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는 게이밍 환경, 특히 우리의 몸을 맡기는 책상이나 의자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지금이야 PC가 널리 보급돼 많은 가정에 컴퓨터가 존재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PC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동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곤 했다. 특히 그 시절은 가구의 중요성을 크게 실감하지 못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는 학교 방과후 수업과 학원에서 동일한 구조의 책상을 썼다. 워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다녔던 컴퓨터학원의 정경 또한 생생하다. 모든 교실과 학원이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모니터가 책상 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였고 학생들은 목을 아래로 푹 숙인 채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의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던 기억이다.

물론 지금도 이런 방식의 책상은 많이 남아 있다. 주기적으로 레터라이브 방송을 하는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 '파이널판타지14' 팀도 스튜디오에 이런 책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레터라이브 진행 중 운영자가 목 아픔을 호소하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한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신체적 편안함보다는 PC를 보이지 않게 배치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본래 PC방도 가구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저 본체와 모니터가 올라갈 만한 넓은 책상 위에 PC들을 옹기종기 배열해놓은 형태가 많았고, 어떤 PC방은 시장에서나 쓸 법한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두기도 했다. 당시 PC방의 자료를 보면 꽤 정겨운 느낌이 풍긴다. 최근 대부분 PC방에서 사용하는 칸막이도 없었는데, 그 시절은 옆 사람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는 재미를 챙길 수 있었다.

어쩌다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보이면 ‘어느 서버에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소소한 정을 주고받기도 했다. 쾌적한 게이밍 환경을 갖추겠다는 욕구보다는 그저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PC방은 지상낙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게이밍 마우스와 키보드, 헤드셋과 모니터는 물론이고 의자와 책상도 ‘게임 전용’으로 구매하는 시대다.
예를 들어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등의 FPS 장르를 선호하는 유저라면 빠른 반응속도를 위해 144hz 게이밍 모니터를 구매하고, '로스트아크'와 같은 MMORPG를 하는 유저라면 넓은 시야 활용을 위해 와이드(21:9)모니터나 4K 모니터를 구입하는 식이다.

키보드 또한 하는 게임 종류에 따라 청축, 갈축, 적축을 골라서 구매한다. 최근에는 핑크축, 은축처럼 특정 기능을 강화한 기계식 키보드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하이엔드급 센서가 탑재된 게이밍 마우스는 기본이다.
e스포츠 선수와 게임 스트리머가 새로운 직업군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게이밍 가구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실제로 장시간 게임을 해야 하는 유저나 e스포츠 선수, 스트리머들은 허리 보호를 위해 게이밍 의자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PC방 또한 인테리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좌석별 칸막이와 커플용 좌석을 구분해놓는 것은 물론, 책상 안에 모니터가 아닌 PC 본체를 넣어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본체 매립형’ 책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최근 PC방을 방문하면 게이밍 가구와 인테리어 트렌드가 보인다. 책상 밑에는 발판이 있어 최대한 편한 자세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끔 배려하고, ‘카페형 PC방’ 등 매장별 테마에 맞춰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한다. 특히 번화가에 있는 대형 PC방들은 각자의 테마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어떻게 인테리어를 해놓았을까’ 기대하며 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PC방의 변화와 함께 개인 게이밍 공간에 대한 욕구도 증가했다. PC방에서 쾌적한 환경을 경험한 유저들이 그 노하우를 자신의 방까지 가져오는 것이다. 인테리어에 초점을 맞춘 유저들은 디자인과 색상을 우선시해 컴퓨터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는 한편,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유저들은 이에 걸맞은 게이밍 책상과 의자를 구입한다. PC본체를 튜닝해 LED 등이 번쩍거리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형 PC방 또는 e스포츠 대회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의자를 개인 방에 들여놓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게이밍 의자는 가죽 재질, 180도 각도 조절이 가능한 등받이, 목 허리 쿠션 등이 기본으로 탑재돼 있고 가격은 수십만 원대에 달하지만 그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게임 패드를 쓰는 콘솔 게임 유저들은 1인용 소파나 빈백을 구입하기도 한다.

다양한 하드웨어 브랜드에서 게이밍 가구를 출시하는 것도 이러한 수요를 겨냥한 움직임이다. 게이밍 의자를 검색하면 다양한 브랜드가 포진해 있다.
게이밍 데스크도 장시간 게임 플레이에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디자인된 제품이 대부분이다. 게이머가 선호하는 블랙 색상이 많고, 케이블 정리대나 헤드셋 받침대가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렇듯 게이머들의 개인 공간은 진화하고 전문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회사나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시대라면 개인 공간에 선뜻 투자하기 쉽지 않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워라밸'이라는 슬로건 아래 삶과 일의 균형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그러니 이제는 게임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나 자신을 위해 멋진 공간을 꾸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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