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10)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7.12.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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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아저씨' 스틸컷


세상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 리암 니슨의 딸.


둘째, 원빈네 옆 집에 사는 여자 아이.

셋째, 키아누 리브스가 키우는 개.

흔히 느와르 하면 유혈이 낭자한 집단 난투극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국내에서는 청불 조폭영화나 조폭과 경찰의 대립을 다룬 영화들이 여기에 속한다. 최민식, 하정우의 발군 연기를 볼 수 있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이정재와 황정민의 '신세계'(2012), 여성 느와르 개척자인 김혜수의 '차이나타운'(2014), '미옥'(2017) 같은 영화들이다.


아니면 원빈('아저씨', 2010) 이나 키아누 리브스('존윅', 2015), 우마 서먼('킬빌 1부', 2003) 같은 전지전능하고 열 받은 캐릭터가 혼자서 범죄 집단을 싹 쓸어버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느와르, 또는 누아르(noir)는 영화사에서 훨씬 더 다양하고 폭넓은 종류의 영화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학술적인 연구도 상당히 활발한 분야다. 비전문가인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느와르는 어두운 분위기의 범죄물이나 스릴러를 말하는데 폭력적인 장면의 연출이 필수다. 화면도 대개 어두운 톤으로 처리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할리우드 B급 영화들 중에 그런 계통인 것에다 이름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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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씬 시티' 스틸컷


나는 프랭크 밀러 감독의 '씬 시티'(Sin City, 2005)가 가장 대표적인 느와르 분위기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장르의 영화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오래 전의 것으로는 죠셉 코튼의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가 기억나는 대표적인 느와르 작품이다.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은 험프리 보가트의 '명탐정 필립'(The Big Sleep, 1946)과 잭 니콜슨의 '차이나타운'(Chinatown, 1974)을 역사상 최고의 느와르 1위, 2위로 선정해놓고 있다.

리암 니슨의 '테이큰'(Taken, 2008)을 느와르로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비슷한 분위기다. 전직 CIA 베테랑 특수요원을 몰라보고 감히 건드린 '허접한' 건달들이나 조폭을 무자비하지만 깔끔하게 손 봐 준다는 설정이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건달들이 주인공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모르고 함부로 구는 장면을 좋아한다 - 김수현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 묘하게 감정이 이입되고 '몇 초 후에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면서 매우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쁜 놈'들이 다 확실하게 죽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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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 스틸컷


복수극을 그린 영화들도 느와르이거나 느와르와 비슷하다. 국내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가 있는데, '올드보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다. 이탈리아 로마 여행 중에 시내의 한 영화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흐뭇해 했던 적이 있다. 2004년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80%다. 2013년에 스파이크 리가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 했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킬빌'은 물론이고 덴젤 워싱턴의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2004), 최근작으로 에밀리 블런트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Sicario, 2017)가 있다. '시카리오'는 느와르와는 좀 거리가 멀지만 내가 본 최고의 복수영화다.

홀로코스트 복수극 느와르인 독일 영화 '피닉스'(Phoenix, 2014)도 수작이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8%다. 전쟁이 끝나고, 자신을 배신해 강제수용소로 보냈던 남편을 찾는 한 카바레 가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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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명탐정 필립' 스틸컷


느와르는 앞으로도 중요한 장르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들은 계속해서 그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외, 운명의 굴레, 도덕적 모호성, 자기 파괴적 행위에서 오는 왜곡된 즐거움 같은 문제들이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면서 한두 번은 그런 어두운 문제들과 씨름하게 된다. 느와르 영화의 캐릭터들은 우리가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금욕적이고 극기적인 결단이라든지 역설적인 무심함 같은 것들이 해법이라고 느와르 영화들이 가르쳐 준다.

아니면 우리 안의 냉소와 자조가 느와르 영화가 담고 있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쓸쓸함'(김혜수의 표현이다)과 어울려 생성시키는 역설적인 즐거움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느와르 영화를 대하는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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