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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엘엔컴퍼니 |
"한때 연기를 쉬고 카페를 차린 건, 결혼생활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아내가 부족한 나를 선택해 줬고 결혼을 해줬는데, 저는 아내에게 시간을 쏟고 술을 끊자고 생각했어요. 결혼하고서 모든 시간을 아내, 가족과 여행을 했고 출퇴근을 같이 할 수 있는 카페를 1, 2년 정도 했어요. 저녁에 퇴근하면 같이 국밥도 먹고 생활이 바뀐 느낌이 들었죠."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 김수진)에 임하기 전, 몇 년 동안 배우 류덕환의 일신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류덕환은 2021년 패션 브랜드 CEO 전수린과 결혼, 코로나가 터진 시기에 카페를 차리며 배우가 아닌 소상공인의 삶을 살았다. 하필 힘든 시기에 카페 사장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그는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통한 드라마 복귀가 자신에게도 반가운 연기 기폭제가 됐다.
"결혼생활이 제게 주는 안정감이 커요. 매일 술에 찌든 삶이 아니라 '내일 뭐 할까'란 생활이 됐어요."
아역부터 워낙 똘똘한 이미지를 풍겼던 류덕환이 많은 이벤트를 겪더니 사소한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잘 표현하는 33년 차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연기 외에 한눈을 팔지 않기로 했다.
"제가 연기적으로 고민도 많았고, 연기자가 나에게 행복을 주는 직업일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쉬면서 또 '돌아가고 싶다', '연기하고 싶다'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할 때 가장 만족감을 느끼고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제가 커피를 잘 내리지도 않고, 연출자로서 봉준호 감독님, 김석윤 감독님처럼 할 순 없겠더라고요. 저는 결국 배우로서 하고 싶은 게 아직 많아요."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80세 모습으로 천국에 도착한 이해숙(김혜자 분)이 30대 모습으로 젊어진 남편 고낙준(손석구 분)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현생 초월 로맨스. '눈이 부시게' 김석윤 감독과 이남규, 김수진 작가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으며, 김혜자는 '눈이 부시게' 제작진과 6년 만에 재회했다.
손석구는 이해숙의 사랑꾼 남편이자 천국의 우편 배달부 '고낙준' 역을 맡아 김혜자와 부부 역할로 만나게 됐다. 한지민은 기억을 잃고 천국에 나타난 정체불명 여인 '솜이' 역을, 이정은은 이해숙을 부모이자 스승처럼 따르는 일수 파트너 겸 후계자 '이영애' 역을 맡았다. 천호진은 천국지원센터의 수장인 '센터장' 역을, 류덕환은 천국교회의 '목사' 역을 연기했다.
극 중 목사는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뒤 천국에서 자라 어른의 모습을 갖게 된 영혼으로, 해숙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다. 목사는 극이 전개될수록 자신의 결핍을 드러냈고 해숙의 곁에서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선 존재로 성장, 해숙과 낙준의 잃어버린 아들이었음이 밝혀져 먹먹함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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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엘엔컴퍼니 |
-'천국보다 아름다운' 종영 소감은?
▶이번엔 이모들과 엄마 친구들, 장모님 등 지인들에게 연락이 진짜 많이 왔다. 장모님은 '오늘 그거 하던데', '오늘 좀 울던데'라고 하시더라. 재미있게 보시는구나 싶었다. 원래는 '반찬 갔다줄까'만 하시다가 드라마 얘기를 해주셔서 뿌듯했다.
-드라마에 대한 아내의 반응은?
▶우리 와이프는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서 대중의 눈으로 저를 보는데 이번에 엄청 좋아해 줘서 좋았다. 어제도 나에게 울면서 '오빠 너무 좋았어'라고 하더라.(웃음)
-초반에 비밀을 품은 캐릭터였는데.
▶주변에서 10명이면 5명이 '너 정체가 뭐냐'라고 물었다. 지민이 누나 정체도 물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결말에는 만족하는지?
▶내 신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는데, 저희 촬영장은 김석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커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감독님의 성향을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알아서 이 드라마가 잘 안 나오겠단 의심은 하나도 없었다. 저는 원래 이타적인 사람이어서 저를 아낄 줄 몰랐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하면서 나를 아끼는 방법,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야 선생님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걸 수 있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닥에 엎어지는 장면은 운동할 때도 제가 그렇게 아픈 적이 없는데 집에 가니 너무 아프더라. 선생님도 열심히 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빼겠냐. 한번에 촬영을 쭉 가야했는데 '이제 나도 20대가 아니구나' 싶었다. 계속 '팬티에 구멍이 났나' 확인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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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엘엔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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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튜디오 피닉스, SLL |
-대선배 김혜자와 연기가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감독님이 첫 미팅 때 바로 '합시다'라고 해서 진행이 됐다. 그때부터 '김석윤 사단'이 어떤 집단인지 알아봤다. 다들 감독님의 스타일에 대해서 '친해지고 나면 그냥 간다'라고 하더라. 저는 이번에 김석윤 감독님을 만나서 너무 영광이었고 진짜 존경하는 감독님이 됐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김석윤이란 이름 하나만 믿고 가는지 너무나 느껴졌다. 인간적으로도 감사했다. 처음엔 내가 폐를 끼칠까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김혜자 선생님 집에 초대를 받았고 편해졌다.
-목사의 어떤 면이 류덕환 배우와 어울렸을까.
▶감독님이 '김혜자 선생님이 잊고 있었던 인연이면 좋을 것 같았다'라고 하셨다. 나는 항상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바쁜 일정으로 (과거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 이후) 제가 잊혀졌을 텐데 제가 다시 나타나면 근사한 만남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선생님 기에 제가 죽었는데 2~3부쯤에 금방 익숙해졌다. 다음부턴 마실 나가듯이 현장에 나갔다. 이렇게 편한 현장은 처음이었다. 제가 '엄마'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제가 애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거기서 안 울려고 했다. 눈물을 머금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저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연기하는데 눈동자가 정말 '사기'였다. 훅 빨려들어가서 눈물이 훅 떨어졌다. 어떤 배우든 자기가 연기할 걸 준비하고 연기를 하는데, 선생님은 제가 느끼지 못한 세포를 깨워줬다. 예전에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할 때 김윤석 선배님의 연기 때문에 제 연기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김혜자 선배님에게 느꼈다.
-김혜자 선생님이 해준 조언이 있다면?
▶선생님이 조언은 절대 안 하신다. 장난은 많이 치신다. 어느 날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손하트'를 해주시더라. 그래서 어려움이 느껴질라야 느껴질 수 없었다.(웃음)
-손석구 배우는 함께 연기해 보니 어땠나.
▶현장에서 제가 콧물이 거의 배꼽까지 흘렀다. 석구 형님은 '콧물 잘 났다'라며 놀리더라. 석구 형은 제가 너무 보고 싶은 형이었다. 제가 잠시 카페를 했을 때 저와 친한 강한나 배우와 연결이 돼 손석구 배우가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때 '범죄도시'를 찍을 때였는데 저에게 '이거 멋있지 않냐'며 대본을 자꾸 보여주더라. '이상한 배우구나' 싶었는데 그 다음 작품들에서 너무 잘 하더라. '없을 것 같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무겁지 않고 깃털처럼 가볍더라. 맨날 좋은 댓글 왔다면서 자화자찬 댓글을 보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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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엘엔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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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튜디오 피닉스, SLL |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배우들의 '연기 차력쇼' 향연이었다.
▶정은 누나, 지민 누나와 한 번밖에 못 만난 게 아쉬웠다. 배우들이 자기만을 위해 연기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선 서로 주기 바빴다. 그 장면을 같이 했기 때문에 더 많이 신을 못 한 게 아쉬움이 더 컸다.
-은호는 환생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 봤나.
▶까탈스러움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은호에게 연민이 생겼고 제발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에서 받은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저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케미가 좋다'는 반응이 제일 좋은데 이번에도 그런 반응이 나와서 좋았다. '이 사람 좋다'보다는 '케미가 좋다'가 좋더라. 20대 초중반에 카페에서 어떤 여성분들이 제 드라마 얘기를 하던데 옆에 앉은 저를 못 알아보더라. 저를 역할과 분리해서 봐줬구나 싶어서 너무 좋았다.
-'신의 퀴즈' 팬들은 후속작이 있길 원하던데.
▶'신의 퀴즈'는 힘들 것 같다.(웃음) 마지막 시즌 하면서 '이제 어렵다'라는 걸 느꼈다. 대사도 어렵고. 그때도 AI 같은 걸 얘기했는데, 초천재가 아닌 내가 천재처럼 얘기하나 싶었다. 제가 사실 암기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 사실 제가 한진우처럼 통통 튀지 못한다. 박수칠 때 잘 떠난 것 같다.
-소상공인 상인의 삶은 어떻던가.
▶제가 류반장처럼 잘 뛰어다녔는데, 한남동 주민분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제가 카페를 열고 6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제가 주민센터에 가서 '정부 지침 어떻게 되는 거냐', '빨대 종이로 써야 하냐' 등을 먼저 물어보고 소식통이 됐다. 그런데 이게 힘든 게, 사람이 쪼잔해지는 것 같더라. 빨대값 30원을 아끼려고 전전긍긍한다는 게 힘들더라. 모든 사장님들이 이런 힘듦이 있겠구나 싶었다. 여름에 불티나면 겨울에는 손님이 줄 때가 있다. 그러면 다른 메뉴도 해야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많은 아르바이트생도 만나면서 몇몇 알바생과는 친하게 지내는 것도 힘들더라. 소위 '꿀 빨려는 알바생'이 있어도 제가 자를 수가 없어서 나갈 때까지 기다리게 되더라. 카페로 새로운 걸 하니까 '내가 부족한 게 진짜 많았구나' 싶었다. 카페엔 매니저도 없고, 저의 한탄을 물어봐 주지도 않더라.
-지난해 2월 전시 기획자로서 류승룡, 천우희, 지창욱, 박정민 4명의 배우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작가, 화가, 음악가는 다 자기 얘기를 하는데 나는 배우로서 타인의 삶만 살았던 것 같다. 배우는 자기 작품을 가질 수 없는 걸까 싶었다. '내 작품인데 결제하고 봐야하는데 이게 과연 내 작품이 맞나?' 싶었다. 내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또 없을까 싶어서 전시를 하게 됐다. 정해진 답변을 해야 하는 본인을 보면서, 제 전시회에서는 배우들이 잠깐이라도 편하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자님들 진짜 힘들겠더라. 저도 질문 만드는 것만 두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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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엘엔컴퍼니 |
-결혼생활이 자신에게 주는 안정감이 큰가.
▶그렇다. 예전엔 새벽 1시에 전화 와서 '술 먹자' 하는 선배님이 많았는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많은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40세가 가까워지면서 내 머릿속에서 내 답, 내 삶을 찾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제가 생각한 저의 루틴을 정하고 살아가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서 대비하지 않아도 되더라. 매일 술에 찌든 삶이 아니라 '내일 뭐 할까'란 생활이 됐다. 아내와 여행 스케줄 짜는 것도 좋더라. 제가 거의 짜지만.(웃음)
-영화 '장준환을 기다리며', '비공식 개강총회', '내 아내가 살이 쪘다', '불침:번' 등 연출작도 많은데, 차기작에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손석구 배우가 탐났다. 나도 저렇게 놀면서 편하게,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걸 십분 발휘하는 배우와 하고 싶었다.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다 보니 욕 먹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연출은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위해 끝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제작발표회 때 '우리 드라마를 보면 T도 F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류덕환의 원래 MBTI는 어떻게 되는지?
▶저는 INFJ다. 대문자 F다. 저희 와이프가 대문자 T여서 저랑 완전 반대다. 와이프는 지금 느끼는 순간을 좋아한다. 제가 프러포즈할 때 박수쳤던 게 제일 기뻐했던 표현이었다.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가 많이 울었던 걸 보니 이게 먹혔구나 싶었다. 김혜자란 인물 하나로 국민을 움직일 수 있었구나 싶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류덕환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제가 연기를 33년 했더라. 이번에 '나도 현장에 부담을 안 가지고 갈 수 있는 배우였구나'란 걸 많이 느꼈다. 연기는 항상 어렵고 두렵다. 연기가 답은 없는데 내가 가진 걸 답이라고 믿고 가야 한다. 예전엔 그게 혹시라도 틀어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이번엔 그게 나를 옥죌 수 있겠구나 싶어서 편하게 가려고 했다.
-앞으로 류덕환 배우를 작품에서 계속 볼 수 있는 건지.
▶불러주시면 계속 해야겠다. 제가 연기적으로 고민도 많았고, 연기자가 나에게 행복을 주는 직업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쉬면서 또 '돌아가고 싶다', '연기하고 싶다'라는 게 느껴지더라.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할 때 가장 만족감을 느끼고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생각보다 제가 커피를 잘 내리지도 않고, 연출자로서 봉준호 감독님, 김석윤 감독님처럼 할 순 없겠더라. 저는 결국 배우로서 하고 싶은 게 아직 많다. 얼마 전에 신구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아 내가 뭐라고.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배우란 직업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지울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류덕환을 봤을 때 배우로서 연기하는 걸 제일 응원해 주고 저도 감사하고 즐겁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