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 이름만 빌려달라'
친구나 지인의 부탁에 못 이겨 대표이사로 등기되었다가 곤란을 겪는 사람이 있다. 실제 경영은 따로 있는 실소유자가 맡고, 등기부상 대표이사 자리에만 이름을 올린 이른바 '바지사장'이다.
약간의 사례비를 받기도 하고,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 탓에 떠맡기도 한다. 그러다 뒤늦게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비로소 책임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특히 대표이사직은 이미 사임했지만 회사 주식 일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어떤 법적 책임이 남는지 한 번쯤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은 '재직 기간 중에 벌어진 일'과 '퇴임한 뒤에 벌어진 일'이다. 둘은 책임의 무게가 전혀 다르다.
재직 중 발생한 사안이라면, 회사를 떠났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상법 제401조는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무를 게을리한 때에는 제3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명목상 대표이사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은 대표이사라면 회사 업무 전반과 실질 경영자의 위법행위를 감시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직무 일체를 실소유자에게 맡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자체를 임무 해태로 판단해 왔다. '나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항변이 곧바로 면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재직하던 시기에 실소유자의 위법·부당한 거래가 있었는지, 내 이름으로 체결된 계약이나 대출은 없는지부터 차분히 점검해 두는 것이 좋다. 다만 명목상 지위였다는 사정을 고려해 책임 비율을 30% 안팎으로 제한한 하급심 판결들도 있어, 책임의 크기가 줄어들 여지는 남아 있다.
반대로 퇴임한 이후 새롭게 생긴 일은 사정이 다르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 이사로서의 감시·감독 의무도 함께 사라진다. 이때 남는 것은 '주주'라는 지위뿐인데, 상법 제331조는 주주의 책임을 자신이 가진 주식의 인수가액 한도로 제한한다. 따라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퇴임 후 회사가 진 빚이나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는 일은 원칙적으로 없다.

물론 예외도 있다. 회사가 사실상 특정 개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된 경우, 법원은 '법인격 부인론'을 통해 그 배후의 개인에게 직접 책임을 묻기도 한다. 그러나 이 법리는 회사를 실제로 지배·운영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어서, 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명목상 대표이사에게까지 적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작 놓치기 쉬운 위험은 따로 있다. 재직 시절 회사 채무에 연대보증을 선 경우다. 연대보증은 주주 지위와 무관한 별도의 계약상 채무여서,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주식을 정리하더라도 그대로 남는다. 과거 서명한 보증서나 대출 서류가 있는지 반드시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정리하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재직 기간 중의 행위에 대한 이사 책임이고, 퇴임 이후의 일은 주주 유한책임 원칙에 따라 비교적 안전하다. 다만 보유 주식은 분쟁에 휘말릴 통로가 되거나 명의신탁에 따른 증여세 같은 세무 문제의 불씨가 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시점에 정리해 두는 것이 불필요한 위험을 더는 길이 된다. 이름을 빌려주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그 이름에 따라붙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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