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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용기의 時代 '] 19. '가야후손 김유신'

[ 갤러리 '용기의 時代 '] 19. '가야후손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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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사진제공=송경흡작가

작품명 : 가야후손 김유신

작품사이즈 250mm + 500mm + 450mm(h)



송경흡 작가의 말

김유신은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없는 신라의 장군이다.

그에겐 정사외에 많은 야사들이 존재하며 그 신령함으로 오늘날도 한국 전통 무속신앙에서 신으로 모시는 인물이며 대구엔 그를 모시는 신당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김유신은 삼국시대 마지막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군이었다.

'화랑'의 대장이기도 했던 그는 백제의 파상공세를 막아냈고 당과 연합군을 결성해 고구려를 공격해 무너뜨렸으며, 소정방의 당군을 물리치고 당나라의 영향력을 벗어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위 사실들은 사서를 통해 잘 알려진 것들이지만...


삼국유사를 비롯한 자료들엔 '천관녀'와 관련된 설화들... 그리고 고구려에서 보냈다는 자객과의 일화들 많은 설화들이 존재한다.

그만큼 우리역사에서 김유신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그는 단골 소재였다.


작가는 그가 고구려로 대표되어온 철기부대의 마지막 계승자라는 점에 주목한다.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후손으로 신라에 편입된 왕족이었다. 가야는 철제 기술로 이름난 연맹체였다. 그 기술이 김유신의 합류로 신라로 이전되어 더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 아닐까.

김유신은 정치에도 능한 전략가였지만 그 밑바닥엔 가야로부터 이어져 온 강력한 철기부대가 있었음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사진제공=송경흡작가


김유신은

신라를 상징하는 명장으로 80년에 가까운 생애 동안 진평왕부터 문무왕까지 무려 5명의 신라 왕을 섬겼다. 신라의 진골로 백제를 무너뜨린 장수 이미지가 강하다. 정확히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 김구해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김무력, 아버지는 김서현이다.


성골 왕통의 단절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분열 속에서도 약화된 신라군을 이끌고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한 대규모 전쟁을 수행했다. 몇 번이나 두 나라의 침공을 막아내는가 하면, 귀족들의 반란을 연거푸 진압하는 등 신라를 지켜내는데 큰 기여를 했고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의 대영웅이다.


무장으로서의 능력 뿐 아니라 정치력도 뛰어났다. 어려서도 김춘추와 여동생을 결혼시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영악함도 보였다. 일부에서는 김유신을 조조에 버금가는 '간웅'이라는 평가도 있다. 뛰어난 수싸움으로 경쟁자들을 정치적으로 거세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송경흡작가

사서에서의 김유신


김유신은 많은 사서에서 거론되고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선 '태대서발한'을 받았다고 전한다. 태대각간 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상 김유신만을 위한 최고위 관등이었다.직위로는 '대당 대총관', '상대등'을역임했는데 상대등은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 귀족의 대표이자 국왕의 최측근이었다.


천관녀 설화도 있다. 고려 시대의 문인 이인로의 '파한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화랑이던 김유신은 기녀인 천관녀를 만나 교제했다. 그것을 알게된 어머니 만명부인이 만류하자 천관녀와 관계를 끊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말이 김유신이 술취한 사이 천관녀의 집으로 갔고 이에 김유신이 말 목을 잘랐다는 내용이다.


이밖에도 화랑세기에서는 태종 무열왕의 딸과 결혼하기 전 김유신이 미실의 손녀와 결혼을 했었으며, 이와 별개로 천관녀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제공=송경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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