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13.지역문화의 '한 지붕 두 가족'

발행:
채준 기자
/사진제공=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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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세 가족'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약 8년간 지상파를 통해 방영된 아침 드라마다. 한석규, 심은하, 차인표, 감우성 등 후일에 인기스타 반열에 오른 연기자들이 신인 시절에 출연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서울에 사는 이웃들이 평범한 일상을 시츄에이션 형식으로 풀어가면서 인기몰이를 했던, 요즘 말로 '국민 드라마'였다.


'한 지붕 세 가족'에서는 제목 그대로 단독주택 하나에 3개의 가정이 모여 산다. 본채 1층에는 집주인이, 본채 2층과 문간방에는 두 셋방살이 가족이 산다. 당시로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꼽으라면 단연 화목한 이웃이라는 설정이다. 얘긴 즉, 한 지붕 아래 전혀 다른 가정들이 모여 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사실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아웅다웅하면서도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을 이끌어가는 풍경은 매번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지역문화에도 한 지붕 세 가족까지는 아니지만 '한 지붕 두 가족'이 존재한다. 지역의 문화를 이끄는 문화원과 문화재단 얘기다. 현재 국내에는 지역문화 진흥 실행 주체로서 지방문화원과 지역문화재단 등 두 단체가 협조관계와 긴장관계를 오가며 양립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관련 법에 설립 근거를 두고 지역의 문화예술 증진을 위한 사업들을 운영·관리한다.


주인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둘 중의'형님'뻘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기초단위 문화조직인 지방문화원이다. 그 효시는 강화문화원. 해방 이후 혼란한 시기에 민주주의 제도 및 문해 교육 등 계몽운동을 펼쳤던 몇몇 지식인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1947년 설립되었으니 8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1960년대부터 설립이 본격화된 지방문화원은 한동안 각 지역에서 독보적인 문화조직의 위상을 유지했다. 현재 전국에 231개가 설치되어 있으니 기초자치단체별로 하나씩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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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원은 지역민 중심의 자율성을 토대로 한 민간단체로 출발했다. 그동안 각 지역의 문화원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었거나 소멸 위기에 처한 문화자원을 수집, 보전, 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에 따르면 이제까지 무려 140여만 건에 달하는 향토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척박했던 문화 공백기를 지나오는 동안 지역 문화유산 발굴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문화학교, 실버프로젝트, 생활친화적 문화공간 조성, 우리문화역사마을만들기, 문화자원봉사 등의 사업을 통해 지역문화정책의 전초기지 역할도 해왔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지방문화원의 위상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경기문화재단(1997년 설립)을 필두로 지방문화원의 '동생'뻘인 지역문화재단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은 짧은 시간에 지방문화원을 넘어 지역 문화예술 진흥의 주요 주체로 성장했다.


사단법인인 문화원과 달리 재단법인 형태의 문화재단은 지자체로부터의 출연과 보조를 통해 상대적으로 많은 재원의 확보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단은 지역의 예술가와 주민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전개하는 데 문화원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게다가 지역의 오랜 토호들이 중심이 된 '낡은' 인적 조직이라는 문화원에 대한 이미지와 달리, 문화재단은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로 구성되어 실행력도 보유하고 있는 '젊은' 조직이었다. 때마침 건립 붐을 이룬 문화예술회관 등 문화시설을 운영하기에도 제격이었다.


그러나 지역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의 중심 기관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의중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통해 뽑힌 지자체장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정치적 비전을 문화 분야에서 구현해 줄 전문기관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사단법인 형태의 문화원 조직체계는 지자체의 직접적인 행정지시를 수용할 수 있는 업무체계와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지자체가 수행해야 할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관련 시설을 운영할 인적, 물적 자원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되었다. 이에 자자체장은 새로운 문화예술 진흥 주체가 필요했고, 이는 지역 주민과 예술인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


문화재단이 지난 20여 년간 전국 17개 광역지자체를 비롯해 기초자치단체 120여 개 등 총 130여 개로 불어나는 동안 문화원은 대조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시달려 왔다. 무엇보다 사업 수행의 필수 기본 조건인 전문인력과 재원 그리고 사업 운영 공간이 부족하다. 평균 예산은 문화재단 77억 원의 10분의 1에 불과한 문화원 7억 1천만 원 수준이며, 직원 수 역시 평균 3.8명으로 문화재단의 40명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2021년 기준). 이쯤 되면 지방문화원이 본래의 기능을 잃고 유명무실해졌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뼈아픈 자성론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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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 한동안 '잘 나가던' 문화재단의 위상도 다소 흔들리는 모양새다. 일부 지역에서 폐지되거나 존폐 위기에 처한 문화재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관광 기능과 합병하여 '문화관광재단'으로 재출범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정치권 인사 등 비전문가들이 대표 혹은 경영진으로 참여하는 지역에서는 전문성의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문화재단의 위기는 독립성과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게 많은 연구자나 현장의 지적이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재단의 탄생에 깊이 관여한 지자체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자체장의 의중을 헤아리다 보면 독립성이 훼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이 독립성을 잃게 될 경우 불거질 문제점 중 하나는 지역 고유의 문화를 계승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지자체장의 의도대로 움직이다 보면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지자체장의 마음이 바뀌거나 지자체장 자체가 선거를 통해 교체될 때마다 사업은 수정되거나 폐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연속성을 지녀야 할 지역의 향토 문화는 좌표를 잃고 희석되거나 심한 경우 소멸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역문화에서 고유의 개성과 특성이 없다면 과연 지역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형님'뻘인 문화원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원은 재정적으로 비교적 자유롭다. 게다가 지역에서 문화계의 어르신으로서 갖는 위상과 무게도 있다. 따라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또한 지역 고유의 문화(향토문화)를 이제껏 발굴, 유지, 보전해 온 주체도 문화원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역할은 법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러기에 현장에서는 역할 분담의 모호함에서 오는 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라도 문화원과 문화재단 간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예술가나 지역민에 대한 문화예술 지원은 동생뻘인 문화재단이, 지역 고유의 문화를 발굴, 계승, 발전시키는 주체는 형님뻘인 문화원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드라마의 '한 지붕 세 가족'은 푸근한 인심만으로도 화목할 수 있지만, 현실의 '한 지붕 두 가족'은 법적·제도적 선긋기가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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