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투'가 무엇인지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라고 하면 쉽지 않겠지만,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질투의 감정은 많은 드라마, 영화에서 그려내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영화 '질투의 역사'(감독 정인봉)은 이런 질투를 포커스로 내세운 영화다.
다섯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질투의 역사'를 보기 전에는,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벌어지는 촘촘한 질투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렸으리라 기대했다. 오지호, 장소연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에 새로운 변신에 도전한 남규리까지. 이들이 그려갈 '질투의 역사'는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뚜껑을 연 '질투의 역사'에는 공감을 얻을만한 촘촘한 질투의 감정도 없었거니와, 당연히 있어야 할 개연성도 없었다. 화이트데이 개봉을 앞둔 이 영화는 범죄마저 질투로 포장해 버린 치정 복수극이었다.
대학시절 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수민(남규리 분), 원호(오지호 분), 진숙(장소연 분), 홍(김승현 분), 선기(조한선 분)는 10년 만에 군산에서 다시 만난다. 이들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이야기는 10년으로 거슬러가 다섯 남녀의 비밀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는 수민은 대학선배 원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원호가 군산 교도소에 수감 되자 수민은 군산으로 전근 와 '옥바라지'를 했고, 원호가 출소 한 후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원호는 교수 추천을 받아 2년간 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수민은 원호를 기다리고, 돌아오면 결혼하기로 약속하지만 원호를 기다리는 수민 앞에 또 다른 선배인 선기가 찾아온다. 친구인 원호에 대해 시기심을 가지고 있던 선기는 수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래도 내 마음은 고백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수민은 그런 선기의 고백에 기분 나빠하면서도 함께 술을 마시고, 선기는 수민의 술에 약을 타서 먹인다.
나쁜 일을 겪은 수민은 한국으로 돌아온 원호를 밀어낸다. 이유도 모른 채 이별한 원호는 술만 마시며 괴로워하고, 가장 친한 후배라는 홍은 그 기회를 틈타 (짝사랑하던) 수민에게 접근해 사귀게 된다. 홍은 원호에게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알리고 "형 생각해서 미리 말해주는 것"이라며 싸움까지 하게 된다. 수민은 홍과 만나면서도 몰래 원호를 찾아갔고, 홍 마저 수민을 떠난다. 오랫동안 원호를 짝사랑 해온 진숙 역시 질투심에 수민에게 나쁜 짓을 한다. 이처럼 영화는 얽히고설킨 다섯 남녀의 관계를 그리며 '질투심'을 끌어내려고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고 계속 갸웃거리게 된다.
일단 주인공 수민의 감정 변화가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것은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해보더라도, 그 남자와 가장 친한 동생과 사귀며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그 와중에 또 사랑했던 남자를 찾아가 사랑한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그러던 수민이 10년 뒤에 갑자기 다 불러모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역시 왜? 라는 생각만 하게 만든다. 애처롭다가도, 공감이 되지 않아 답답하다.
두번째는 질투심으로 인해 자신의 친한 대학 동아리 후배이자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선기의 행동이다. 조폭 영화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들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선기의 행동은 어떤 개연성도 얻지 못한다. 이 범죄마저 그저 질투로 포장한 모양새에 관객은 불쾌할 뿐이다.
정인봉 감독에게 이 같은 범죄를 질투로 포장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인봉 감독은 이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좀 그렇게(자극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인간 안의 악마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착하게 말하지만 그 안의 악마성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다. 멀쩡하던 대학생이 질투심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 한 여성의 인생을 망치고도 10년 나타나 큰소리치는 모습에 찝찝한 기분이 든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 있는데." 약 28년 전 방송 돼 시청률 56%를 돌파하며 사랑받았던 드라마 '질투'는 '지금', '내 눈앞'에서 느끼는 질투라는 감정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10년 전 질투의 감정으로 인해 파괴지왕이 된 '질투의 역사' 속 주인공 수민의 감정에 과연 누가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진지한 장면에서 한숨, 혹은 웃음이 터져 버린다.
3월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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