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 대한민국과 레바논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른바 '혹사 논란' 속에 결국 탈이 났다. 당시 손흥민은 소속팀 일정 탓에 대표팀 소집일보다 하루 늦게 대표팀에 합류했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 등 피로가 가중된 가운데 입국한 지 50시간도 채 되기도 전에 이라크와 첫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당시 손흥민은 "유럽에서 경기하고, 바로 와서 시차 때문에 잠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대표팀 훈련 중 종아리 근육 염좌 부상으로 이어졌다. 소속팀 토트넘으로 복귀한 뒤에도 부상 여파로 2경기를 결장해야 했다.
비단 이 시기뿐만 아니라 손흥민은 부상이 아닌 한 국내에서 열리는 월드컵 예선이나 A매치 때마다 빠짐없이 부름을 받았다. 지난 6월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손흥민은 2019~202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세 시즌 간 무려 22만 3637㎞를 비행했다. 손흥민은 스스로 혹사 논란에 늘 선을 그었지만, 그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늘 제기되는 문제였다.
그런 손흥민은 '이번에도' 긴 비행을 통해 입국했다. 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과의 평가전을 위해서다. 그나마 1년 전과 달리 대표팀 합류일과 첫 경기 사이에 여유가 있지만, 소속팀에서 4경기(선발 3경기)를 뛰었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엔 무려 9경기(선발 8경기)를 소화하고 귀국길에 올랐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소속팀 강행군뿐만 아니라 장거리 이동과 시차 적응 등 컨디션이 정상일 리 없다는 의미다.
축구대표팀 소집 이튿날인 20일 비대면 인터뷰 중인 손흥민. 당시 손흥민은 "잠을 너무 못 자서 첫 훈련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 본선 진출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 평가전을 추진하면서 자초한 위험 요소들이기도 하다. 아시아권만 하더라도 일본은 독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스페인 등 유럽으로 이동해 평가전을 치른다. 심지어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조차 오스트리아로 이동할 정도다. 마지막 평가전 기회인 만큼 중립 지역에서 더 나은 강한 팀들과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르겠다는 '상식적인 판단'에서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아시아 선수들 가운데 한국 선수들만 국내 평가전을 위해 장거리를 이동한 셈이다.
물론 국내가 아닌 곳에서 평가전을 치른다고 부상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중립 지역에서 평가전을 치르면 K리거들이 같은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월드컵 진출국들과는 유일하게 '역행'을 택하는 바람에 위험한 변수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은, 특히나 일부 유럽파 비중이 큰 벤투호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인데도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는 데다, 코스타리카와 카메룬 모두 일부 핵심 선수들이 빠지면서 최종 모의고사의 의미는 이미 많이 퇴색된 상태다. 여기에 만에 하나 유럽파 선수들의 부상이라도 나오게 되면 이번 국내 평가전 결정은 더욱 최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조규성(전북) 조현우(울산)가 소속팀 경기에서 당한 부상 탓에 잇따라 낙마하면서 대표팀 내 '부상 경계령'이 떨어진 가운데, 벤투 감독과 축구 팬들의 걱정만 더 늘어난 모양새다.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