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2개 땄는데..." 러닝타깃 '눈물바다', 눈부신 성과 그러나 기약 없는 미래라니 [항저우 스토리]

항저우=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09.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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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러닝타깃 대표팀 곽용빈(왼쪽)과 정유진, 하광철이 26일 10m 남자 혼합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정유진과 하광철.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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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 올라 애국가에 맞춰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곽용빈(왼쪽부터), 정유진, 하광철. /사진=뉴시스
"금 2개 땄는데 퇴촌해야 돼요."

남자 현역 등록 선수는 고작 6명. 그렇기에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한 걸 기적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러닝타깃이 비올림픽 종목이기 때문이고 국내 선수 풀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정유진(청주시청)-하광철(부산시청)-곽용빈(충남체육회)으로 구성된 한국은 26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사격 러닝타깃 10m 혼합 남자 단체전에서 1116점을 쏴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날 북한과 1668점 동률 끝에 10.5점 이상을 기록한 횟수가 더 많아 우승을 차지했던 대표팀은 이날도 북한 등과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 끝에 이틀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맏형 정유진을 필두로 분위기 메이커이자 중간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는 하광철, 막내 곽용빈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 이뤄낸 성과다. 현역 선수가 단 6명에 불과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며 꿈을 키웠고 한국 사격에 커다란 선물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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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오른쪽)이 개인전에서 북한 권광일과 슛오프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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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광철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 후 시상식을 마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들어선 정유진은 인터뷰 도중 한참을 눈시울을 붉혔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도중에도 좀처럼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야간 훈련 이야기를 하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던 탓이다. 총기를 사용하는 종목 특성상 관리자의 허가 하에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고 원하는 만큼 훈련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사격선수 출신인 진천선수촌의 관리 소장의 특별한 배려로 야간 훈련도 할 수 있게끔 된 것이다.

이번으로 5번째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정유진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힘들었던 때가 떠올랐는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던 덩달아 하광철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정유진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저희가 비올림픽 종목이라 아시안게임에 들어올 때도 대회 6개월 전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며 "그래서 훈련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종목은) 개별적으로 다 훈련을 할 수 있게끔 돼 있는데 사격은 총을 사용해 제재가 좀 있었다. 처음엔 몰래 총을 방에 가지고 와서라도 훈련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러웠다기보다는 우리가 그만큼 노력을 한 것(이 떠올랐다), 이건 처음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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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 오르며 포즈를 취하는 대표팀 선수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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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광철은 "짧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체전은 개개인이 서로를 믿고 쏴야 한다. 내가 못 쏘면 (곽)용빈이가, (정)유진이 형이 채워주거나 해야 하는데 코치님께선 항상 '너희는 33.3%씩만 쏘면 1%는 운이 따를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그런 걸 믿고 계속 원팀으로 한 걸 준비했다"고 전했다.

이번 2관왕으로 러닝타깃이라는 종목을 알렸지만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위대한 성과를 냈지만 당장 국내로 돌아가면 대표팀은 바로 해산된다. 하광철은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금메달 2개를 땄는데 이제 퇴촌을 해야 한다"며 "바로 집으로 가야 한다. (국내로) 돌아가면 또 언제 소집이 될지 모른다. 세계선수권도 다음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3년 뒤에야 있다"고 설명했다.

하광철은 "우리 종목이 (선수 수로 인해) 국내에서 팀을 이루고 경기를 할 수 없다"며 "인원수가 적어서 팀을 이루는 건 무조건 태극마크를 달아야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뭉쳐서 단체로 메달을 따내기 위해선 4년을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누구보다 종목이 처한 현실을 잘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하광철은 "모든 종목에서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건 선수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며 "지금 그 자리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려고 각자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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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개인전 2번째 동메달을 목에 건 정유진.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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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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