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1987'부터 '김 부장 이야기'까지, 연기 외길을 걸어온 배우 이현균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밝혔다.
이현균은 최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스타뉴스에서 JTBC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극본 김홍기, 윤혜성/연출 조현탁, 이하 '김 부장 이야기')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30일 12화를 끝으로 종영한 '김 부장 이야기'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한 중년 남성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기업 부장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현균은 '김 부장 이야기'에서 대기업 ACT 인사팀장 최재혁 역을 맡았다. 최재혁은 피도 눈물도 없이 사내 정치에 밝은 인물로, 이현균은 말투부터 눈빛, 손짓 하나까지 섬세함을 살린 연기를 통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특히 김낙수를 압박하고 회유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농담반 진담반 직장 생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할 만큼, 이현균이 그린 인사팀장 최재혁은 현실 그 자체였다.
이현균은 종영 소감을 묻자 "이렇게나 큰 관심을 받는 건 오랜만인 것 같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작품에, 나름대로 임팩트가 있는 역할로 임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 용두용미 거둔 '김 부장 이야기' 속 PTSD 유발자 활약

'김 부장 이야기'는 최종회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생 2막에 접어든 김낙수(류승룡 분), 박하진(명세빈 분), 김수겸(차강윤 분)의 모습을 그리며 수도권 시청률 8.1%(이하 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 및 전국 7.6%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또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키며 높은 화제성을 자랑하기도.
이현균은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작품이 너무 좋다. 그러니까 잘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나 재미있고 좋은 드라마를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현균은 "부모님께서 원래 막 표현을 하는 분들이 아니다. 아들한테 굳이 뭔가를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이번 작품을 보시고는 좋다고 하시더라. 어머니가 네 자매신데 이모들이 '내가 봐도 좋더라'라고 하신 모양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고 좋았다"고 전했다.
이어 "친구의 회사 상사도 '김 부장 이야기'를 보셨다더라. 그래서 친구가 '거기 나오는 인사팀장 어떠냐'라고 물어봤더니 (상사가) '그 XX, 진짜 나쁜 XX야'라고 하셨다고 한다"고 일화를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드라마 속 최재혁은 유독 많은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낙수에게 '정리해고 리스트'라는 칼자루를 쥐어주며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는 자신이 놓인 위치에서 밥값을 할 뿐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로 하여금 양가 감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현균 역시 이같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알고 있는 듯 "원래는 댓글을 안 보는 편인데 이번엔 보게 되더라"며 "시청자들이 갑론을박 벌이는 댓글을 보고 있으면 저 역시 신기하고 재미있다. 본인들의 삶을 투영하시는 것 아닌가. 제가 연기한 것보다 오히려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더 크게 생성되는 것 같달까"라고 말했다.
특히 '인사팀장 보고 있으면 PTSD 온다'라는 반응에 대해서는 "배우 입장에선 사실 좋은 반응이고 칭찬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떤 일을 겪었길래 PTSD가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사여구처럼 'PTSD 온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로 PTSD를 느끼는 분들도 계신 거 아닌가.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 그래도 (연기를) 잘했다는 얘기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이현균은 이토록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내는 최재혁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연기에 임했을까. 그는 "대사가 세서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여러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절대 세게 나가면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최재혁도 결국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인 거다. 김낙수를 자르기 위함이 아니라 ACT가 굴러가는 데 있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직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임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김 부장 이야기' 종영을 아쉬워하는 시청자들도 많다. 그만큼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울고 웃은 웰메이드 드라마이기 때문일 터다.
이현균은 시청자들을 향해 "아직 '김 부장 이야기'를 떠나보내지 말아달라. 저는 떠나보내야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지만, 시청자들은 씹고 뜯고 맛보고 더 즐기셨으면 좋겠다. 좋은 작품이 긴 여운을 남기듯이 이 드라마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시청자들이 더 즐겨주시면 어떨까. '김 부장 이야기'가 언제든 회자될 수 있는 드라마로 남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 류승룡과 영화 '비광' 이후 두 번째 연기 호흡

이현균은 류승룡과 아직 개봉 전인 영화 '비광' 이후 두 번째 연기 호흡을 맞췄다. 이에 대해 "반갑고 좋았고 감사했다. 선배님과 즐겁게 촬영한 것 같다. 감독님께서 (류승룡에게) '인사팀장 역할 이현균이 하게 됐다'고 하셨더니 선배님이 '그 친구 (연기) 좋아'라고 하셨다는 이야길 들었다. 정말 감사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사실 제가 '김 부장 이야기'에서 마주치는 인물이 김낙수와 백정태(유승목 분)다. 그리고 아산 공장에 가는 신에서 정은채 배우까지, 딱 세 분만 뵌 것 같다. 류승룡, 유승목 선배님과 연기는 너무 편했다. 도움도 많이 받았다. 선배님들께서 그 신들에 있어서 버팀목이 되어 주시고 중심을 잡아주시니 저는 그저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류승룡, 유승목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이어 "연기에 집중하느라 현장에서 사담을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더라. 서로의 연기로 대화를 나눈 기분"이라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시청자들은 이현균이 연기한 최재혁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재혁의 등장은 곧 김낙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재혁이 아산 공장으로 좌천된 김낙수에게 정리해고 리스트를 요구하고, 이와 관련해 김낙수와 대립각을 세우는 신들은 김낙수의 심경 변화 혹은 내적 갈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등장하는 매순간 김낙수에게 갈등과 위기를 부여했던 이현균은 해당 신들에 대해 "ACT 사무실 신에서 류승룡 선배님은 어떤 말씀도, 어떤 액션도 하지 않으신다. 제가 그 많은 대사를 치는 동안 선배님은 별 반응을 하지 않으시는 신들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연기하는 동안 저는 선배님의 내적 갈등과 변화가 느껴졌다. 테이크를 7~8번 가는 동안 점점 장면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인사팀장으로서 이 사람을 마음을 돌리려고 잘 회유하고 있구나, 온갖 방법들을 쓰고 있구나'라는 게 테이크가 갈 때마다 느껴졌다. 상대방의 내적 변화가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런 순간들은 정말 귀한 순간이다. 그리고 '김 부장 이야기'를 촬영하며 그런 귀한 순간을 꽤 많이 경험했다"고 말했다.
김낙수와 최재혁이 가장 크게 부딪히는 '공장 멱살 신'은 애드리브였다고. 이에 대해 이현균은 "멱살을 잡는 건 류승룡 선배님의 애드리브였다. 선배님과 저의 에너지가 맞았던 것 같다. 애드리브도 상대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그러면서 "선배님이 멱살을 잡았다가 뒤를 도시는데 그때 제 머릿속이 확, 빠르게 돌았다. 그렇게 돌다가 뭔가 탁 걸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대사를 하게 된다. (류승룡이) 멱살을 잡았다가 놨을 때 제 눈이 되게 좋다. 저도 당시 현장에서 그렇게 연기했다는 걸 몰랐는데, 방송을 보니 눈이 좋았다. 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진 눈이 나온 것 같았다"고 비화를 전했다.
◆ 연기 인생 16년..'제대로 된 시선'으로 살아가고 싶은 배우

2009년 연극 '언니들'로 데뷔한 이현균은 다수의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뒤 영화 '행복의 나라', '젠틀맨', '비상선언', '강릉', '수색자', '어린 의뢰인', '1987',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별들에게 물어봐', '삼식이 삼촌', '기생수: 더 그레이', '선산', '모범형사 2', '태종 이방원', '비밀의 숲 2', '닥터 프리즈너', '라이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이현균은 "저도 40대가 되고 그 과정에서 깎이고 깎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 눈치도 볼 줄 알고, 그렇게 깎이고 깎인 존재가 됐다. 뭐랄까,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하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느낀 바에 대해 털어놨다.
또한 "그럼에도 아직도 부족할 때가 있고, 아니다 싶은 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노력하면서 사는 거지,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배우는 몸, 목소리, 마음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삶이 반영된다.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 습관들이 (연기를 할 때)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여러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니까, 제대로 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신념을 밝혔다.
배우의 길을 걸어온 16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는 "운이 좋은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하며 "극단을 나와서 매체 연기에 도전하려고 했던 그 1년을 제외하고는 작품을 거의 쉬지 않고 했다.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크든, 작든 작품이 주어졌다. 거기에 최선을 다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었다. 좋았다'가 아니라 작품하는 재미로 살았다. 텀 없이 좋은 작품들이 주어졌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계단식으로 조금씩이나마 나아졌던 것 같긴 한데, 사실 이제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번에 '김 부장 이야기'가 잘 되면서 '아,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웃기고 자빠졌네' 싶었다. 지금처럼 작품에 열심히 임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뭔가가 되어 있을 것 아닌가. 이번 작품을 끝내고 제 스스로가 뭔가를 하려는 것 자체가 허무맹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탈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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