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그만 흘리고 싶었다" 김수현 값진 銅 '사랑의 힘으로' 트라우마도 날렸다 [항저우 현장]

항저우=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10.0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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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가운데)이 5일 동메달을 목에 걸고 연인 피재윤(오른쪽),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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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이 용상에서 138㎏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뉴스1
"눈물을 그만 흘리고 싶었어요."

김수현(28·부산시체육회)은 경기장을 벗어나면 10대 소녀와 같이 행동 하나하나가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인간 비타민'이다. 그러나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에선 그 밝은 미소를 볼 일이 없었다. 9년 만에 드디어 김수현이 특유의 긍정 에너지를 뿜어냈다.


김수현은 5일(한국시간)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스포츠센터 체육관(Xiaoshan Sports Centre Gymnas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 결승에서 인상 105㎏, 용상 138㎏으로 총합 243㎏을 들었다. 1위는 267㎏(인상 117㎏, 용상 150㎏)을 든 송국향, 2위는 266㎏(인상 117㎏, 용상 149㎏)을 든 정춘희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2014 인천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연이어 4위에 그쳤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선 인상에서 106㎏를 성공하고도 용상에서 석연찮은 판정 속에 실격해 분루를 삼켰다.

인천 대회 이후 9년.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지난해 12월 세계선수권에서 3위에 오른 김수현은 올 5월 진주아시아역도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더구나 누구보다 곁에서 큰 힘이 돼 주는 '전천선수촌 공식 커플' 가라테 선수 피재윤(21·대한카라테연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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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도 따랐다. 인상에서 105㎏을 들으며 4위에 올랐고 용상을 앞두고 3위 선수 중국 리아오 구이팡(인상 113㎏)이 경기를 포기했다. 막판 대만 천웬후에이가 용상에서 137㎏를 들어올리며 역전했지만 김수현은 138㎏를 들어올렸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심판진이 2대1로 실패 판정을 내렸으나 비디오판독을 통해 번복시켰다. 2년 전 도쿄 올림픽 때를 떠올리게 했지만 이번엔 해피 엔딩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김수현은 "세 번째 출전 만에 드디어 메달을 땄다. 기록이 많이 낮지만 대단한 선수들과 중국에서 경쟁하고 경기할 수 있어 살면서 기억에 남을 경기일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감정에 솔직한 편이었다. 이날도 실패할 때와 성공할 때 감정 표현이 누구보다 확실했다. 그만큼 지난 실패들 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던 김수현이다.

"계속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으니 후회 없이 하고 싶었다. 눈물도 그만 흘리고 싶었다"는 그는 "내게 많은 관심이 있는데 화나고 실패하고 슬퍼하는 모습보다 안 되더라도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그다.

주변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다. 김수현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가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이 있어 가능했다"며 "그래서 나도 많이 변했고 경기할 때도 겁이 덜 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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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연속 4위로 메달을 놓친 것도, 2년 전 판정의 아쉬움 속 고개를 숙인 것도 트라우마로 남을 뻔 했다. 김수현은 "경기는 해봐야 안다고 생각했다. 사실 랭킹리스트가 나왔을 때 나는 4위권이었다"면서도 "그렇지만 첫 번째로 든 생각이 '나도 할 수 있다'였고 용기를 가졌고 최대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트라우마는 날렸다"고 말했다.

연인의 힘도 김수현을 한 뼘 더 자라게 만들었다. 이날 함께 메달을 목에 걸자고 약속했으나 아쉽게 무산됐다. 오전에 먼저 경기를 치른 김수현은 가라테 구미테 남자 75㎏급 16강에서 바흐만 아스가리(이란)에 2-4로 졌다.

그러나 김수현을 위해 경기장을 찾아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화이팅", "가자", "집중"이라고 외치며 누구보다 김수현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했고 성공했을 때는 "나이스", "됐다" 등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피재윤을 만나고 잘 풀리고 있다는 김수현은 "재윤이 몫까지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피재윤이 메달을 못 따서) 씁쓸하지만 내 경기가 앞에 있어서 감정 표현을 잘 못했다. 그런데 재윤이가 응원을 와줘서 더 잘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피재윤은 "고생한 만큼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경기 전에도 무조건 될 것 같다고 했다. 진짜 될 것 같다고 느꼈다"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전국체전이 남아있는데 거기서도 잘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수현이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든든히 김수현의 노력을 지지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수현의 어머니가 둘의 연인 관계로 인한 기사만 너무 많이 나온다며 볼멘소리를 하자 그런 뒤에 메달을 땄다고 했다. "이젠 결혼한다고까지 기사가 나겠다"고 하자 김수현은 "그러면 이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아니냐"며 주위를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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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수현(왼쪽)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나타내고 있는 피재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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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인터뷰에서 연인 피재윤(오른쪽)을 껴안아 주는 김수현.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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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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