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엔 박찬호, 2024년엔 류현진' 프리미어12, 韓 야구발전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2.25 07:01 / 조회 : 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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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승리를 책임지고 기뻐하는 류현진(왼쪽)과 2006년 WBC에서 투구를 하고 있는 박찬호. /AFPBBNews=뉴스1
2006년 3월 전 국민이 야구로 하나가 됐다. '야구 월드컵'이라 불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수차례 일본을 꺾었고 세계 최고 팀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찬호(51)가 있었다.


부진을 면치 못하던 박찬호는 그 시절 한국 야구에 4강 신화를 안긴 주인공이었다. 침체기에 있던 한국프로야구는 이후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으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프로야구 흥행 부활의 신호탄을 쏜 것도 이 때였다.

18년 후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프로야구는 다시 봄을 찾았지만 KBO는 여전히 위기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오는 11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가 개최된다. 2006년 박찬호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류현진(37·한화 이글스)이 출격을 원하고 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11년을 보낸 류현진은 금의환향했다. 지난 22일 친정팀 한화와 8년 총액 170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23일 한화가 머물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2차 스프링캠프 합류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류현진은 인터뷰를 위해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국가대표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선수로서 (욕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뽑아주실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한 번 더 대표팀에 가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경기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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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화 스프링캠프 일본 오키나와 출국 전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류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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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화 스프링캠프 일본 오키나와 출국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류현진이 웃고 있다. /사진=뉴스1
현역 시절 국가대표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과 자긍심, 애착을 나타냈던 박찬호가 오버랩된다. 태극마크만 달면 더 무서운 힘을 보였고 그가 나서는 대회에서 한국은 연전연승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미 병역 문제를 해결한 그는 미국에서 '먹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기량이 하락한 상황이었는데 2006년 WBC에 나섰다.

직전 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10경기 4승 3패 평균자책점(ERA) 5.91로 평범 그 이하의 선수로 전락한 상황이었기에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찬호는 무서운 힘을 발휘했고 1라운드 대만전(2-0 승) 3이닝 무실점 투구로 세이브, 일본전(3-2 승) 1이닝 무실점 세이브, 2라운드 멕시코전(2-1 승) 1이닝 무실점 세이브, 다시 만난 일본전(2-1 승) 선발로 나서 5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한국에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이듬해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 출전을 자청해 대만전 3이닝 1실점(비자책) 맹활약을 펼친 박찬호는 2009년 WBC를 앞두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 야구 팬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2006년 WBC는 한국 야구에 크나 큰 자양분이 됐다. 세계적인 팀, 선수들을 상대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WBC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덩달아 프로야구는 이러한 국제대회 선전을 바탕으로 빠르게 흥행가도를 달리며 2008년, 1995년 이후 처음 500만 관중, 2011년엔 680만, 2012년엔 710만, 이후 800만 관중 시대까지 오를 수 있었다.

류현진도 국가대표에서 맹활약했다. 처음 나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선 부진하며 '도하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 2경기에서 무려 17⅓이닝을 책임지며 홀로 2승을 수확, 한국의 9전 전승 금메달의 선봉에 섰다. 2009년 WBC에서도 5경기에서 1승 1홀드 ERA 2.57로 맹활약하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2경기 1승 ERA 3.60으로 활약하며 4년 전 '도하 참사'의 아픈 기억을 지운 그는 이후 MLB 진출과 부상 등으로 인해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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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BC에서 역투하고 있는 박찬호.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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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BC에서 팀 승리를 지키는 세이브를 올리고 동료들과 기뻐하는 박찬호(가운데). /사진=뉴스1
그 사이 한국야구는 국제대회에서 고전을 이어갔다. 2013년 WBC를 시작으로 2017년, 2023년까지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프로야구계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많은 야구 팬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 시즌 다시 800만 관중 시대로 회귀했지만 허구연 KBO 총재를 비롯한 야구계에선 여전히 '한국야구 위기론'을 내세운다.

전 국민적 관심을 다시 끌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국제대회 성적이다. 마침 류현진이 KBO리그로 복귀했고 박찬호처럼 베테랑이 된 뒤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고 뜨거운 불꽃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

MLB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는 아니지만 일본프로야구(NPB) 주요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프리미어 12가 오는 11월 열린다. 2015년 초대 대회 때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를 위시한 일본을 극적으로 꺾는 등 우승을 차지했지만 2019년엔 일본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은 나이 제한을 두고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려 대회에 나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대표팀을 이끌었던 류중일 감독이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게 됐다.

류현진의 대표팀 발탁 여부를 논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어쩌면 세대교체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류현진이라는 카드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2026년 WBC와 아시안게임까지 연속성을 그리기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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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류현진이 23일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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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WBC에서 투구를 펼치는 류현진. /AFPBBNews=뉴스1
그러나 시선을 달리하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류현진의 풍부한 경험은 일본을 비롯한 어떤 팀들의 선수들에게서도 찾기 힘든 것이고 이는 대표팀 젊은 선수들에게도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젊은 선수들에게는 국제대회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나아가 다시 한 번 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KBO리그를 정복하고 미국 무대에 진출한 류현진의 금의환향은 야구계를 뜨겁게 달궜다. 각종뉴스를 장식하며 야구를 즐기지 않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소식을 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류현진이 프리미어 12에 나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홍보효과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야구 팬들에게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류현진의 대표팀 활약을 지켜볼 소중한 기회도 제공할 수 있다.

허구연 KBO 총재는 위기에 놓인 한국 야구를 되살리기 위해선 국제대회 성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류현진이 16년 전 박찬호처럼 이 중심에 설 수 있다. 올 시즌 활약이 중요하다. 류현진이 기대에 걸맞은 성적을 낸다면 '37세 베테랑'이라할지라도 대표팀 발탁을 신중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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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가운데)이 인천국제공항에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온 팬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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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한화 이글스 프로필 사진. /사진=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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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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