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가 아닌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 '멀티 엔터테이너' 이기찬(41)은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극본 김루리, 연출 장태유)를 통해 또 한 번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김혜수, 주지훈, 이경영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로 분해 존재감을 발휘했다.
드라마 종영 후 1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카페에서 이기찬을 인터뷰했다. "재밌지만 힘들었고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는 이기찬의 소감에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감독님도, 배우들도, 대본도 모든 게 다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검사 역할도 처음 해봤고요. 좋은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연기 경험이 많고, 국내에서 톱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만 모여서 한 작업이다 보니 같이 맞춰서 따라가는 게 힘들긴 했어요. 인지도를 떠나 경험과 연륜이 있는 분들이니까 긴장되는 건 있었어요."
'하이에나'는 머릿속엔 법을, 가슴속엔 돈을 품은 '똥묻겨묻' 변호사들의 물고 뜯고 찢는 하이에나식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 이기찬은 극 중 중앙지검 검사 권용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극본을 집필한 김루리 작가의 출연 제안을 받았다는 이기찬은 "작가님이 처음엔 변호사 역할을 생각했는데, 장태유 감독님과 미팅 후 나에게 날카로운 이미지를 보시고 그걸 살리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더라"며 권용운을 연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기찬은 촬영 전 재판을 직접 참관하며 검사 캐릭터를 연구했다. "일반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변호사, 검사가 싸우는 그런 모습은 아니더라고요. 아는 변호사 친구한테 추천을 받아서 재판을 보러 가곤 했어요. 현직 검사였던 분이 쓴 '검사내전'도 읽어봤고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안경을 쓰는 것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장태유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이기찬은 "주지훈 씨도 나도 얼굴이 날카로운 편이다"며 "둘이 붙는 신이 많은데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외적인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기찬이 연기한 권용운은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 윤희재(주지훈 분)와 여러 모로 대치되는 인물로 그려졌다. 윤희재는 판사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인 반면, 권용운은 장사하는 부모 밑에 평범하게 자랐다. 연수원 시절 성적도 윤희재가 수석이고, 권용운이 차석이었다. 이기찬은 극 중 권용운이 윤희재와 비교하며 느꼈을 자격지심에 깊이 공감했다고 털어놨다.
"저도 가수에서 배우로 넘어왔기 때문에 얼핏 자격지심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대중뿐만 아니라 업계 분들도 당연히 그렇게 보실 수밖에 없어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죠. 권용운도 잘 나가는 윤희재랑 연수원 시절부터 계속 부딪히고, 맡았던 케이스마다 윤희재에게 지는 것을 보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 같아요."

실제 주지훈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을까. 이기찬은 주지훈에 대해 "워낙 편하고 재밌는 친구라 내가 많이 의지하며 연기할 수 있었다"며 "주연으로 긴 호흡을 많이 해온 배우다 보니까 더 믿음이 갔다"고 평했다.
"예전에 지성 형과 친분이 있어서 영화 '좋은 친구들' 시사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주지훈 씨 연기가 정말 돋보이더라고요. 너무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같이 연기하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킹덤'에서 주지훈 씨와 함께 연기했던 배두나 씨한테도 물어봤더니 '같이 연기할 때 편하고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이기찬은 1996년 데뷔해 'Please', '감기',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미인'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낸 가수지만, 2014년 드라마 '불꽃 속으로' 이후 꾸준히 연기 활동을 병행했다. 이듬해엔 배우 배두나와 함께 미국 드라마 '센스8'에 캐스팅돼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휩쓰는 상황이지만, 그때만 해도 이병헌 선배님, 비 정도가 할리우드에 진출했을 때라 새로운 일이었어요. 그땐 잘 몰라서 용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어도 말도 안 되게 잘하는 교포 배우들이 많았는데, 당시 극본에선 제가 배두나 동생으로 어울릴만한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그는 당분간 가수보다는 배우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음악으론 많은 분들에게 기대 이상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것 같아 크게 목마름은 없다"며 "배우로는 정점이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갈증이 해소될 때까지 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이에나'는 끝이 났지만, 그는 기량을 갈고닦으며 새로운 작품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액션 스쿨을 다니고 영어 공부와 대본 연구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배우로서 저의 길은 이제 시작이죠. 할리우드도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올해 초까지도 오디션을 봤었는데, 지금 '코로나19로 미국 상황이 안 좋다 보니까 제작하던 영화도 다 올스톱됐어요. 선택받을 때까지 계속 준비하고 두드려야죠."
인터뷰 말미 그는 할리우드 배우 돈 치들(Don Cheadle)의 한 인터뷰 영상을 언급하며 배우로서 묵직한 각오를 전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만이 배우의 일이 아니다'는 돈 치들의 말이 정말 와 닿더라고요.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오디션을 준비하고…하다못해 집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해보기도 하고…이 모든 게 배우로서 할 일이에요. 배우가 되려면 배우의 일을 해야죠. 기회가 올 때 저 자신을 활짝 펼칠 수 있도록 준비가 된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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