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지명 거부 후 11년... 프로 첫 승 순간 "부모님 생각났어요"[★잠실]

잠실=김동윤 기자 / 입력 : 2022.04.1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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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윤정현이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 정규시즌 경기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동료들의 물 세례를 받고 있다./사진=OSEN
"(첫 승 순간) 항상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2012년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지명을 거부한 후 11년, '해외파' 윤정현(29·키움)이 공식 석상에서 이 한마디를 건네기까지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윤정현은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 정규시즌 경기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승을 챙겼다.

상황은 나름 긴박했다. 키움이 1-2로 뒤진 4회말, 선발 최원태의 제구가 흔들리며 키움은 2사 1, 2루 위기에 놓였다. 홍원기 감독의 선택은 투심을 주 무기로 장착한 윤정현이었다. 김인태에게 던진 5구째 투심 패스트볼(시속 134㎞)은 2루 베이스 근처로 흘러갔다. 유격수 김주형이 몸을 날려 막아냈고 2루 커버를 들어온 김혜성에게 송구해 어렵사리 이닝을 마무리했다.

5회초 빅이닝으로 키움이 6-2로 앞선 5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두산의 중심타선을 상대했다. 호세 페르난데스를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나 싶더니 김재환에게 우중간 2루타, 강진성에게 볼넷 후 포일을 범해 1사 1, 3루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후속 두 타자를 연거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스스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다.


경기 후 윤정현은 "좀 긴장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무조건 '이겨야 한다, 막아야 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등판 상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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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윤정현이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 정규시즌 경기에서 투구하고 있다./사진=OSEN


KBO리그 데뷔 4시즌 만에 거둔 프로 첫 승이었다. 세광고를 졸업한 윤정현은 2012년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8라운드 전체 73번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다. 지명 거부 후 2012년 동국대로 진학했지만, 그마저도 개인 사정으로 그만뒀다. 약 1년 뒤인 2013년 7월에야 메이저리그(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프로 무대에 나섰다.

하지만 빅리그의 벽은 높았다. 로우싱글A 승격이 고작이었고 2016시즌을 마친 뒤 국내로 돌아와 현역으로 군 문제부터 해결했다. 이후 2019년 KBO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했고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넥센(현 키움)의 선택을 받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윤정현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니 이것도 다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괜찮다"고 담담하게 속내를 밝혔다.

늦은 나이에 도전한 KBO리그도 만만치 않았다. 입단 후 주 무기 슬라이더를 보조할 구종으로 투심 패스트볼도 새로 익혔지만, 새 구종이 쉽사리 손에 익진 않았다. 적응에도 벅찬 그에게 드래프트 동기이자 같은 해외파 이학주, 이대은 등과 비교는 관심 밖이었다.

윤정현은 "1승의 어려움을 2년 차(2020년) 때 알았다"면서 "(해외파라)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이학주, 이대은 형처럼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고 난 1년이라도 더 오래 운동하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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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윤정현이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 정규시즌 경기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동료들의 물 세례를 받고 있다./사진=OSEN


절치부심한 지 3년째... 그제서야 묵묵히 노력한 결과가 실전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1군 무대에 올라온 윤정현은 10경기 평균자책점 1.46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9월 25일 롯데전부터는 8경기 연속 무실점이었다. 올해 2경기 무실점까지 포함하면 10경기 연속 무실점 경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윤정현은 "프로에 늦게 와서 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3년 차(2021년)까지 보여드린 것이 없었다"고 아쉬워하면서 "그래서 올해 스프링캠프부터는 어떻게든 1군에서 오래 던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운동했다"고 전했다.

그의 등에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5·토론토)의 등번호인 99번이 새겨져 있다. 입단하자마자 팀에서 정해준 번호다. 윤정현은 "등번호가 (아직 내겐) 많이 무겁다.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고 미소 지으면서 "기록이나 보직은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안 다치고 (건강하게) 한 시즌을 치르고 싶다"고 굳은 각오를 보였다.

이날 윤정현의 프로 데뷔 첫 승은 키움 선수단에도 큰 기쁨이었다. 수훈 인터뷰를 한 윤정현의 양옆으로 키움 선수단이 몰려들었고 곧 그를 향해 물세례가 이어졌다. 홍원기 키움 감독 역시 "윤정현의 프로 데뷔 첫 승을 축하한다. 중요한 순간 상대 타선을 잘 막아줬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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