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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용기의 時代'] 송경흡 04. 대조영, 발해를 꿈꾸다

[갤러리 '용기의 時代'] 송경흡 04. 대조영, 발해를 꿈꾸다

발행 :
채준 기자
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사진제공=송경흡
/사진제공=송경흡

작품사이즈 250mm + 500mm + 450mm(h)



작가의 말


'대조영'

그 이름은 얼굴을 모르는 먼 친척처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친숙하고, 우리 역사의 강성했던 역사를 이야기 할 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고구려의 성터를 답사한 이들의 글들은 자주 보이지만 발해의 유적지를 답사했다는 글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발해'의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발해의 멸망 후 그 왕족들이 고려로 편입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영토는 흥망을 거듭하는 유목민들의 영토로 남았고 그 때문에 발해의 역사는 쓸쓸히 잊혀져갔다.

잊혀진다는 것은 가장 큰 슬픔이다.


대조영의 용기는 그 '슬픔에 맞서는 용기'이다.

그가 악문 입술로 달리는 말 위에서 날린 화살은 먼 훗날 자신의 후예들을 향해 날리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화살이다.



/사진제공=송경흡
/사진제공=송경흡


대조영은

대조영은 어떤 가문 출신인지조차 파악이 안되고 있다. 흔히 걸걸중상과 부자지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대조영이 고구려계인가 혹은 말갈계인지에 관한 논란을 일으킨다. 사실 이시기는 민족이란 개념이 없던 시기라 의미를 부여하는 것 조차도 넌센스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인들 가장 궁금해 하는 이슈이기도하다.

대종영은 발해의 창업 군주지만 기록이 부실해서 그의 배경 대부분은 추측의 영역에 불과하다.

다만 속말말갈은 숙신계와 예맥계가 혼재한 양상을 보이는데, 대조영은 그 중 고구려화된 부여계 속말말갈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역사계는 합의를 보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나 발해처럼 북방에서 일어난 기마민족들은 민족이 아니라 충성과 연합이라는 차원에서 세력구도를 해석해야 한다. 고구려는 리더로서 말갈과 연합했다. 대조영 역시 리더로서 고구려유민과 말갈을 통합했을 것이다. 유목인들은 뛰어난 리더가 나타나면 그와 속해 있는 집단과 적극적인 연합을 꿈꾼다.


대조영은 말갈세력과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하여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 이해고를 도륙하고 길림성 돈화현에 위치한 동모산을 기반으로 발해를 건국했다. 패망한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펼친 다수의 부흥운동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다.



/사진제공=송경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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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서에서의 대조영


오대회요

발해말갈은 본래 고려(당시 고구려는 고려로 불렸음)의 종족이다. 당나라 총장 연간에 고종이 고려를 평정하고 그 무리들을 중국에 흩어져 살게 하면서 요(遼) 바깥에 두었으며 평양에는 안동 도호부를 두어 통솔하였다.

만세통천 중에 거란이 반란하여 영부를 함락시켰는데, 고려의 별종인 대사리 걸걸중상이 있었다. 걸걸중상은 말갈의 반역자 걸사비우의 무리와 함께 요동을 지키면서 고려의 땅을 나누어 왕 노릇을 하였다. 측천이 걸사비우를 허국공에, 대사리 걸걸중상을 진국공에 봉하였는데, 걸사비우가 거절하였다. 측천이 장군 이해고로 하여금 진을 무너뜨리고 참수하게 하였다. 걸걸중상이 죽자 그 아들 대조영이 이어 즉위하고 비우의 무리를 병합하였다.


대조영 스케치 /사진제공=송경흡
대조영 스케치 /사진제공=송경흡

구당서

대조영은 본래 고려 별종이다.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조영은 말갈의 걸사비우와 각각 동쪽으로 달아나서 스스로를 굳게 지켰다. 이진충이 죽자, 측천무후는 이해고에게 군대를 이끌고 그 잔당을 토벌할 것을 명령하여, 먼저 걸사비우를 물리쳐 목을 베고, 이어 대조영을 추격하여 천문령을 넘게 되었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의 무리를 모아 이해고에 대항하자 무후가 보낸 병력은 대패했고 이해고는 겨우 탈출해서 돌아왔다.

때마침 거란과 해족이 모두 돌궐에 항복해서 도로가 막혀 측천무후가 토벌할 수 없었다. 마침내 대조영이 자기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의 계루부가 있던 땅을 차지하여 동모산을 근거지로 삼아 성을 쌓고 그곳에 살게 되었다.

대조영은 용맹하고 용병에 뛰어났기 때문에 말갈 무리 및 고구려 유민이 점점 모여들었다. 성력(698년∼699년) 중에 스스로 진국왕이 되었고 사신을 보내서 돌궐과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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