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잠실에서, 팬을 가장 사랑하던 이가 선수생활을 마감하다

잠실=양정웅 기자 / 입력 : 2022.04.04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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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이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개막 2차전 종료 후 열린 자신의 은퇴식에서 두산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마지막 날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팬만을 위했다.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유희관(36)이 자신을 응원해준 '10번 타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시했다.

유희관은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개막 2차전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진행했다. 지난 1월 은퇴를 선언한 후 약 3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마운드를 떠나게 됐다.


장충고-중앙대 출신의 유희관은 2009년 두산에 입단, 지난해까지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통산 101승 69패 평균자책점 4.58을 기록했다. 시속 130km 내외의 빠르지 않은 구속으로도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며 특이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특히 유희관은 특유의 쇼맨십을 바탕으로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선수였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상의 탈의 퍼포먼스, 2016년 통합우승 후 보여준 아이언맨 세리머니 등을 통해 팬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경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유희관은 "은퇴식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슬픈 은퇴식이지만 최대한 유쾌하게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날 선발이었던 최원준(28)에게 "지면 관중들이 열받아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오늘 무조건 이겨라"고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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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맨 앞)이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개막 2차전 경기를 앞두고 시구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이날 시구자로 나선 유희관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야구장에서 마지막으로 공을 던졌다. '아리랑볼'이라는 별명답게 아주 느린 커브를 던진 그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관중석으로 돌아온 유희관에게 많은 팬들이 찾아왔다. 그는 일일이 사인과 사진 촬영에 응하며 선수로서의 마지막 팬 서비스가 될 수도 있는 자리를 알차게 보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쉴 틈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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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앞줄 맨 왼쪽)이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개막 2차전 경기에서 응원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선발 최원준의 6이닝 무실점 호투와 4번 타자 김재환(34)의 결승 솔로 홈런에 힘입어 두산은 이날 경기를 1-0으로 승리했다. 선·후배들이 떠나는 동료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경기 후, 드디어 은퇴식이 거행됐다. 양 팀 주장과 김태형(55) 두산 감독이 꽃다발을 증정했고, 100승 기념 트로피도 전달됐다. 지금까지 야구선수 유희관를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이 꽃을 들고 등장하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어 상영된 은퇴 기념 영상에서는 동료 선수들과 유재석, 조세호, 케이윌, 송가인 등 연예인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과거의 전우였던 양의지(35·NC)가 "희관이형, 나야"라고 말할 땐 환호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유희관은 마이크 앞에 서서 은퇴사를 낭독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 듯 쉽게 입을 떼지 못한 그는 "'두산 베어스 유희관 선수'라고 말을 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속상하고 안타깝고 슬픈 하루였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함께 울고 웃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과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한 유희관은 마지막으로 '최강 10번 타자, 두산 베어스 팬'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는 "잘할 때나 못할 땨나 항상 응원과 격려, 질책을 주셔서 더욱 힘을 내고 야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제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다"고 말한 유희관은 "저는 이제 떠나지만 두산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아낌없는 응원 부탁드린다"며 변함 없는 애정을 부탁했다. 은퇴식을 마친 그는 1루쪽 관중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환호에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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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이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개막 2차전 경기 후 자신의 은퇴식에서 은퇴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지난 1월 하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유희관은 "(팬들에게) 그라운드에서 유쾌했던, 팬들을 가장 사랑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두산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두산을 넘어 프로야구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예전의 인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KBO 리그는 인기 하락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예년 같으면 만원 관중이어야 할 잠실 개막전에 빈자리가 많이 보일 지경이었다. 3월 취임한 허구연(71) 신임 KBO 총재도 "야구팬이 없는 프로야구는 존재 가치가 없다"면서 선수들에게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날까지도 팬들을 언급하며 사랑을 보낸 유희관의 은퇴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그는 야구인생 제1막을 내리지만, KBO 리그는 제2, 제3의 유희관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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