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금' 중전마마 문정왕후 역할로 이름을 알린 배우 출신 박정숙이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가 되기까지 인생사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최근 유튜브 채널 '조은주의 Q'에는 '대장금 배우·MC 출신 박정숙이 연예계를 떠나 선택한 길'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해당 영상엔 백발 머리의 박정숙이 등장,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3년 이영애와 함께 출연했던 '대장금' 속 모습과는 또 다른 중후한 매력이 돋보였다.
박정숙은 "미디어라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면서 영향력이 대단하다. 제가 미디어에서 일한 건 딱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로, 드라마 '대장금'이 마지막이었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그 이후로 국제기구 대표로도 지내고 대학교수도 하고 지금은 공공기관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근데 다들 기억을 '대장금 왕비'로 하실 거다. 오늘 시청자 여러분께서 절 보시면 '너무 많이 변했다', '세월 제대로 맞았다' 이렇게 말씀하실 거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떨리는 마음이다. 지난 20년 동안은 미디어를 떠나 퍼블릭 서비스,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계속 일해왔다. 특히 이제는 (배우가 아닌) 국제기구인으로 살아온 기간이 훨씬 더 길다. 그러다 오늘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너무 반갑다"라고 덧붙였다.
배우에서 돌연 국제기구·공공기관 대표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박정숙은 "대전엑스포 홍보사절이라고 해서 세계에 가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역할로 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게 93년도니까, 그 당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가서 인사하거나 하면 다들 '곤니찌와, 니하오' 이렇게 반응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한복을 입고 다녔다. '일본도 중국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소개했던 게 내 첫 번째 직업이었다. 미디어에서 일하면도 계속해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인터뷰라든지 역할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가 '대장금' 드라마를 통해 전 세계에 제 얼굴을 알릴 수 있게 됐다. 한류라는 게 생겨나게 되면서, 조금 쉬면서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해외에 나가 보니까 오히려 '대장금' 중전마마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서, 교수님이 저랑 밥을 먹자고 한다거나 한국을 소개해달라거나 이런 일이 많이 생겼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처음엔 공공정책 유학으로 콜람비아대학교를 다녔다. 가서 보니 우리나라 문화, 외교라든지 한류를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한국 자체에 대해 말이다. 그러면 한류라는 건 단순한 문화콘텐츠 수출이 아닌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공공정책 중 하나다, 외교 중 하나라는 걸 공부하게 됐다. 그걸 중심으로 하다 보니까 당시에 반기문 총장님이 유엔 사무총장님이셨는데 '대장금 왕비가 콜롬비아대에 있대' 소문을 들으시곤 행사가 있으면 절 초대를 많이 해 주셨다. 유엔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기회가 생긴 거다"라고 말했다.
박정숙은 "그때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출범했다. 빌 게이츠가 백신을 전 세계 최빈국에 나눠주는 국제기구를 만들었는데, 그 기구의 한국 오피스를 연다고 저한테 괜찮은 분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제가 많은 분을 소개해 줬는데 '그냥 네가 하면 어떻겠냐' 이렇게 된 거다. 그렇게 세계백신면역연합의 한국 대표가 돼서,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한국 대표로 10년 정도 일을 하고 그 이후로 스마트시티기구 3년 정도 일하고 국제기구 일을 주로 하다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 이사로는 1년 8개월 정도(2026년 5월 기준) 됐다"라고 놀라운 이력과 근황을 밝혔다.
직업적인 고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터놓았다. 박정숙은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이유가 있는 어려움이었다. 제 생각엔 제 성격이 5년 정도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그게 똑같은 일이면 견디지 못하는 나쁜 성격인 거 같다. 보통 전문가가 되려면 후배들에게 얘기할 때 '10년은 일해야 그 분야에서 내가 전문성을 가졌다' 말을 하는데, 정작 저는 한 5년 정도까지 익숙해지고 나면 새로운 걸 접목하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까 방송계 10년에 교수, 국제기구 10년, 이제는 공공서비스 10년을 바라보며 가고 있다.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하면 새 분야에 도전하다 보니 그 분야에서 이제까지 계시던 분들이 '왜 저 사람이 이 일을 하냐' 그러시고, 신뢰감을 얻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많다. 그럴 때마다 더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하고 성과를 반드시 한 2~3년 안 에는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이게 어떻게 생각하면 나를 개발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론 전투적이라 여유가 없는 건 나쁘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박정숙은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해서 재밌다. 요즘 시대는 뭐든 융합하는 게 좋지 않나. 한 분야만 많이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을 노드, 결정해서 네트워킹을 만들면 훨씬 더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그런 점에선 제가 그래도 '시대를 잘 타고났다'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영 국민의힘 강동을 당협위원장, '정치인'의 아내로서 남모를 속앓이도 고백했다. 그는 2012년 5세 연하의 국회의원 이재영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다.
박정숙은 "단단해진 건 결혼 후에 단단해진 거 같다. 저는 마흔둘이 돼서 결혼했고, 마흔세 살에 아들을 낳았다. 얼마나 늦게 결혼을 한 거냐. 방송국에서 열심히 활동할 때, 90년대 그 시대만 해도 '여성이 결혼하면 은퇴'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제가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 거다. 그랬는데 정말 우연하게 국제기구에 있는 남편을 만났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우연하게도 남편은 저와 결혼 후 정치인이 됐다. 아시다시피 정치인은 이유 없이 반대파가 반이 된다. 50%가 적이 되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더라. 제가 처음 겪어보는 현상이었다. 제가 아닌, 남편이 정치인인데 저를 그냥 이유없이 싫어하는 분들이 생기는 거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세상이 이렇게 쉽지 않구나. 그전까진 내가 열심히만 하면 인정받고 박수를 보내줬는데, (정치인의 아내가 되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다음부터는 땅에 발을 붙이면서 좀 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나, 철이 들었다"라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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