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첫 세이브' 김서현, 마운드에 새긴 '3·70번'... 감격의 날 '철든 막내'는 은사 2명을 떠올렸다

인천=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05.13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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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서현이 12일 SSG전 데뷔 첫 세이브 후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마무리 투수에 욕심이 있다"던 슈퍼루키 김서현(19·한화 이글스)이 데뷔 9경기 만에 드디어 세이브 상황에 마운드에 올랐다. 첫 투구를 앞둔 김서현은 마운드에 무언가를 그렸다. 바로 전날 팀을 떠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호세 로사도 투수 코치의 등번호였다.

김서현은 1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서 팀이 5-2로 앞선 9회말 등판, 1이닝 동안 볼넷과 탈삼진을 하나씩 기록하며 무실점 호투해 승리를 지켜냈다.


시속 160㎞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뿌려대던 괴물 신인의 시즌 첫 세이브. 한화의 승리를 지켜내겠다는 미래의 클로저 커리어에 1호 세이브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탐내던 김서현은 한화행을 택했다. 스프링캠프 기간부터 수많은 팬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회적관계망(SNS) 비밀 계정을 통해 남긴 발언이 문제가 된 것.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의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많은 팬들이 실망감과 함께 비판을 가했다. 철없는 막내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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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뿌리고 있는 김서현. /사진=한화 이글스
이후 김서현은 다소 위축된 듯 보였다. 발언 하나하나에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마운드 위에서만큼은 달랐다. 당당히 마무리 투수 욕심을 보인 그는 불 같은 강속구를 뿌리며 프로야구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선수 중 하나로 등극했다.

다만 그의 바람과 달리 수베로 전임 감독은 김서현을 활용하는데 조심스러웠다. 재임 기간 내내 어린 선수들의 육성에 초점을 맞췄던 수베로 감독은 김서현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부담을 느낄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그를 아꼈다. 빅리그 올스타 출신 로사도 코치도 김서현에게 최근 MLB에서 핫한 '스위퍼'를 전수하는 듯 애정을 듬뿍 쏟았다.

공교롭게도 프로에서 처음 만난 사령탑과 투수 코치가 팀을 떠난 뒤 김서현은 세이브 상황을 맞았다. 팀 타선이 경기 초반부터 힘을 내 선두 SSG를 1회부터 앞서갔고 5-2로 앞선 9회말 김서현이 등판 기회를 잡은 것이다.

예고된 기회였다. 경기 전 최원호 신임 감독은 박상원, 강재민과 함께 김서현을 필승조 3인 중 하나로 꼽으며 "강재민과 박상언은 2일 연투를 했기에 오늘은 제외시키고 세이브 상황이 되면 김서현이 등판할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등판 전 김서현은 마운드에 무언가를 그렸다. 숫자 3과 70이었다. 이는 바로 수베로 전 감독과 로사도 투수 코치의 등번호 3번과 70번이었다. 그의 모자에도 두 번호가 적혀 있었다. 데뷔 후 초반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에게 아버지 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며 기회를 줬던 두 은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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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베로 감독(왼쪽)과 김서현. /사진=OSEN
김서현은 초반 다소 흔들렸다. 긴장한 탓인지 첫 타자 오태곤에게 던진 3구 시속 156㎞ 빠른 공이 몸에 맞는 공이 됐고 조형우의 타석에선 폭투까지 나왔다. 포수 최재훈이 마운드에 방문해 김서현을 안정시켰다. 이후 김서현은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그의 투구 하나 하나에 관중석을 메운 1만 4395명의 입에선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전광판에 연신 150㎞ 후반대 공이 찍혔기 때문. 조형우에겐 낙차 큰 슬라이더로 투수 앞 땅볼을 유도했고 대타 최항에게도 슬라이더만 4개 던져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최주환을 상대로는 157㎞ 빠른 공을 보여주더니 비슷한 궤적의 무려 '146㎞ 체인지업'으로 2루수 땅볼을 이끌어내 팀 승리를 지켜냈다.

김서현은 "9회 올라갈 때 이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던지자고 생각했는데 초반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원래 7, 8회에 나오다가 9회에 처음 나가다보니까 긴장이 됐다. 박승민 투수 코치님이 올라갈 때 '처음이니 심호흡을 먼저 하라'고 하셨는데 그걸 못해서 조금 흔들린 듯하다"며 "최재훈 선배가 중간에 올라와서 변화구를 쓰자고 말했고 그대로 따라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세이브를 딸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저를 도와준 선배님들과 형들에게 너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세이브를 딸 기회가 온다면 꼭 잡아서 팀이 이길 수 있게 보탬이 되고 싶다"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첫 세이브 기념구가 새 사령탑의 정식 감독 첫 승 기념구가 됐다. 떠나간 은사를 기억한 김서현이지만 새로운 감독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았다. 김서현은 "그 공은 감독님께서 가져가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세이브를 따면서 더 높은 기록을 달성했을 때 공을 가져가도록 하겠다"고 배려를 나타냈다.

아직 팀의 공식 마무리라고 보긴 어렵지만 필승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김서현은 "그 자리에 맡게 더 열심히 던지려고 한다. 책임감이 큰 자리인데 또 견뎌내야 하니까 더 신경 써서 공을 던지겠다"며 "마무리 투수로 계속 자리 잡고 싶다. 오늘처럼만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투구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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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이 데뷔 첫 세이브를 따낸 뒤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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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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