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 이전..조승우·박정민이 있었다[문바세]

[문화콘텐츠가 바꾸는 세상]-①드라마가 바꾸는 세상(①-1)

윤성열 기자, 김미화 기자, 안윤지 기자, 김나연 기자 / 입력 : 2022.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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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tvN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창간기획] 특별하며 또 평범한 이야기들..드라마·영화 속 장애 어떻게 표현됐을까

문화 콘텐츠가 지닌 파급력과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로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한국 사회의 부의 양극화를 꼬집은 영화 속 반지하는 저소득층 주거 환경을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이 됐다. 정부는 당시 '기생충' 흥행을 계기로 주거 복지를 위한 반지하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계획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침수 피해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현실 속 반지하는 더 참혹하고 참담했다.


올해 대박을 터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했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천재 변호사 우영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영우 같은 능력을 지닌 자폐인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는 한계점도 드러냈다.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시대의 흐름은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스타뉴스는 창간 18주년을 맞아 세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받아들인 콘텐츠에 대해 짚어보고,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K-팝, K-드라마, K-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회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본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 속 장애인 캐릭터는 한계점이 분명했다. 어떤 상황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상징적 인물로 표현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달라지고 있다. 주체적으로 상황을 주도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녹아들기도 한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장애가 불편하게 보였던 사회..'우영우'가 비춘 현실과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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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포스터
2005년은 장애인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 작품이 유독 많은 해였다. SBS '프라하의 연인'과 '그 여름의 태풍', MBC '슬픈 연가' 등 다수의 드라마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윤규(프라하의 연인 中)는 그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소모적인 캐릭터에 그쳤고,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봉규(열여덟 스물아홉 中)는 형과 달리 소극적이고 무미건조한 인물로 그려졌다. 근이양증 장애를 가진 지훈(그 여름의 태풍 中)은 광석과 미령의 불륜으로 인한 업보로 비쳐 비판받았다.

2010년대에 들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송혜교는 2013년 방영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시각장애인을 연기했다. 극 중 풀 메이크업하고 하이힐을 신은 시각장애인의 모습은 현실과 다른 왜곡된 설정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는 시선도 공존했다.

시간이 흘러 장애인은 점점 더 틀에 박혀 있는 캐릭터, 부차적인 인물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상태,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우와 tvN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가 대표적이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오정세가 연기한 상태는 자폐 스펙트럼(ASD)을 지닌 인물이었다. 상태는 동생의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주요 인물 간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기존 공식을 탈피한 힐링 휴머니즘을 선사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영우가 사회에 어떤 식으로 녹아들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영우는 단지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회사에 취업하고 사내 연애도 하는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 작품 속에 존재한다. 영우 주변엔 그를 질투하고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인물도 등장한다. 영우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다. 또한 '나'로만 이뤄진 세계에서 '너'를 받아들이며 드라마 캐릭터로도 완전한 성장을 이룬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 같은 스토리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한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우리들의 블루스'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쌍둥이 언니 영희 역은 실제 장애인 배우 정은혜가 연기했다. 영희는 옴니버스 형태로 꾸며진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당당히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더 이상 장애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정은혜의 드라마 출연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단발성 이슈를 넘어 직업 및 방송 시스템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가다.





'증인' 관객 마음 움직인 장애인의 삶..사회 향한 고발 '도가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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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증인', '도가니' 포스터
영화는 시대를 대변한다. 시대를 앞서가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고, 발맞춰가기도 하며 때로는 시대에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블 히어로 같은 대단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춘기 소년같이 우리 주변의 인물들인 경우도 많다. 사회 공동체에 함께 어우러져야 할 몸이 불편한 사람들,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영화 속 주인공으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장애인을 소재로 삼은 영화들은 작게는 관객의 마음에 변화를 불러왔고, 크게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증인'(2019)은 살인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로 법정에 올라야 하는 자폐 소녀 지우의 이야기를 그렸다. 지우 역을 맡은 김향기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

'증인'은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집필한 문지원 작가의 작품이다. 문 작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에 '증인'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연결해 보는 시선도 많다. '증인' 속 지우의 꿈이 다른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치 지우가 성장해 영우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 작가가 만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두 캐릭터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작품 속 이들 주인공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를 극복하고 성장한다. 이런 주인공들은 장애가 없는 여느 주인공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인식을 변화시켰다.

한물간 복서와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동생의 이야기를 그린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이나, 지체 장애와 지적 장애 형제가 서로 부족한 면을 채우며 살아가는 '나의 특별한 형제'(2019) 등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영화들도 이런 흐름에 발을 맞췄다. 어떤 큰 구조적인 변화보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삶을 스크린에 그려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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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내겐 너무 소중한 너' 포스터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며 만든 영화도 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조명한 '도가니'(2011)는 장애인 인권 실태를 고발한 영화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청각장애인학교 교직원의 장애인 성폭행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됐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인화학교 사건의 재수사와 시설 폐쇄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폭력과 학대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된 것. 경찰은 사건을 재수사했고, 국회는 일명 '도가니법'을 개정해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2021)는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헬렌 켈러 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이동도 하지 못하고 의사소통도 하지 못한 채 어두운 곳에서 사는 시청각 장애인이 1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도가니'와 같은 큰 사회적 변화를 몰고 오진 못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애 아동이 노년까지 행복하길"..'니얼굴' 정은혜가 보여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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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의 정은혜 작가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2022.06.17
우리는 많은 작품 속에서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만났다. 자폐 가족의 현실을 그린 영화 '말아톤'(2005)의 조승우가 맡은 초원이가 대표적이다. '오아시스'(2002)의 한공주, '맨발의 기봉이'(2006)의 기봉, '7번방의 선물'(2013)의 용구,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의 오진태 또한 영화 속 대표적인 장애인 캐릭터다.

이들은 주인공이지만 혼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영화 속 장애인에게는 크고 작은 차별이 존재했고, 이들의 곁에는 도움을 주는 존재가 필요했다. 코믹 요소를 가미하면서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자연스럽게 다소 어둡고 슬픈, 때로는 불편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 '니얼굴'(2022)의 주인공 정은혜는 다르다. '니얼굴'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발달 장애인 은혜가 문호리리버마켓의 인기 셀러로 거듭나며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15일 만에 1만 관객 돌파라는 쾌거를 이루며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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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은혜 /사진=tvN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 캡처, 영화 '니얼굴' 예고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로도 얼굴을 알린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의 일상이 그려지는 '니얼굴'은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다. 정은혜가 사람들을 만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림을 통해 힐링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여정을 그리면서 서로 웃고, 기뻐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일상이 있는 그대로 그려진다.

정은혜의 어머니이자 아티스트 선배 장차현실 작가와도 '현실 모녀' 케미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정은혜의 행보는 발달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6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장차현실 작가는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드라마 출연과 영화 개봉 이후 발달 장애인 부모님들에게 '희망이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장애인의 생은 어떻게 펼쳐질지 가늠을 못 한다. 그래서 자꾸 롤모델을 찾게 되고, 잘 키워진 장애인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은혜가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드라마나 영화가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얘기를 하면서 관심을 끌게 됐다"며 "장애 아이를 가졌을 때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주는 세상에서 노년까지 행복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장애인 실상 미화된 부분도.." 인식 나아졌지만 갈 길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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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 진태 역할을 연기한 박정민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예전보다 조금 나아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드라마나 영화가 보여주는 장애인의 모습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보다 '서번트 증후군'(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겪는 사람이 기억과 암산 능력, 퍼즐 맞추기, 음악, 미술 등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 같은 특별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에, 과장되거나 판타지적인 부분도 많다.

이에 전문가들은 장애인을 좀 더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디어에서 장애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비장애인들의 인식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대외협력국 염민호 국장은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가 장애인 문제를 다루고 사회적으로 드러낸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업성을 띤 극이다 보니 장애인 실상에 대해 미화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염 국장은 "자폐성은 간혹 드라마처럼 한쪽 분야에 뛰어난 소질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극히 드물다. 자폐 장애인이 '뭐든 하나는 잘하겠다'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미디어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스페셜하다는 측면으로만 접근한다. 일반적인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이 끼어들 소재가 없었다. 앞으로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 자폐 아동 모임 학부모도 스타뉴스에 이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자폐아의 모습은 대부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천재의 모습으로 많이 나온다"며 "실제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많은데도,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부분도 많다"고 밝혔다.

특수장애교육의 교육자인 한 전문가는 "'우영우'가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핵심은 장애를 가졌지만 잘 이끌고 적절한 교육지원을 하면 그가 가진 장점과 능력을 계발해 훌륭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장애를 가졌지만 가능한 활동, 참여의 가능성을 우선 계발, 신장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는 적절한 지원과 제도를 마련해야 함을 강조한다. 최근의 영화나 드라마는 이런 관점을 크게 반영한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아직도 미디어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서번트 증후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만큼 중증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이나 계발도 중요하다"며 "아직도 우리 사회의 장애 이해 수준은 낮은 편이다. 법과 제도의 마련은 어느 정도 구비했으나 체계적인 지원체계가 미흡하다.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고 한숨과 눈물로 나날을 살아가는 부모의 슬픔과 노력을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충분히 감동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성열 기자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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