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30.한·중·일 문화재 삼국지

전시윤 기자 / 입력 : 2023.02.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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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얼마 전 대전고법이 서산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불상-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문제의 불상을 일본 측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서 주목을 받았다.

이 판결을 보면서 1986년 중앙청 건물에 새로 들어선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을 맞아 어렵게 빌려와 전시했던 안견의 "몽유도원도 반환사건"이 새삼스럽게 머리에 떠올랐다.


당시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天理)대학 소장품이었다. 안견의 그림과 함께 안평대군,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 조선의 명인 20여명의 찬문 등 친필이 적혀 있는 이 작품을 빌려주고 나서 소장자측은 은근히 속이 탔던가 보다. 전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장자 측에서 작품의 복사본 두벌을 만들어 가지고 한국을 방문한다.

당시 이 복사본 제작에 3,000만 원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적은 금액이 아니다. 고개가 갸웃해지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가 불분명한 이 작품에 대해 혹시 반환불가라는 의외의 사태가 발생할까 걱정이 된 소장자측이 고가의 복사본을 선물하며 한국 측의 선의 -전시 기간 종료 후 즉시 반환 - 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실은 이 작품을 직접 보게 된 우리 정부의 고위 인사가 반환의 시기를 늦추는 방법이 없는지 은근히 물어보았다는 후일담도 있기는 하다.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 전기 국보전",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특별전 - 여민해락(與民偕樂)" 등에 연이어 이 작품이 바다를 건너와 일반에 공개된 것을 보면 당시 소장자측이 한국 측의 선의를 충분히 확인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까!


중국의 '문화 및 자연유산의 날'은 매년 6월의 2번째 토요일이다. 2006년 6월 10일 '제1회 중국 문화 및 자연유산의 날' 기념행사에 주화외교단의 일원으로 필자도 참석했다. 장소는 저우커우덴(周口店) 베이징 원인(原人) 두개골화석 발굴지였다. 제1회 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를 별도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용골산(龍骨山)으로 불리며 많은 화석들이 출토된 이곳에서 1929년 베이징 원인의 두개골화석이 발견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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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미라 /사진제공=pixabay


자그마한 동산 아래 기념관 시설이 들어선 발굴지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베이징 부근은 나무가 귀하다. 식목행사를 하면서 중국국가문물국장(한국의 문화재청장)으로부터 베이징 원인 두개골화석의 분실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때 들은 설명과 그 후 자료를 찾아 확인한 사건의 전말을 종합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그동안 미국 록펠러 재단이 설립한 베이징 협화의학원 금고에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 중이던 베이징 원인 두개골화석의 보안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경국제대학 교수가 공동연구를 제의하기도 하고 일본에게 매수당한 청소부가 금고를 뒤지다가 발각되기도 한다. 1941년 연말에 이르러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은 협화의학원은 이 귀중한 화석을 포장하여 베이징 주둔 미 해병대 막사로 보낸다. 그 후 발해연안의 친황다오를 거쳐 미국 상선 프레지던트 해리슨호에 옮겨 싣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더 빨랐다. 화석을 실은 미 해병대 전용열차는 친황다오에서 일본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후 베이징 원인의 두개골화석은 그 종적이 묘연해진다. 어느 것도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그 후의 결과와 관련하여 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수중 침몰설이다. 대만해협에 침몰한 일본 선박에 실려 있었다는 이야기로 가끔씩 관련 선박의 인양에 관한 논의들이 진행되곤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누군가가 감추어 두고 있다는 은닉설이다 그 누군가에는 일본인, 미국인, 중국인이 모두 포함된다. 어떤 계기로 동 화석을 입수하게 되었지만 적절한 발표의 시기를 찾지 못해 은닉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나마 인류의 고귀한 유산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 번째는 최악의 경우로 전쟁의 와중에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졌다는 부존재설이다. 이 경우 보존 당시 실무자들이 만들어 놓은 복제품이 남아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지만 복제품은 복제품일 뿐 실물이 사라져버렸다는 아픔은 온전히 우리들에게 남아있게 된다.

베이징 원인 두개골화석의 회수를 위해 특별기금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후학들의 조사연구와 검증작업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제1회 문화 및 자연유산의 날'에 베이징 원인 두개골화석 발굴 현장에 외교사절단을 초청해 관심과 주의를 촉구하는 등 국가문물국과 민간연구기관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화석의 존재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미국과 일본이 연결된 문화재를 둘러싼 이 안타깝고 답답한 이야기와 함께 당일의 현장에서는 한국과 관련된 또 다른 문화재 논쟁이 아주 뜨겁게 전개된다. 행사취재에 나섰던 중국의 언론들이 주중한국문화원 신임원장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를 둘러쌌다.

"한국은 어째서 중국의 민속명절인 단오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유산으로 등재하는가?, 이것은 문화재 절도가 아닌가?"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관문을 막 통과한 강릉단오제로 인해 중국내 여론이 악화되고 있던 시기인 만큼 매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국의 등재가 단오제가 아니라 강릉지역에서 특별하게 형성된 단오행사라는 점을 설명하며 그날은 어떻게 지나갔지만 유사한 질문들은 그 후 상당기간 필자와 중국 언론 간에 벌어지는 논쟁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중국이 '문화 및 자연유산의 날'을 제정하는데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중일 3국은 현존하는 동북아의 강국들이면서 역사와 문화적으로도 모두 그 뿌리가 깊은 나라들이다. 동시에 오랫동안 서로 엮이며 경쟁하고, 다투며 협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아주 오래 묵은 갈등과 감정들이 지금도 수시로 작동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제3자가 객관적으로 볼 때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문제라도 이 3국이 연계되면 결국 작지 않은 풍파로 번지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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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을 지키는 토용/사진제공=pixabay


엄밀하게 형식논리로만 따져보자면 국가 간에는 서열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통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유일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이다. 아니면 힘의 논리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억누르는 방식- 전쟁 -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분쟁해결 방법의 실행이 말처럼 쉽지 않아 국가 간에 발생한 분쟁은 여간해서는 완결이 되지 않으며 점진적인 수위조절로 눈앞의 위기를 넘기는 미봉책에 의존하게 된다.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일본에 돌려주라는 취지의 법원판결이 100% 정확한 사실 혹은 진실이 반영된 결론인지는 사실상 알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판결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이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베이징 원인 두개골화석의 경우 - 이 경우 실물이 존재한다고 전제 - 도 그 국제법상의 소유권에 대해 따져볼 수 있는 길을 조금씩이나마 열어나가고 있다고 하겠다. 강대국의 침입을 겪은 대다수의 국가들은 상당수 문화재가 해외에 나가 있다. 개중에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반출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아서 문제가 된다.

지난해 말 기준 문화재청의 <국외소재문화재 현황>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일본 94,341점, 미국 54,185점, 독일 15,402점, 중국 13,000점 등 해외 25개국 769개 처에 214,208점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이 중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소유권이 변경된 경우를 제외하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충분하고도 적절한 조사가 이뤄져야만 한다. 특히 한국을 35년간 무단통치한 일본의 경우 그 소장 수량도 막대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약탈의 형식으로 옮겨간 문화재에 대해서는 반드시 다양한 방식의 상호협의와 조사를 진행하여 불법적일 경우 그 결과를 치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 문화재의 중요성이 크면 클수록 상호간의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결과에 도달할 경우 양국 간에 발생하는 상호신뢰의 힘은 양국 국민 모두에게 대단히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중·일 3국의 문화재 삼국지가 아름답고 멋진 드라마로 만들어져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우리 행정사법인 CST가 이 드라마의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박영대 행정사법인 CST공동대표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 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 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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