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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 사택기루, 판타지에 내던져진 현실의 고뇌

'서동요' 사택기루, 판타지에 내던져진 현실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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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하드라마 '서동요'(극본 김영현ㆍ연출 이병훈)가 21일 종영됐지만 끝내 개운치 않은 것이 남아있다.


기껏 꿈을 이루었지만 사랑하는 여인마저 죽고 홀로 남겨진 서동의 쓸쓸함이나, 사랑 하나로 인해 아버지와 조국까지 버리고 마음의 병으로 죽은 선화공주에 대한 측은함도 아니다. 그것은 엔딩 훨씬 전부터 쌓여왔던 사택기루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불편함 때문이다.


△ '서동요'는 역사가 아닌 판타지.. 사택기루는 허구가 아닌 현실


당초 백제 시대의 뛰어난 과학기술, 백제 무왕의 성장기, 향가 '서동요'에서 착안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역사드라마로 녹여내겠다던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도 '서동요'는 사극이라기보다 판타지에 가까웠다.


매번 주인공에게 새로운 과제와 역경이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게임 형식의 극 전개는 1~2회씩 끊어 보는 시트콤 같은 느낌이고, 재구성된 역사라 해도 서동을 비롯한 실존 인물들의 캐릭터는 온라인게임의 NPC(Non-Player characters)처럼 전형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이에 반해, 극적 재미를 위해 창조했다는 허구의 인물 사택기루는 오히려 '사극에 뛰어든 현대인' 혹은 '판타지 속에 내던져진 현실의 인물'처럼 생생하며 현실적이다. 그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듯, 가상의 세계에 들어간 현실의 인물이란 현실로 재현된 가상의 인물 만큼이나 낯설고 이질적이다.


"내가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나. 누구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산다"고 외치는 사택기루의 절규는 극중에서는 공허하지만, 현실의 내 가슴을 울리기에는 충분하다.


타고나기를 황제의 아들이었고 천재였으며, 끝없이 선한 데다 심지어 이성에 대한 감정에서도 한 치의 오차나 틈이 없는 서동 앞에 선다면 현실의 누구라도 사택기루처럼 황당하고 허무할 수 밖에 없다.


좌절감에 빠지는 대신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발버둥쳐보지만 끝내 '태생적 한계'를 넘을 수 없음을 깨닫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은 사택기루가 나무 장작 위에서 한 줌 재로 변할 때, 지켜보는 이는 목라수 하나 뿐이다.


△ '사택기루 어이 연기할까' 류진의 고뇌, 연기로 빛났다


사택기루 역의 류진은 '서동요'에서 가장 빛나는 연기는 보여줬다.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연기에 있어서도 중간 허리 역할을 해주며 고뇌에 찬 연기를 선보였다.


류진은 하늘재를 중심으로 서동과 사택기루의 우정이 그려지던 초반에는 청춘스타 조현재를 이끌어주며 탄탄한 지지대 역할을 해줬고, 백제 태학사로 극 중심이 옮겨진 뒤에는 부여선(김영호 분)을 대신해 악역의 카리스마를 빛내며 선한 캐릭터인 조현재와 대립각을 세웠다.


당초 조국인 신라에게서 배신을 당한 뒤 서동이 백제의 왕이 되도록 돕는 역할로 알았던 류진은 "조국을 위한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악역이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화공주를 빼앗긴 패배감과 질투, 서동에 대한 일그러진 미움으로 부여선과 결탁하는 것으로 내용이 수정되면서 혼란에 빠졌다.


드라마 중반부 촬영에 한창이던 류진은 당시 "사택기루는 서동의 관점에서 볼 때만 악역"이라며 "어찌 보면 '서동요'에서 유일한 악역은 서동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류진은 "3각관계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인 데다, 조국에게 버림받았다고 해도 갑자기 부여선과 결탁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캐릭터 변화로 인한 연기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류진은 중반 이후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을 제대로 소화하며, 부여선과 서동의 대립각에서 빈 곳을 메워줬다. "서동에게는 목라수가 있지만 부여선에게는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연출자 이병훈 PD의 고민 또한 류진의 열연으로 해결됐다.


그러나 정작 연기자 본인에게는 '서동요'와 사택기루의 역할이 서러움으로 남게 됐다. 너무도 공고한 서동과 선화의 사랑, 사심도 없고 헛점도 없어 평범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라이벌 서동, 패왕으로서의 카리스마와 결단력 대신 무지함과 우유부단함 사이를 오가는 부여선 등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돌다 객사하는 운명이 된 것.



△ 사택기루의 마지막 선택.. '개과천선' 아닌 '현실에 대한 절망'


현세의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남은 목숨을 놓고 일전을 겨루기 위해 서동을 찾아간 사택기루. 서동을 죽든 자신이 죽든 둘 중 하나의 결론을 내야겠다는 사택기루의 대사보다, 차라리 '이런 인간이 과연 있을까' 싶은 서동의 인간적인 빈틈 한 올을 보고 싶었던 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끝내 사택기루에게 모든 잘못과 책임을 돌리는 서동의 대사 "너의 죄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은 것", 이 한 마디에 일그러지는 사택기루의 표정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어이없음'과 현실에 대한 절망이 읽힌다.


이 연기에 대해 지난 21일 '서동요' 종방연에서 만난 류진에게 '무슨 생각으로 연기했는가' 물었다. 과연 그 대사나 상황에 공감했던 것인지, 혹은 표정에서 묻어나는 감정 그대로 서러움과 억울함에 충실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류진은 "끝내 그렇게 끝이 났는데, 되도록 대본을 그대로 이해하고 써있는 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무척 서러웠다"며 "그 서러움이 보였는지 어제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가 그 장면을 보고 울고 계시더라. '어쩌면 내 아들이 저렇게 서럽냐'고 하시면서 말이다"고 말했다.


이제 55회의 대장정을 마치고 '서동요'는 끝이 났다. 그러나 1000년을 내려온 서동과 선화공주의 지고지순한 사랑보다, 내게는 그 가상의 공간 속에 떨어진 '일반인'의 자화상인 사택기루의 서러운 죽음이 더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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