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무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뮤지컬 '서편제'는 이대로 떠나보내기 못내 아쉬운 공연이다. 이청준 작가의 소설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이 이야기는 뮤지컬이란 또 다른 창구를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한 서린 득음의 과정, 이별과 만남을 무대 위에 펼쳐보인 이 작품은 어떤 경지에 오르려는 예술가의 집념을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와 색채로 그리는 작품이다. 뮤지컬과 판소리가 함께할 때의 강렬한 시너지를 또한 경험할 수 있다.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서편제'란 영화보다 뮤지컬로 먼저 다가갈지 모른다.
'서편제'는 소리꾼 유봉 아래 소리를 배우며 자란 송화와 동호 남매의 이야기다. 한때 촉망받는 소리꾼이었던 유봉은 고통과 유랑을 통해서야 득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믿는 독선가다. 소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그의 딸 송화는 묵묵히 소리꾼의 길을 걷고, 결국 아버지의 집착 속에 눈까지 잃고 만다. 어려서부터 유봉이 제 어머니를 죽였다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이복동생 동호는 가족을 떠나 살아간다.
영화 '서편제'가 한 많은 여성 소리꾼 송화의 삶에 가장 깊숙이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뮤지컬 '서편제'는 자신만의 소리를 얻기 위해, 결국 저마다의 '득음'을 위해 각기 외로운 길을 걸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비교적 균형있게 다룬다. 유봉의 전사에도 디테일이 더해졌고, 동호는 아예 화자가 되어 모든 사건을 바라보며, 동시에 서양 음악-록을 하는 가수이자 뮤지션으로서 송화와 극적 대비를 이룬다.
그럼에도 기어이 외롭고 힘겨운 소리꾼의 길을 걸어가는 송화가 이야기와 소리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동시에 뮤지컬 넘버와 판소리란 이질적 장르를 번갈아 선보이며 관객의 귀를 또한 여지없이 붙든다.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로서 오롯한 가치를 입증한다.
이번 2017년 뮤지컬 '서편제'에선 국악인 이자람, 뮤지컬 디바 차지연, 국립창극단 소속 이소연 세 명이 송화를 연기했다.
그 중에서도 2010년 '서편제' 초연부터 함께해 온 이자람의 존재는 한국의 색채가 가득한 이 뮤지컬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뮤지컬 '서편제'의 대표 넘버인 '살다보면'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송화와 함께 성장해가는 판소리 실력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내보이는 '사랑가', '심청가' 등에선 이자람의 저력이 여지없이 묻어나온다. 눈먼 자신을 남겨두고 결국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는 1막의 막바지 넘버 '원망', 극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심청가-눈 뜨는 대목'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백미다. 귀기마저 느껴지는 '원망'에선 듣는 이마저 온 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고, 송화의 삶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마저 안기는 '심청가'는 그 애절하고도 풍성한 판소리에 절로 심취하게 만든다.
뮤지컬 '서편제'는 대중과의 접점을 고민한 티가 역력한 작품이다. 2010년 초연 이후 제작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2014년 공연 이후 3년 만에 의기투합한 스태프와 원년 멤버, 새로운 배우들이 힘을 합쳐 다시 무대에 오른 뮤지컬 '서편제'는 더 친숙하고 극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미색 한지가 나부끼는 가운데 한 많은 소리꾼의 길처럼 돌고 도는 원형 무대 또한 매력적이다.
11월 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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