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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두산 베어스 대 KIA 타이거즈 경기가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KIA 6회초 2사 1,3루에서 3루주자 김호령이 이중 도루를 시도했으나 두산 포수 김기연에 태그아웃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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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정수빈이 3일 잠실 KIA전에서 전력 질주를 펼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
두산은 그동안 팀을 이끌었던 이승엽 감독이 지난 2일 자진 사퇴했다. 그는 성적 부진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며 진정한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하루 만인 3일, 두산은 잠실구장에서 KIA 타이거즈를 상대했다. 2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사령탑 사퇴 하루 만에 치르는 경기. 당연히 팀 분위기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선수단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다했다. 경기 전 타격 훈련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소화했다. 양의지(38)와 김재환(37) 등 베테랑이 중심이 돼 선수단 미팅도 주선하며 팀 분위기를 수습했다.
당장 임시 지휘봉을 잡은 조성환(49) 감독대행이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엔트리부터 곧바로 큰 변화를 줬다. 내야수 강승호(31), 내야수 양석환(34), 외야수 조수행(32)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며 2군으로 내려보낸 것.
전적으로 조성환 감독대행의 의중이 포함된 결정이었다. 조 대행은 "(엔트리 제외) 제안은 제가 했다"면서 "주전으로서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엔트리 조정을 하게 됐다. 그 선수들이 준비됐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다시 이곳에서 뛸 것이다. 그 부분은 제 눈으로 확인하든지, 아니면 2군에서 올라온 보고를 듣고 판단을 하겠다"고 말했다.
엔트리 대거 변동은 곧장 라인업 변화로 이어졌다. 이날 두산은 정수빈(중견수), 김대한(좌익수), 케이브(우익수), 김재환(지명타자), 김기연(포수), 임종성(3루수), 김민혁(1루수), 김준상(2루수), 박준순(유격수) 순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조 대행은 "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선수들한테 상기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결국 앞으로도 간절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욱 부여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특히 눈에 띄는 이름은 김민혁과 박준순이었다. 김민혁은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38경기에 출장해 타율 0.357(115타수 41안타) 5홈런, 2루타 7개, 30타점, 18득점, 8볼넷 17삼진, 장타율 0.548, 출루율 0.395의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1군에서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 경기 전까지 올 시즌 1군 출장이 4경기에 불과했다. 그런 김민혁에게 조 대행은 임시 지휘봉을 잡자마자 1군으로 콜업시켰고, 바로 선발로 내보낸 것이다.
여기에 또 '고졸 신인' 박준순을 과감하게 선발 유격수로 기용했다. 박준순은 2025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지명 당시 김태룡 두산 단장은 "20년가량 두산 내야의 한 축을 맡아줄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2024 퓨처스 스타대상'의 야구 부문 스타상을 수상했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주 능력을 골고루 갖추며 당장 프로 레벨에서도 통할 거라는 평가를 받은 재목이었다.
박준순은 조 대행의 믿음에 제대로 부응했다. 2회 2사 1루에서 첫 번째 타석을 맞이한 박준순은 KIA 선발 양현종 상대로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중간 안타를 터트렸다. 올 시즌 자신의 14번째 경기에서 터트린 개인 통산 2호 안타였다. 그리고 두 타석 만에 멀티히트 경기를 완성했다. 5회 선두타자로 나서 7구 승부 끝에 양현종 상대로 변화구를 결대로 공략해 우전 안타를 기록한 것. 이날 경기를 중계한 박용택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이 모습을 본 뒤 "자질이 넘치는 선수다. 기술적으로, 경험적으로 잘 성장하면 대형 내야수가 나올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9회에는 희생타로 타점까지 올린 박준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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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 케이브(왼쪽)가 3일 잠실 KIA전에서 슬라이딩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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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조성환(오른쪽) 감독대행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
당장 3일 경기에서 허슬두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는 게 고무적이다. 5회초에는 김석환의 초구가 3루 쪽으로 높이 뜨자 임종성이 공을 끝까지 따라간 뒤 몸을 내던지는 투혼을 보여줬다. 대형 방수포와 크게 충돌한 임종성은 잠시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두산 트레이너가 달려 나와 그의 상태를 살폈고,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경기에 임했다.
5회말 공격에서도 허슬 플레이가 엿보였다. 선두타자 박준순의 안타로 만든 무사 1루 상황. 후속 정수빈의 타구가 2루수 앞으로 향했다. 병살타성 타구. 이때 1루 주자 박준순이 아웃되는 상황에서도 2루 베이스를 향해 끝까지 슬라이딩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사실상 포스 아웃이 유력한 상황에, 그저 허리를 굽히며 공을 피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든 타자 주자를 살리려 주루 플레이를 끝까지 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수빈은 병살타를 피했다. 또 팀이 2-11로 뒤지며 이미 패색이 짙었던 9회말. 1사 1루에서 김동준의 우중간 안타 때 1루 주자 김민석이 3루로 전력 질주를 펼쳤다. 이어 박준순의 중견수 희생타 때 홈을 밟으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두산이었다. 이날 두산은 투수 교체도 빠르게 가져가는 등 벤치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물론 당장 팀 분위기를 확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산은 올 시즌을 포기한 게 아니다. 조 대행은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팬들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저는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선수단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강조했다.
일단 두산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승패보다 팀 분위기를 다잡는 것이다. 차분하게 다시 전력을 하나하나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박준순 등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선수들을 기용한 것도 이런 방향성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조 대행의 믿음 속에,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 당연히 이런 과정에서 부족한 경기력이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증명했듯이,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준우승팀 삼성 라이온즈 역시 고통스러운 리빌딩 과정을 참고 견디며 지금의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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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투수 곽빈(가운데)과 선수들의 모습.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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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두산 베어스 감독대행이 3일 잠실 KIA전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