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스릴러에는 유독 실화 사건이 많다. 왜일까.
2003년 500만 관객을 돌파한 '살인의 추억'은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했고, 2008년 역시 500만 관객을 넘어선 '추격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모티프 삼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스릴러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범죄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작으로 꼽힌다.
어디 이뿐일까. 2006년 300만 흥행작 '그놈 목소리'는 결국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은 1991년 이형호군 납치 살해사건을 그대로 땄다. 2005년작 '홀리데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로 유명한 1988년 지강헌 사건을 담았다.
실제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스릴러는 최근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 위기에 처한 1997년의 실제 살인사건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역시 지난해 개봉한 잔혹한 스릴러 '실종'은 2007년 여름 시골마을에서 실제 일어났던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에서 출발했다. 감우성이 직접 범죄자를 처단하러 나선 경찰로 분한 새 영화 '무법자'는 지존파 사건 등 6건의 실제 강력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한창 제작인 진행중인 영화도 있다. 2002년 유해로 발견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아이들은 산으로 가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현재 막바지 시나리오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스릴러 성격보다는 드라마적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탄생할 전망이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나 김윤진 주연의 '세븐 데이즈'가 각각 300만, 2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바 있지만, 스릴러는 전통적으로 한국 관객에게 인기있는 장르가 아니었다.
최근에도 '트럭', '리턴', '더 게임', '핸드폰', '백야행', '용서는 없다'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할리우드식 선명한 대립 구조와 반전을 거듭하는 범인 찾기 게임을 내세운 작품들의 흥행 성적에 비하면 실화를 영화화한 영화들의 성공률이 높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들은 일단 제작이나 개봉 자체가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쉽고, 화제성이 흥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할리우드 스릴러가 주로 노리는 반전의 묘미보다는 처음부터 범인을 공개하기 마련인 실화 소재 스릴러에 더 많은 관객들이 공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산으로 가지 않았다'를 투자 배급하는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의 방옥경 과장은 실화 스릴러의 장점을 정서적 폭발력과 이야기의 진정성으로 꼽았다.
방 과장은 "실화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는 데서 대중적으로 접근하기가 쉽다. 실화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든지 감정적인 폭발력이 있다. '저게 진짜란 말이야' 하는 감정적 파괴력이 상당하다"며 "스릴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화에서 바탕한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면식 없는 타인을 노리는 '묻지마 살인사건' 등이 증가하고, 강력범죄 및 흉악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 실화사건 영화의 화제성도 더욱 높아졌다. 그만큼 사려깊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기도 한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만 따 온 경우엔 비교적 자유롭지만 당시 피해자나 사건 관계자들이 아직 남아있는 실제 사건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경우엔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수다.
단순한 흥밋거리로 실제 비극을 다룰 경우, '비극을 마케팅에 이용했다'는 화제성만큼의 반발도 우려된다.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이태원 살인사건' 등 많은 한국의 실화 소재 스릴러들이 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문제를 제기하는 등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데 주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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