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2일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다. 70개국 무려 301편의 영화가 넘실댄 이 축제의 현장에선 한 눈 팔면 티켓이 매진되는 소동이 일었고, 한 눈을 팔면 스타와 관객의 떨리는 만남이 성사되곤 했다. 비도, 태풍도 막지 못했던 열띤 축제의 지난 열흘, 과연 부산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Day1..개막식 레드카펫은 후끈? 화끈?
지난 3일 개천절과 겹친 BIFF 개막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국의 춤사위가 가득 담긴 개막작 '바라'도, 댄서가 돼 무대를 누빈 김규리의 축하공연도, 사회자 곽부성과 강수연의 호흡도 축제의 시작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화룡점정은 레드카펫을 누빈 여신들의 드레스 행렬.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배우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냈다. 그러나 최근 레드카펫마다 끊이지 않은 파격 노출은 이번 BIFF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검정 시스루 드레스로 엉덩이골까지 아슬아슬하게 노출한 배우 강한나는 단숨에 화제의 인물에 올랐다. 상하체를 모두 드러낸 한수아의 골드 드레스도 화제였다. 눈의 휘둥그레지는 볼거리였으나 날로 격해지는 노출 경쟁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Day2..떴다, 강동원!
지난 4일엔 드디어 강동원이 BIFF에 떴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영화 '더 엑스'가 갈라 프레젠테이션부문에 초청돼 관객과의 대화(GV)에 모습을 드러낸 것. CGV 스크린X가 중재에 실패한 행사 참여를 두고 남동철 프로그래머와의 갈등이 표출되는 등 소동 끝에 불참을 결정했던 그는 결국 이를 번복하고 조용히 관객과의 약속을 지켰다. 참석 여부를 두고 한참이 뜨거웠던 데다, 지난해 소집해제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선 강동원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여서 팬들과 언론의 흥분은 더 컸다. 강동원의 GV는 그의 쏘~ 쿨~ 한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경상도 사나이답게 간단한 인사에 이어 "잘 왔는지 잘 못 왔는지 모르겠다"며 담담히 말문을 연 그는 "조금 전 부산에 도착했는데 바로 돌아간다"는 답을 남기고 총총히 부산을 떠났다.
◆Day3..박중훈·하정우, 배우 말고 감독님 가실게요
지난 5일, 첫 주말을 맞은 부산영화제는 스타들과 관객과의 만남이 봇물을 이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바쁘게 해운대를 오간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박중훈의 '톱스타' 팀과 하정우의 '롤러코스터' 팀이다. 박중훈과 하정우 모두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처음 부산을 찾았다. 확고한 작품 세계와 개성을 지닌 두 배우의 변신에 영화팬들의 관심도 컸다. 몇 시간을 간격으로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 더욱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박중훈은 "영화는 1·2등을 나눠야 하는 달리기가 아니다"며 "하정우에게 격려를 보낸다"고 말했고, 하정우는 "어렸을 적부터 존경하던 선배님"을 향해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며 화답했다.
◆Day4..빗속에도 끄떡없어요~
일요일이었던 지난 6일엔 낮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러나 빗속이라고 BIFF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우비를 입지 않고선 다닥다닥 붙어 앉아 야외 행사를 지켜볼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부산의 영화팬 모두 질서정연하게 빗속의 BIFF를 즐겼다. 하정우와 '롤러코스터' 팀에게 환호를, 생소한 유럽 관객들에겐 응원을 보냈다. 정우성 한효주가 함께한 '감시자들' 무대인사에선 마침 비까지 그쳐 분위기가 더욱 후끈 달아올랐다. 개인 저녁엔 김기덕 감독이 자신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온 여러 후배 감독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효율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의 마음 속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에 부산의 영화팬들도 흠뻑 빠져들었다.
◆Day5..부산 달군 '설국열차' 어게인
한국에서야 '설국열차'가 여름 개봉해 9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지만 해외에서는 이제 겨우 시동을 걸었다. BIFF 5번째 날 공식 스크리닝에 이어 기자회견을 가진 '설국열차'는 명실상부한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기자회견에는 두 주역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함께했다. 역시 해외 취재진들의 열띤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설국열차'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다 생각했건만, 귀가 번쩍 뜨이는 고백은 이날도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은 마르크스주의 같은 이론의 틀에 영화를 가두지 말아달라며, 이제 '설국열차'보다 예산이 많은 영화는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함께 일해 보고픈 배우로는 이미숙과 할리우드 명배우 잭 니콜슨을 꼽았다. 물론 우리의 봉 감독은 지금껏 3편의 영화를 함께 한 페르소나 송강호를 빼놓지 않았다. "송강호 선배님과는 7~8편 채우고 싶어요." 송강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 것은 당연지사.
◆Day6..임권택이시여, 영원하시라~
지난 8일 열린 임권택 감독의 오픈토크엔 그를 존경하는 네 명의 배우가 함께했다. 임 감독과 서로 다른 작품으로 호흡을 맞췄던 안성기, 강수연, 조재현, 박중훈은 한국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원한 현역 감독인 임권택 감독이 "오래 남아주시길" 염원하면서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를 이어갔다. 듣는 이들도 말하는 이들도 절로 흐뭇해진 순간이었다. 임 감독은 올해 BIFF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영화제는 이를 기념해 102편의 영화 중 무려 71편을 상영하는 전작전을 열었고, 임권택 감독은 102번째 영화 '화장'의 제작보고회를 부산에서 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난 5일에도 뭉클한 순간이 있었다. '서편제' 20주년을 기념한 마스터클래스 말미엔 '서편제' 부녀 오정해와 김명곤이 함께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함께한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BIFF의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Day7..두 번은 못 피한 태풍
올해 BIFF는 시작부터 24호 태풍 피토가 접근해 관계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다행히 피토는 방향을 틀었으나, 다음에 닥친 25호 태풍 다나스는 그대로 부산을 향해 직진했다. 무려 15년 만에 BIFF를 덮친 태풍에 영화제도 비상이 걸렸다. 태풍 영향권에 접어든 8일부터 야외 시설물을 철거하고 야외 행사를 모두 취소하거나 장소를 옮겨 진행했다. BIFF 참석을 저울질하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내내 추이를 지켜보다 9일 새벽 절정을 이룬 태풍이 별 탈 없이 부산을 떠난 뒤 참석을 확정했다. 다행히 날씨의 신은 BIFF를 사랑했는지 무시무시한 기세로 부산에 접근했던 태풍 다나스는 급속히 세력이 약화돼 별다른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자, 다시 축제 시작이다.
◆Day8..막 내린 아시안필름마켓
영화제 개막 8일째인 지난 10일엔 아시안필름마켓이 먼저 막을 내렸다. 전년도보다 규모부터 훌쩍 성장한 이번 마켓에는 최대 4000여명의 영화 관계자들이 함께했고, 1만회 이상의 제작, 매매, 투자 관련 미팅이 이뤄졌다. 성사된 계약은 약 150건으로 추산된다. 관객을 위한 영화제만이 아니라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영화제로서 BIFF의 산업적 위상을 되새길 수 있는 결과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어워드에선 익숙한 감독들의 신작 기획들이 시선을 모았다. 김지운 감독의 '인랑', 장률 감독의 '경주', 강이관 감독의 '옥택선 프로젝트' 등. 이들 작품이 영화로 완성돼 다시 BIFF를 찾게 되길 기다려 본다.
◆Day9..타란티노가 왔다!
BIFF 후반부의 최대 빅 게스트 쿠엔틴 타란티노가 드디어 부산에 왔다. BIFF 첫 방문이다. '펄프픽션', '킬 빌', '바스타드', '장고'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으며 영화팬을 사로잡은 그는 부산의 영화팬들도 바라마지않았던 스타 감독. 그러나 타란티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따로 있었다. 그는 지난 11일 봉준호 감독과 오픈 토크를 갖고 봉 감독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내 또한 눈길을 모았다. 타란티노 감독은 "사실 충동적으로 오게 됐다"며 마카오에서 모 영화상을 받은 뒤 '부산에 가면 봉 감독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에 냉큼 부산행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봉준호 감독은 과거 스필버그의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괴물'과 '살인의 추억'은 걸작"이라며 칭찬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 타란티노는 미국의 '봉덕후'였던 것이다.
◆Day10..그리고 폐막
숨 가쁜 시간을 지나 온 BIFF는 12일 오후 7시 폐막식을 끝으로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송선미와 윤계상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폐막작으로는 우리 시대 서민 가족들의 현실을 세심하게 그려낸 김동원 가족의 '만찬'이 상영된다. 어느덧 18살 청년이 된 BIFF는 어느 때보다 탈 많고, 말 많고, 들썩거린 열흘을 보낸 듯하다. 청년기를 맞이한 올해 BIFF의 변화는 과연 19살, 20살의 BIFF를 어디로 이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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