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https://thumb.mtstarnews.com/cdn-cgi/image/f=jpeg/21/2025/08/2025081811115669885_1.jpg)

작품사이즈 250mm + 500mm + 450mm(h)
작가의 말
'연개소문'의 동생으로 알려진 연수영은 단지 친오빠의 후광이 아닌 '1차 고당 전쟁' 당시 실력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장군이었다.
그녀와 관련된 설화와 전설들은 드라마의 단골소재이기도 했다.
고구려 성들에 오늘날까지도 존재하는 그녀의 전설들에서 개마무사를 탄 여전사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북유럽의 전설 중 '버서커(광폭한 전사)' 전사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 중 여자 버서커 들의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나는 연수영을 고구려에 존재했던 여자 버서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달리 말 위에서 고요히 목표지점을 웅시하는 두 눈. 갑옷으로 온몸을 두르고 웅크린 채 두 자루 환도를 휘두르기 직전의 모습, 그 모습은 상대를 향한 일격을 위해 마지막 기운을 끌어올리는 에너지를 폭발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고민과 연민과 온갖 망설임까지도 한 번에 날려버릴 그 에너지가 그 일부라도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연수영, 설화에서 실존으로
고구려의 무인, 제독이자 연개소문의 여동생이다. 이름이 '연개수영', '연개소정'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녀는 고-당전쟁에 참여했고, 그녀의 사당도 있었다고 한다. 오고성의 비문에 의하면, 개화12년(보장왕 ·654년)에 쫓겨나서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중국의 야사인 서곽잡록, 비망열기에서 등장하고 랴오둥 반도 남해안의 건안성 청석관과 비사성, 석성과 오고성 등지에서 연수영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비석들이 발굴되었다.
고-당 전쟁이후 연수영의 삶은 명확하지 않다. 작은오빠 연정토 뿐이 아니라 큰오빠이자 대막리지인 연개소문과도 불화가 상당했다고 알려진다. 전영미 교수의 설화 연구에 따르면 656년 무렵 자살로 인생을 끝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에 앞서 그녀는 딸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나중에 발해대조영의 부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서길수·전영미 교수의 연수영에 대한 해석
"소장루(梳壯樓)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자기 누이 개수영(蓋秀英:淵秀英)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태왕(太王) 1년(보장왕 재위 1년) 계묘년(癸卯年) 9월 왕이 교서를 내려 연수영을 석성도사(石城道使)로 삼았다'
연수영은 당군의 침략에 대비 5천명의 군사를 수군으로 양성했으며, 70여척의 전함도 건조했다. 645년 당군이 고구려에 쳐들어왔다. 연수영은 6월에 당군의 해상기지인 창려로 진격하여 적선 1백여척을 불태웠다. 이 승리로 석성도사에서 수군 군주(軍主) 겸 모달(模達)로 승진했다. 대흠도와 광록도 등지에서 각각 적선 50여척을 불사르고 8천여명의 적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잇달아 노백과 가시포에서도 적선 80여척을 격침시키고 원수(元帥)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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