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처음 맞아봐요" 롯데 41년 역사 '최초 100홀드' 사나이는 그런 길을 걸어왔다

잠실=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07.2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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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구승민이 26일 두산전 통산 100홀드 달성 후 동료들의 물세례를 받은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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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를 펼치고 있는 구승민. /사진=뉴시스
방송 인터뷰가 무려 2년 만이라고 말했다. 수훈 선수에게 따라붙는 훈장과도 같은 물세례의 주인공이 된 것도 처음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100번째 홀드를 달성한 최초의 선수라는 공헌과는 달리 그동안 얼마나 조명을 받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승민(33)이 롯데 자이언츠 역사에 새 페이지를 썼다.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구단 소속 100홀드 스타로 등극했다.


구승민은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서 팀이 5-2로 앞선 6회말 등판해 삼진 2개를 잡아내며 1이닝 퍼펙트 피칭을 펼쳤다.

팀의 리드를 지켜낸 구승민은 시즌 14번째(4패 3세이브)이자 통산 100번째 홀드를 달성했다. 40년이 넘는 KBO리그 역사상 고작 15번째 기록. 롯데에서만 이 기록을 써낸 건 구승민이 처음이다.

단연 이날의 주인공은 KBO리그 데뷔전에서 승리를 챙긴 애런 윌커슨이었으나 동료들로부터 더 뜨거운 축하 세례를 받은 건 구승민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팀을 위해 헌신했는지 곁에서 지켜보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손에 하나씩 든 생수병은 기본이고 아이스박스에 심지어 나균안은 대용량 커피를 퍼부으며 격한 축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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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에게 붙잡혀 물에 흠뻑 젖고 있는 구승민(가운데).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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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균안(왼쪽)이 구승민에게 물 대신 대용량 커피를 부으며 격하게 축하를 해주고 있다. /사진=OSEN
물에 흠뻑 젖은 채 취재진과 만난 구승민은 "윌커슨에게 하기에 안 할 줄 알았는데 결국 하더라. 처음 맞아본다. 시원하긴 한데 별로 기분이 좋진 않다. 너무 젖었다. 찬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는 누구였나. 아이스박스도 기억에 남는다"며 농담조로 툴툴거리더니 이내 "동료들이 너무 축하해줘서 행복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홍익대를 거쳐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 전체 52순위로 지명을 받은 그는 이듬해 데뷔했지만 2015년까지도 별다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단을 택했고 전역 후 2018년에서야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해 64경기 73⅔이닝을 소화하며 7승 4패 14홀드로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믿을맨'이 된 구승민은 이듬해 부침을 겪기도 했으나 2020년부터 롯데의 철벽 필승조가 됐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60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3년 연속 20홀드 이상을 기록했다. 리그 정상급 불펜 투수라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통산 100번째 홀드를 작성하고서야 물세례를 처음 경험할 정도로 그의 역할은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먼 주연보다는 조연이 더 당연시되는 그런 자리였다.

늘 주변을 도와주는 그런 역할임에도 구승민은 자신보다 주변을 챙겼다.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지금까지 그 상황에 계속 써주신 감독님, 코치님이나 타자 형들 또 후배들, 투수들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며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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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진을 불고 있는 구승민. /사진=뉴시스
구승민은 "롯데 자이언츠라는 한 팀에서 할 수 있어서 더 영광이다. 또 한 명도 없다고 하니까 '꾸준히 이 한 팀에서 잘 했구나'라고 와 닿는다"며 "그래서 앞으로도 어린 친구들에게 나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게끔 많이 알려주겠다"고 팀을 생각하는 면모를 보였다.

14번째 세이브. 4년 연속 20세이브 달성이 눈앞에 보인다. 그러나 구승민은 "왜 이렇게 겸손해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진짜 홀드라는 기록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좀 멀어지는 것 같다"며 "거기에 부담을 느끼면 또 성공을 못했을 때 오는 죄책감이나 팀에 대한 미안함이 크기 때문에 그걸 빨리 잊는 게 중요하다. 지금처럼 아프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지는 상황이나 크게 이기고 있을 때도 나갈 텐데 그런 것을 버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기자님들과 이야기하는 상황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통산 100번째 홀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구승민은 "또 내일 다시 준비해서 다 잊고 들뜨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후반기 각오에 대해서도 "지고 이기는 건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고 우리가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성적이 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으니까 좋은 경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을야구에 대한 꿈은 컸다. 데뷔 후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을 경험하지 못했던 구승민은 "한 번도 안 해봤던 것이기에 누구보다도 더 원하고 있다"며 "그런 큰 경기에서 던져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고 가을의 꿈을 꿨다.

누구보다 열심히 물을 쏟아 부은 후배 김원중은 인터뷰가 끝나기를 한참 동안 기다린 뒤 그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면서도 이를 촬영하려는 취재진을 향해 개인 소장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날만큼은 온전히 구승민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여나 자신과 찍은 사진이 퍼지면 그 관심이 온전히 선배에게 집중되지 못할 수 있다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구승민이 그동안 얼마나 팀을 위해 헌신했는지, 후배들에게도 아낌 없이 베푸는 사람인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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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전준우(왼쪽)가 구승민을 꼭 끌어안아주고 있다.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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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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