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0회 칸국제영화제가 17일 개막한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홍상수 감독의 '그 후'가 경쟁부문에 나란히 진출, 한국 첫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것인지가 일단 가장 관심사. 하지만 시선을 넓혀보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들을 찾을 수 있다.
◆칸영화제는 일흔살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는 일흔이란 나이에도 변화하는 영화 환경의 중심에서 함께 움직이며 매년 5월이면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칸영화제는 1932년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의 대항마로 출발했다. 파시스트가 베니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1939년, 프랑스는 칸이 아닌 대서양 연안의 비아리츠에서 영화제 개최를 추진했으나 2차대전과 맞물려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1회 영화제가 열린 것은 1946년 9월. 이후 1948년과 1950년, 196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세계의 영화들을 선보이며 국제적 명성을 얻어 왔다. 지금의 황금종려상이 주어진 건 1955년부터다.
70돌을 맞이한 칸영화제는 올해 특별 프로그램과 책자 등을 통해 이를 기념하면서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도 영화제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변화
올해 칸 영화제는 출품작 발표부터 변화하는 영화 환경을 적극적으로 품는 모습을 보였다.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노아 바움백 감독의 '마이어로위츠 스토리'를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초청한 것은 일대 사건. 아마존과 손잡은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를 지난해 개막작으로 선보인 데 이어 한발 더 나간 셈이다.
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70주년 기념으로 제인 캠피온의 '탑 오브 더 레이크: 차이나걸 과 데이빗 린치의 '트윈픽스' 등 TV시리즈 영화를 선보인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 VR영화 또한 상징적인 초청작이다. 보수적인 영화제로 평가받아 온 칸이 이로써 영화의 개념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극장 개봉작은 3년이 지나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프랑스법 위반"이라며 프랑스극장협회가 반발했고, 칸이 한 발 물러선 상태. 칸 집행위원회는 '옥자' 등의 초청 번복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하면서 내년부터는 프랑스 극장 개봉영화만 경쟁 부문에 출품할 수 있다고 새 규정을 만들었다. 이 결정이 영화와 극장을 따로 볼 수 없다는 철학의 반영인지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 퇴행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칸이 영화의 변화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여성
여성은 이번 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이탈리아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모델로 한 포스터가 원본보다 허리를 더 잘록하게, 다리를 날씬하게 보정, 이른바 '포토샵' 논란에 휘말리며 포문을 연 올해의 칸은 일단 초청을 통해 적극적으로 여성들을 끌어안은 모습.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경쟁부문 심사위원 9명 중 4명이 여성이며, 소피아 코폴라, 린 램지, 가와세 나오미 등 여성감독의 영화 3편을 경쟁부문에 불러들였다. 지난해 호평이 쏟아졌던 마렌 아데 감독의 '토니 에드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빈축을 샀던 칸에서 제인 캠피온 이후 24년 만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여성감독이 나올까.
어느덧 '대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이 된 소피아 코폴라는 '비가일드'(The Beguiled)를 선보인다. 경쟁부분 초청은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2번째. 197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을 맡은 돈 시겔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비가일드'는 미국 남북전쟁기를 배경으로 버지니아주의 여학교에 부상을 입은 북부군 장교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콜린 패럴, 니콜 키드먼, 엘르 패닝, 커스틴 던스트 등이 출연했다.
'케빈에 대하여'로 잘 알려진 린 램지의 신작은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You Were Never Really Here). 조나단 아메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성매매에 연루된 소녀를 구하려는 참전 용사의 이야기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았다. 린 램지 또한 단편영화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2회나 수상했으며 꾸준히 칸영화제에서 작품을 선보여 오고 있는 감독이다. 경쟁 부문 초청은 '케빈에 대하여' 이후 2번째다.
일본의 대표 여성감독 가와세 나오미는 '빛'이라는 뜻의 신작 '래디언스'(히카리)로 칸을 찾는다. 사진 작가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음성해설 작업을 담당하는 여자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면서 시작되는 감성 로맨스물이다. 1997년 '수자쿠'로 신인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의 최연소 수상자로 화려하게 칸에 입성한 가와세 나오미는 '너를 보내는 숲'(2007)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는 등 7편의 영화를 칸에서 선보인 칸 우등생이다. 경쟁 부문 초청은 이번이 5번째다.
배우로는 니콜 키드먼이 단연 돋보인다. '비가일드'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 등 경쟁부문 2편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제인 캠피온의 TV시리즈에도 출연한다. 비경쟁부문 화제작인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하우 투 토크 투 걸즈 앳 파티'에도 주연을 맡아 무려 4편으로 칸의 관객을 만난다. 티에리 프레모 감독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그녀의 변화를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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