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유니폼 '검은 별', 가슴 아픈 역사의 상징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2.11.29 16:08 / 조회 : 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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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모하메드 살리수(왼쪽)가 28일 한국과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아프리카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칭에는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카메룬의 별칭은 '불굴의 사자들'이고 세네갈 대표팀에도 '테랑가의 사자들'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28일 한국과 H조 조별리그에서 맞붙은 가나는 예외다. 가나의 별칭은 '검은 별'이다. 유니폼에도 검은 별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칭이 '검은 별'이 된 것은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가나는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은 아프리카 국가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독립했다. 1957년 독립한 가나의 초대 대통령 콰메 은크루마(1909~1972)는 축구를 통해 국가 정체성을 세우고자 했다. 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축구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단결과 연대를 할 수 있는 무대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가 1963년 6개 아프리카 국가가 참가하는 축구대회를 개최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은크루마는 아프리카의 단합을 이끌어 내기 위한 '범(凡)아프리카 주의'의 선구자였고 축구는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찾은 '범(凡)아프리카 주의'의 원류는 '검은 별(Black Star) 여객선' 라인이었다. 검은 별 여객선은 노예로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끌려가 비참한 생활을 했던 아프리카 사람들을 고국으로 보내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여객 라인은 미국의 흑인 지도자 마커스 가비(1887~1940)에 의해 1920년대에 운영됐다. 은쿠루마 대통령은 가비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가나 축구 팀과 '검은 별'을 연결시켰고 이후 가나 축구의 상징은 '검은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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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쿠두스가 28일 한국과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스1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가나 대표팀은 '검은 별' 여객선처럼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던 가나 혈통의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그래서 가나는 귀화 선수만 5명이었다. 한국전에 출전한 이냐키 윌리엄스(28·아틀레틱 빌바오), 타릭 램프티(22·브라이턴 앤드 호브 앨비언)와 첫 골을 넣은 모하메드 살리수(23·사우스햄튼)는 모두 가나에서 태어니지 않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조국 가나를 택한 선수들이었다.

가나는 선수들뿐 아니라 대표팀 스태프도 가나 혈통의 외국인을 영입했다. 선수 시절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등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크리스 휴튼(63)은 그의 아버지의 나라 가나를 위해 월드컵을 앞두고 가나의 기술고문 역할을 맡았다.

또한 미들스버러 수비수 출신의 조지 보아텡(47)도 가나의 코치로 활약 중이다. 가나 혈통의 보아텡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아스톤빌라 U-23 팀의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휴튼과 보아텡은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가나 선수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며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외국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의 귀화와 모국 혈통의 코치들이 합류한 가나는 강했다. 특히 한국과 경기에서 2골을 성공시킨 모하메드 쿠두스(22·아약스)는 왜 그가 가나의 에이스인지를 입증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쿠두스는 소속팀 아약스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유망주로 전 아약스 감독 에릭 텐하흐(52·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부터 잠재력이 큰 선수로 평가받았었다.

2-2 동점상황에서 터진 쿠두스의 골은 가나에는 환희의 골이었지만 한국에는 통한의 골이 됐다. 2골을 먼저 내줬지만 후반전에 2골을 따라붙어 한국의 기세가 치솟았던 상황에서 허용한 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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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의 조규성. /사진=뉴스1
한국 축구의 월드컵 성공 여부는 16강 진출과 직결돼 있다. 그래서 반드시 승리를 챙겼어야 했던 가나전 패배는 뼈아프다. 마스크 투혼을 펼쳤지만 평소보다 '폼'이 떨어진 손흥민(30·토트넘)이나 부상 후유증이 있던 김민재(26·나폴리), 역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김진수(30·전북현대)등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지만 한국은 마지막 순간 가나의 '검은 별'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 경기에서 '새로운 별'을 찾았다. 후반전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조규성(24·전북현대)이 그 주인공이다. 2022 시즌 K리그 득점왕 조규성은 두 차례 헤딩 골로 한국의 희망을 살려냈다. 가나전 패배로 빛이 다소 바래긴 했지만 한국의 월드컵 출전 역사상 최대 반전 드라마를 쓸 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규성 외에도 김문환(27·전북현대), 나상호(26·FC서울)는 측면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유럽파 선수들에게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분위기 속에서 이들 K리거의 활약은 의미가 깊었다. K리그에서 뛰어도 월드컵과 같은 무대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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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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