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김현수 '작심발언', 이해는 가지만 팬들 '분노'만 키웠다

인천국제공항=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03.15 07:33 / 조회 : 1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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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대표팀 감독이 14일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천국제공항=안호근 스타뉴스 기자] "한국시리즈 때 투수 몇 명 투입하는지나 알아보고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이강철(57) 야구 대표팀 감독이지만 억울함은 참을 수 없는 듯했다. 대표팀 내에서 벌어진 투수 혹사라는 평가와 일부 팀 감독이 투수 기용과 관련한 부탁을 했다는 설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끈 한국 야구 대표팀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2승 2패로 탈락한 뒤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무난한 조 편성을 받은 대표팀의 2라운드 진출을 의심하는 시선은 별로 없었다. 이 감독도 "호주에는 져본 적이 없다"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패하며 너무도 어렵게 시작했다. '역대 최강'이라는 일본을 반드시 꺾어야만 했지만 또 졌고 호주의 패배를 바라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아직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호주전 이후부터 대표팀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강철 감독의 경기 운영과 투수진 활용부터 선수들의 안일해 보이는 플레이, 좀처럼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진, 기대 이하의 타격을 보여주는 선수들 등 다양한 비판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중국전엔 이번 대회 처음으로 5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지만 여론은 쉽게 뒤집히지 않았다. 이미 커다란 실망감을 안긴 후였기 때문이다.

선수들 또한 아쉬워했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비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억울한 모습도 내비쳤다. 중국전을 마친 뒤 주장 김현수(35·LG 트윈스)가 작심발언을 했다. "역대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배들에게 항상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면서 "그런데 아닌 분들이 (이번에는) 많이 그리고 굉장히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봤다. 그런 부분이 아주 아쉽다. 우리와 같은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아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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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주장 김현수. /사진=OSEN
사실상 '양준혁 저격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준혁은 지난 11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한일전 총평을 했다. "내가 본 최악의 경기다. 지금까지 국제대회를 하면 경쟁력이 있었는데 이 경기는 내가 본 최고의 졸전"으로 시작해 "안우진이 생각났다", "기회를 줬어야 했다",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심지어 "배 타고 와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번 대회에선 해설위원으로 나선 이순철, 박찬호, 이대호 등 여러 선배들이 대표팀의 졸전에 대한 비판을 펼쳤다. 그러나 김현수의 발언은 사실상 양준혁을 향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양준혁은 KBO리그에서 각종 기록을 세우며 '양신'이라 불렸지만 1999년 아시아 선수권대회 이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양준혁의 발언이 모두의 공감을 사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다소 과한 표현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15년 동안 대표팀을 위해 헌신하고 활약한 김현수로서는 서운하게 들릴 법한 이야기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야구팬들이 커다란 실망감을 안은 상황에서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억울함을 눌러 담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냈다면 상황이 이토록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담긴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수는 이날 귀국 후 별도의 인터뷰 없이 공항을 빠져나갔다.

이강철 감독 또한 억울한 부분이 있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나를 비난해도 되니 선수단에겐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혹사 논란'과 선수단 운영 '청탁'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참지 못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고우석(LG)을 비롯해 몇몇 선수들은 경기에 나갈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고 제 공을 뿌리지 못하는 투수들도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 캠프의 악천후로 인해 투수진의 몸 상태가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결국 승부처에서 쓸 수 있는 선수는 한정돼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해명하면 될 질문에 그토록 공격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보면 1점 차로 패배한 호주전만 이겼다면 이 같은 비판은 모두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호주에 졌고 그 이유 중 이 감독의 아쉬운 경기 운영과 판단 등이 한 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KT 위즈 감독을 맡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수고를 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러한 발언이 팬들의 충분한 공감을 사지 못하는 이유다. 오히려 팬들은 분노하며 이들의 발언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조롱하는 광경도 펼쳐지고 있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지난해 부임과 함께 한국야구의 흥행을 위해 국제대회 성적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즌 전 WBC 대표팀의 부진으로 개막 전부터 야구에 대한 열기가 차갑게 식은 상황이다. 여기에 김현수와 이강철 감독의 발언은 야구 팬들의 분노를 키우는 역효과로 이어지고 있어 안타까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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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별도의 인터뷰 없이 공항을 빠져나가는 김현수.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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