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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 사진=NEW, 수필름 |
28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의 배우 이혜영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 이혜영은 '파과'에서 40여 년간 바퀴벌레 같은 인간을 방역해온 레전드 킬러 '조각'으로 분한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는 이혜영은 "'조각'이 남들에게 전설로 불리게 된 수수께끼 같은 힘의 원천은 뭘지가 궁금했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킬러 얘기는 비현실적이고,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 민규동 감독님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좋아했는데 판타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흔히 액션 영화에서 보는 그런 무드가 떠오르지는 않더라"라고 말했다.
오직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파과'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이혜영은 "사실 너무 두려웠고, 촬영 내내 불안했다. 도전해 본다는 생각으로 한 건데, 그 전까지 제가 만난 감독님들과 민규동 감독님의 프로세스는 좀 달라서 낯설었다. 최근에는 홍상수 감독님과 했는데 (민규동 감독은) 좀 타이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어 "민규동 감독님의 콘티는 완벽했다. 그 사이에서 정해진 운명에 관해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면서 감정은 절제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매번 불안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감독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구나' 싶었다. 불평, 불만한 게 좀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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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파과' 스틸컷 |
이혜영은 액션에 도전한 데 대해서는 "원작에는 액션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감독님께서 액션 영화를 만든다고 하시길래 솔직히 불안하고 겁도 났다. 감독님께서 '액션 안 하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욕심을 더 내신 것 같기도 하고, 찍으면서 더 요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헤영에게 액션 도전은 쉽지 않았다. 그는 "첫 촬영 때 싱크대에 부딪히는 장면을 찍다가 갈비뼈가 나갔다. 넘어졌는데 숨을 못 쉬겠어서 소파에 드러누워서 가만히 있었다"며 "이태원 촬영이 2박 3일이었고, 그 안에 끝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렇게 참고 찍다가 갈비뼈 한 대가 더 나갔다. 그 순간에 '몸 망치고, 영화 제대로 안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함과 고독이 밀려왔다. 저는 조깅하는 것만 찍어도 바로 정형외과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상을 입기 시작하니까 보호대도 따로 해야 하고, 그 위에 내복을 입고, 보호장치도 해야 하고, 정말 연기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는 게 많았다"며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감정과 기술의 경계에 서서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집' 하던 중에 결정됐고, 드라마 끝나고 열흘도 안 돼서 촬영에 들어갔다. 몸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근데 감독님이 원한 게 그냥 자연스럽게 운동을 해서 몸이 달라지는 느낌이 아니라 노인의 노쇄한 듯한 몸에서 힘이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저는 액션 배우로서, 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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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 사진=NEW, 수필름 |
액션에 대한 고충은 있었지만, 결과물은 이혜영에게 만족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파과'가 공개되는 순간 이혜영의 마음은 완전히 풀어졌다. 이혜영은 "그때 관객들이 꽉 차서 우리 영화 '파과'를 봤는데, 한국어 대사에 자막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외국인들이 너무 재밌게 보고 환호도 나왔다. 거기서 제가 비로소 안심을 했던 것 같다. 평이 좋아서 기세등등하게 귀국했다. 감독님이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혜영은 '파과'가 여성 서사의 영화인 점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배우로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다. 단지 한 인간일 뿐이다. 성별보다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 제가 한창 연기할 때는 여성이 남성의 상대적 역할에 머무른 건 맞다. 그래서 멜로에 적합하지 않은 여배우는 약간 밀려나 있던 건 맞지만, 지금은 여성 배우들이 할 만한 롤이 많아지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원래 상대역이 없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면서 "나는 상대 남자배우가 없는 편이었는데 모처럼 이 나이에 김성철을 만나게 됐다. 난 그냥 배우다. '여자 배우'라고 이름 지어지면 선입견이 생기는 거 같다"고 말했다.
특히 '파과'는 '쓸모'에 대해 곱씹게 되는 만큼 이혜영은 '쓸모없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그는 "쓸모 있다는 것보다 쓸모 없어진다는 것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내가 쓸모있는 배우로 살아남으려면 민 감독님의 프로세스에 익숙해져야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는 나만의 창의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근데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살아남기 위한 훈련이 됐고, 민규동 감독에게 많이 배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