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솨이 폭로'가 점화시킨 美·中 '올림픽 전쟁'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1.12.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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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 /AFPBBNews=뉴스1
2022년 2월에 열릴 예정인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미·소 냉전시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청·백군 운동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선수단은 올림픽에 참가하지만 정부 대표단은 올림픽에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표면적 이유는 중국의 인권 문제 때문이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 탄압과 홍콩 보안법 실시에 대한 국제적 비난인 셈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신(新) 냉전 구도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제 시장에서 경제 지배력을 놓고 격돌하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중국의 인권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적 보이콧'의 빌미가 된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 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 장가오리(75)의 테니스 선수 펑솨이(35)에 대한 성폭행 사건은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한 직접적 요인으로 분석된다. 서방세계가 장가오리 사건을 중국 공산당의 인권 유린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봤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터진 장가오리 사건에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공분을 산 것과 관련이 깊다. 펑솨이는 지난 11월 2일 중국 소셜 미디어 웨이보를 통해 장가오리 전 국무원 부총리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온라인상에 펑솨이의 폭로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삭제했다.

국제적으로 장가오리 사건에 대한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의 주필은 펑솨이가 테니스 행사에 참석한 장면과 일행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자신의 트위터에 동영상으로 올렸다. 펑솨이 신변에 대해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 동영상이 촬영된 시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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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오리 중국 전 부총리. /사진=뉴스1
또한 중국 관영방송 CGTN은 펑솨이로부터 받았다는 이메일까지 공개했다. 성폭행 폭로 내용을 부인하는 펑솨이의 이메일이었지만 곧 조작 의혹만 불거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국제 사회는 중국 미디어의 사건 조작·은폐 시도를 더욱 날카롭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사건의 당사자인 장가오리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투명하고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장가오리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경우 국내외적 파문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고민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장가오리 사건이 단순히 한 고위급 정치인의 범법행위가 아니라 중국 권력자들 사이에 만연해 왔던 성폭행 문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시진핑(58)주석의 반부패 캠페인 이후 중국 인민들은 공산당 고위 간부의 성폭력 등 권력 남용 사실을 자주 접해왔다.

또한 장가오리와 시진핑 주석과의 남다른 인연이 사건 조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중국 석유 관련 국영업체를 좌지우지하는 공산당 정치 파벌인 '석유방(石油幇)'의 대표주자였던 장가오리는 1997년 선전(深?)시 서기에 발탁됐다. 당시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1913~2002년)은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선전에 머물렀다. 이 때 장가오리가 시중쉰과 그의 부인을 극진히 모시면서 훗날 주석이 되는 시진핑과 가까워졌다.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 장가오리 사건을 어떻게 결말지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향후 대응방식에 따라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참여국가 숫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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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엠블럼. /사진=뉴스1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의지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올림픽은 정치와 무관했던 적이 없었다. 올림픽이 국가와 체제 간의 경쟁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올림픽 개최국 자체의 국내 정치가 대회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올림픽의 가치는 물론 메달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미·소 냉전 시기에 올림픽은 겉으로 보면 '스포츠 축제'였을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스포츠 전쟁'에 가까웠다. IOC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의 보이콧 사태로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이 '스포츠 전쟁'의 국제적인 열기를 발판으로 올림픽 상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후 전개된 미국과 중국의 올림픽 메달 경쟁은 또 다른 스포츠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는 2008년부터 본격화됐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에서 중국은 금메달 수(48개)에서 미국(36개)을 제압하고 스포츠 최강국 자리에 올랐다. 이후 미국은 2012년과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총력전을 펼쳤고 중국을 압도했다. 올 해 열렸던 도쿄 올림픽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미국(39개)이 금메달 1개 차이로 중국(38개)을 이겼다.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냉전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 전부터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이끌고 있는 '외교적 보이콧' 확산에 변수가 될 장가오리 사건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장 안팎에서 올림픽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IOC가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도 잘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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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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