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대본 보고 '이거 진짜 드라마로 나와?'라고 물었어요."
SBS '샐러리맨 초한지' 속 안하무인 욕쟁이 아가씨 백여치는 배우 정려원(31)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이거 진짜 드라마로 나오나', '백여치는 모 아니면 도다'
그런 마음속에서도 결국 출연하게 된 '샐러리맨 초한지'.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난 후에도 그녀는 "매회가 도전이었다. 죽다 살아났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범수 선배님이 '진짜 황당한데 재밌는 캐릭터가 있다'라고 알려주신 게 '샐러리맨 초한지' 속 백여치였다. 대본보고 한 말이, '이게 진짜 드라마로 진짜 나오냐'였다. 재밌고 유쾌하지만 과연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받아들일까 싶었다. 제가 많이 열어놓고 보는 편인데도 그랬다. 특히 여치는 뭇매를 맞거나, 새로운 장을 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것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었고, 이미 대본에 나와 있는 것을 얼마나 재밌게 풀어내느냐가 고민이었다."
여치 캐릭터는 그간 드라마에선 본 적이 없었던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순정만화 같은 얼굴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 안하무인 여주인공이라니.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였던 여치는 정려원과 만나 '밉지 않은 밉상 캐릭터'로 탄생했다.
"직설화법과 욕, 손가락질. 지시를 하는 게 쉽지 않더라. 평소에 쓰지 않는 습관들을 계속 하다 보니 '이러다가 성격 버리는 게 아닐까' 싶더라. '나는 이런 애가 아닌데, 시청자들이 실제로도 이렇게 보면 어쩌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먼저 이해해야 관객이 이해를 해야 하는데. 제 속의 사사로운 걱정과 싸우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처음부터 결심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욕쟁이에 알코올 중독은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던 여치가 모가비(김서형 분)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면서 폐인으로 위장하는 16부는 가장 힘들었던 회이기도 하다.
"겁먹은 게 7, 모험심이 8. 결국 모험심이 이기더라. 매번 촬영장으로 향하면서도 마음을 먹기가 힘들었다. 다시 겁도 나고. 제 스스로와 너무 다른 캐릭터에 빠져 들려니 처음엔 너무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2부 찍다가 사망하는 거 아니야 싶더라. 그래도 못 해본 거 많이 해 볼 수 있었던 것 좋았다. 알코올 중독 연기에 임신도 하고, 고등학생 분장도 하고.(웃음)"
특히 욕설 장면은 대본에 나와 있지 않아 별도로 만들어서 외워야 했다. "욕과 비슷한 어감의 말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외우다가 그것마저 바닥이 나서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실제로 트위터에 올라온 것을 극중에서도 써 먹었다. 욕설이 오히려 여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 같다.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신이 났다."
정려원과 여치의 만남을 주선해 준 이범수와는 극중 유방으로 커플 호흡을 맞췄다. 11살 차이가 나는 선배와의 호흡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정려원이 답을 하던 찰나,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질문과 동시에 이범수로부터 전화가 왔기 때문. 전화통화를 마친 정려원은 "오히려 유방이 있었기에 여치가 멋지게 성장할 수 있었다"라고 말을 이었다.
"여치는 그렇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 옆에 있어야 다스려지는 것 같다. 동갑내기 옆에 있으면 이기려고 드는데, 유방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삶이 공부가 되지 않았나. 만약에 연하였다고 생각을 하면 여치가 그렇게 철이 들지 못했을 것 같다."
끈에 매이지 않은 여치의 모습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정려원은 다음번에는 '틀에 박힌 캐릭터'를 해 보고 싶다고. "조리 있게 따지는 걸 잘 못하는데. 변호사를 한 번 해 보고 싶다. 작품을 하나 하면 끝나고 캐릭터가 완전히 빠져 나가지 않고 내 안에 일부분이 남는다. 밝고 활기찬 부분을 여치가 많이 가져다 줬다."

앞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정려원은 솔직하고 직설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었다. 당시에도 "실제 성격이 아니다. 지금 드라마 캐릭터에 빠져 있어서 그렇다"고 해명했다.
"그런 성격이 아닌데, 여치에 빙의 됐었다. 사실 남을 웃기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해서 예능에 잘 안 나가는데, 여치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딱 섭외가 들어와서. 밝고 대차고, 그런 여치스러움을 내 안에 많이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보수적이고 착한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화주의자였다. 다툼 같은 것을 싫어하고 덮어두고 가는 스타일이다. 침묵하거나 울거나. 거절도 잘 못하고. 그런데 이번 작품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여치의 힘을 빌려, 정려원은 과거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하면서 겪었던 아픔을 털어놓기도 했다. 작품 속 여배우와 차별 대우를 받았을 당시 받았던 상처를 이제서라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여치를 연기한 덕분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예능 출연은 물론 그런 고백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통증'의 동현이랑 비슷하다. 동현이는 삐약거리는 캐릭터다. 잘 살고 있다가도 누가 상처를 주려고 하면 '삐약' 하는 게 있다. 그 삐약거림이 드러내서 화를 내는 것인지 안에서 칼을 가는 것인지 표현은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강해지는 편이다. 어둠의 늪에 빠지지 않고, 꿋꿋이 일어나려고 하는 그런 것."
동현같은 정려원이 백여치로 인정받고 사랑받기까지 정려원은 절실함으로 달려왔다.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마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좌절했다. 대부분 여기서 나뉜다. 포기를 하거나, 더 매달리거나. 나는 더 매달렸던 것 같다.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구나.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라는 담담히 고백하던 정려원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오길 잘했다"라고, 여치 같은 미소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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