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륜 저지른 친구를 쿨하게 용서한 이상한 우정이 '말잇못'이고, 바람피고 돌아온 사위를 '킹왕짱'이라 추켜세운 '빨간풍선' 엔딩이 참 '할말하않'이다.
왜 상간녀보다 조강지처가 눈물을 더 많이 쏟아야 하는 걸까. 지난 26일 끝끝내 '불륜 미화 엔딩'으로 시청자 속 터지게 만든 TV조선 토일드라마 '빨간풍선'이다.
이날 방송에선 한바다(홍수현 분)가 자신의 남편 고차원(이상우 분)과 불륜을 저지른 절친 조은강(서지혜 분)에게 상간녀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했다. 바다는 은강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확인하고서 은강이 20년간 자신에게 느낀 상대적 박탈감을 이해한 것. 차원은 은강이 바다에게 불륜 사실을 들키기 전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바다는 자신의 엄마 여전희(이상숙 분)가 은강이 출근할 학교에 걸었던 불륜 고발 현수막을 치우며 "은강이도 나처럼 부잣집에 자랐으면 이랬겠어? 나도 복수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좋아. 미치겠어. 이건 아냐"라고 말했다. 은강은 그토록 원하던 교사가 됐지만, 바다의 모습을 보고 그날 첫 수업을 마치자마자 사직서를 냈다.


은강은 바다에게 "상간녀 소송 답변서 안 써. 네가 원하는 대로 처벌 받을게"라고 자신의 죗값을 달게 받으려 했지만, 바다는 "고소도 취하하고 소송도 취하했어"라며 "생전 처음으로 너네 집 가보고 놀랐어. 악에 받쳐서 갔는데 너네집 식구들은... 네가 얼마나 발버둥치면서 탈출하고 싶었을지 알게 됐어. 너한테 못된 짓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라며 은강에게 사표를 물르자고 했다. 서로의 심경을 이해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오열했다.
은강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겠단 마음으로 외딴 시골에 내려가 작은 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바다는 차원과 합의이혼을 하고 '남사친'과 '여사친' 관계로 쿨하게 남기로 했다. 이혼 직후 이탈리아로 간 바다는 세계적인 보석디자이너로 성공했다.
은강은 지남철(이성재 분)과 불륜 관계를 끝내고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동생 조은산(정유민 분)과 웃으며 만나곤 "여기선 내가 주인공이야. 비교할 것도 비교 당할 것도 없고 온전한 내 자신으로 살아"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은 듯 미소를 지었다. 은강은 의료봉사를 온 차원과 웃으며 재회했다.
주인공들이 쿨한 이혼을 보여준 한편, 다른 불륜 남녀들은 관계를 정리하고 각자의 가정에 돌아갔다. 고금아(김혜선 분)는 조대근(최대철 분)과 이별했고, 은산과 불륜을 저질렀던 남편 지남철(이성재 분)을 집에 돌아오게 했다. 자식 남매 모두 불륜을 저질러 속앓이를 했던 고물상(윤주상 분)은 돌아온 지남철을 눈물로 안아줬고, 사위에게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웃음을 되찾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줬다.

20부작으로 막을 내린 '빨간풍선'은 14회까지 기나긴 여정으로 바다 남편과 절친의 불륜을 그리고 고구마를 먹이더니 15회에서 겨우 바다가 남편과 친구에게 '도미노 따귀'를 때리고 사람들 앞 개망신을 퍼붓는 장면으로 사이다를 주는 듯했다. 그러나 상간녀 소송 이후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를 보이다가 바다가 불륜 가해자 은강의 심정을 이해하고서 고소를 취하하고 말았다. 마지막 복수를 위해 20회를 달려온 시청자들은 권선징악을 상실한 엔딩에 힘이 빠지는 걸 넘어 분노가 차오른 지경이었다.
구닥다리 이야기들이 잘 범하는 오류로 '부자는 못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빨간풍선'이 그걸 여실히 보여줬다. 가난하기 때문에 자격지심이 생겨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겠냐며 가해자를 너그럽게 이해해줘야 한다는 발상은 그릇된 선민의식일 뿐이다.
문영남 작가는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시쳇말을 유머랍시고 대사에 욱여넣어 기분나쁘게 희화화된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불륜을 저지르고 스스로 벌을 주겠다던 은강이 자신처럼 유부남과 바람핀 동생에게 '말잇못', '킹왕짱', '할말하않'이란 표현을 섞어 농담하며 웃질 않나, 은산과 바람난 남철이 '중꺾마' 정신을 되뇌며 삶에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 어처구니 없다. 특히 '중꺾마'는 보통 게임에 정정당당하게 참전한 이들의 대사로 쓰이는데, 이 드라마에선 잘못을 저질러 지탄받을 이들이 외치는 대사로 쓰여 뻔뻔하기 짝이 없게 보인다.
그래서 문영남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살다 보면 불륜을 저지를 때도 있고, 그걸 다 복수할 수도 없으니 서로 '하하 호호' 이해하고 용서하잔 건가. 그러다 보면 웃으며 살아지는 때가 온단 건가. 그래서 어쩔티비? 이런 얘기가 바로 '반품' 시키고 싶은 '함량 미달' 드라마란 거다.
한해선 기자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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