 전부 구매도 아닌 육성과 구매 투트랙이다. 2016 시즌이 끝나고 선발 축을 세울 차우찬을, 2017 시즌이 끝나고는 타선과 외야에 중심이 될 김현수를 그래서 영입했다.
차우찬 효과는 이미 올 시즌 드러났다. 최소 4선발까지 안정적으로 돌아가면서 5선발 후보였던 임찬규와 김대현이 부담을 덜고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김대현은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대표팀에 승선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김현수를 통해 야수들의 각성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