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5. 문해력 버그

채준 기자 / 입력 : 2023.10.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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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오늘 아침도 신문을 읽으며 이 단어는 무슨 말이지? 하며 사전을 찾아보았다. 아예 대놓고 영어로 특집호의 명칭을 붙였다. 그 명칭 밑에 작은 활자로 advertorial section이라고 무슨 의도의 섹션인지를 알 수 있게 하기는 했다. 그 말은 신문이나 잡지 속에 기사 형태의 광고를 말하는 것이란다. 내 머릿속이 '버그'가 났나 보다. 신문도 제대로 읽어내지를 못하다니….


우리가 흔히 쓰는 '버그'라는 말은 대개는 소프트웨어가 예상한 동작을 하지 않고 잘못된 결과를 내거나, 오류가 발생하거나, 작동이 실패하는 등의 문제를 말한다. 그러니까 내 머리, 내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내 소프트웨어인 이 머릿속의 회로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기계, 디지털보다도 한층 더 복잡한 내 머리, 이 아날로그를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기계에는 없는 아날로그인 감정, 느낌, 감성, 지혜…. 이것들은 디지털이 대세인 세상에서 어찌해야 하나?

모든 문화의 기초인 문해력이라는 말이 근래에 들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뜻으로 말하면 모르는 말은 아니나 별로 쓰지 않던 말이 튀어나와 좀 당황스러웠다. 애들 머리도 버그가 나겠다. 1990년 말, 대학 입학시험에 논술시험을 보겠다니 학원가에서 난리가 났었다. '논술이라니? 논술이라는 게 뭐야?'라고들 하는 찰나에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논술학원이라고 이름이 붙은 학원에 보내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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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라는 말도 어려운 어린아이들에게 '독서 지도'라는 타이틀을 붙였었는데, 그 독서지도학원들이 논술학원들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젠 문해력이라니? 왜들 이러나 싶어서 '문해력'이라고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이런저런 설명들과 더불어 초등학교 문해력 책들까지 여러 종류가 뜨는 것이었다. 이제 논술에서 문해력으로 세상 흐름이 바뀐 모양이다. 하기야 나까지도 신문하나 제대로 읽기가 어려운 세상이니 문해력 문제를 들고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문해력의 첫째는 글을 잘 읽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책은 많이 읽었는데….' 라고 들 말한다. 그러나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머릿속을 통과해서 지나갔을 뿐일 수도 있다. 독서 교육이 크게 유행하던 시절, 한 학기에 100권 읽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초등학교들도 있었다. 학생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이 무엇인지, 그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느낌도 없이 책의 권수 채우기에 급급했던 아이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100권 읽었다고 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읽은 책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독서지도의 지침을 본 적도 있다. 질문하면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들 했다. 자기가 새롭게 알게 된 것, 느끼게 된 것을 말할 수 있도록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저 책을 안 읽을까 봐 쩔쩔매는 부모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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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자녀들을 잘 기르고 싶은 것이 부모 된 마음이다. 그리고 그 잘 기름의 목표가 일류 대학 보내기임을 슬쩍 감추고 자기 철학이 확고하다는 듯 "저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러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엄마들도 많다.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 것과 읽은 책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면서 아이들 방은 도서관처럼 책으로 장식해 주고 있는 집들을 많이 보았다. 책을 많이 장식해 준다고 문해력이 길러질까?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책을 그냥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문해력이 글을 이해하는 힘, 느낀 것을 말할 수 있고 써내는 힘까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신문을 읽으려고 해도 모르는 단어들로 넘어가기 어려운데, 하물며 교과서의 글을 읽을 때는 더욱 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다양한 말들을 알아듣고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일 년 만에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지식도 지혜도 하루아침에 완성되고 완숙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사람에게는 복잡한 것이 살아가는 마음의 행복감, 충족감, 사랑 등, 디지털에는 없는 이런 감정들이 끼어드니 말이다. 그 미묘한 감정들까지 깊이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인문학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근본적인 것을 차근차근해 나가면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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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있어야 하는 문해력에 대해 그야말로 '라떼'는 문해력이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일기 쓰기, 독서하고 감상문 쓰기 등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한문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면서 나도 모르게 문해력이 생겼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의 교훈이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워라!"였다. 기계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기계는 인간이 인푸트input 하는 대로 아웃풋output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많이 읽었다고 그대로 다 아웃풋이 되질 않는다. 디지털이 제 마음대로 거짓되고 사악하고 추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인간은 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두 차원을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하며 아름답게도 되고 추하게 되기도 한다. 아웃풋이 마구 헝클어지는 것이 참으로 문제다. 한국어는 한자를 알아야 이해가 되고 더구나 21세기 언어는 디지털을 이해해야 하고 외국어도 당연히 알아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으니 매일 새롭게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우연히 나의 문해력에 중요한 무기가 하나 더 생기게 되어 지금까지도 잘 부리고 있는 방법이 있다. 읽고 쓰는 데에 내 머리를 잘 정리해주는 무기인 마인드맵을 만나게 된 것이다. 마인드맵은 내 생각을 바꾸어놓은 최고의 방법이었다. 어떻게 생각을 정리할까? 무엇을 쓸까? 그리고 글을 읽을 때는 쓰여진 글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한눈에 파악하는데 마인드맵만 한 방법이 없었다. 생각을 종이에 손으로 그릴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생각을 눈으로 보면서 집약해서 최고의 생각을 끄집어낼 수도 있었다. 여기에 디지털을 접목한 프로그램도 개발이 되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얼마 전 스승이신 이어령 선생님의 1주기 추모전을 CST에서 기획하면서 전시 기획서를 마인드맵으로 제출하였다. 그 마인드맵 기획서를 본 많은 분들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점이 아주 환상적이라고 좋아하셨다.

마인드맵에 덧붙여 문해력을 기르는 정점에 나는 하브루타식 방법을 말하고 싶다.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가르치는 것에서 비롯된 '하브루타식 방법'은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주제에 대하여 입으로 내뱉어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는 방법이다. 하브루타식 공부 방법은 시청각 교육법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남을 가르쳐보는 것이다. 머릿속에 말할 내용이 들어 있지 않으면 말하려는 주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지식을 인풋트 했다고 그대로 아웃풋이 되질 않는다. 그게 문제다. 내 머릿속에까지 제대로 입력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문해력으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마인드맵으로 생각과 지식을 정리한 다음 그것을 더 넘어서 설명할 수 있게까지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인간의 매력은 지혜까지 있어진다는 점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간단하게, 아니면 뚱딴지같은 대답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소리치는 어른들을 볼 때 참 안타깝다.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아날로그 교육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라들도 많다고 한다. 손으로 글을 쓰고, 종이책을 읽게 하려고 한다고들 한다. 종이에 글을 쓸 때,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써져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작문할 때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막 불일 듯 일어났었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었나?' 싶게 연필과 종이 사이에 새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났던 경이로운 경험들이 있었다.

인간의 아날로그 됨을 누리는 글쓰기, 말하기를 '착하고, 참되고, 아름답게' 할 때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뿌듯함이 있지 않을까? '디지로그'인 세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아날로그의 문해력에 디지털의 버그가 나지 않게 하려고 오늘도 나는 종이신문 읽으며 모르는 말은 인터넷을 찾아본다.

- 서승옥행정사법인 CST 부설 ICST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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