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홍진 감독의 신작 영화 '호프'가 개봉하고 연일 인터넷이 뜨겁다.
극장을 나온 관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찬사와 혹평이 극명하게 갈린 비평들이 쏟아진다. '곡성' 이후 10년 만의 신작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불호를 떠나, 한 편의 영화가 관객의 머릿속에서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대단한 성취다.
문득 꼬리를 무는 생각 속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타인의 창작물에 대해 열렬하게 평가하고, 때로는 자기 일처럼 분노할까.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설명하기엔 대중의 반응은 너무나 격렬하다. 제품의 경우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면 그만인데, 예술을 향한 비평은 소비자적 스탠스를 뛰어넘는다. 나는 이 현상이 마치 '소액주주들의 조각투자' 같다고 느껴진다.

작품을 관람하는 대중은 1인칭이나 3인칭 단순 관찰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작품을 '너(You)' 라는 2인칭의 대화 상대로 바라보며, 스스로 심리적 공동 창작자의 위치에 선다. 모든 사람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고 노래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작하고 싶은 욕망은 많은 사람의 안에 존재한다. 내가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는 없지만, 향유라는 행위를 통해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열망. 평가는 억눌린 창작 욕망의 가장 안전한 표현 형태라고 보여진다
영화 한 편을 두고 벌어지는 이 가혹하고도 뜨거운 평가의 장을 바라보며,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레슨생들에게로 향한다. 내가 마주하는 평균 18세에서 22세 사이, 아직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세찬 입김을 경험해 보지 못한 학생들이다.
노래를 잘하도록 테크니션을 만들어주는 트레이너로서, 이 친구들을 필드라는 정글로 내보내기 전에 보컬 이외에 장착해주어야 하는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신진 아티스트들이 필드에 나가는 순간 마주할 세상은 냉정하다. 과도한 찬사나 억울한 악플, 혹은 아예 3인칭으로 타자화되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외면 속에서, 애써 데뷔를 준비했으나 무관심 속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피', '땀', '눈물'.
필드를 거치다 보면 종종 이런 말들이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떠돌곤 한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노이즈 바이럴은 좋은 마케팅이 될수있다. "너무 좋은 일이 있어도 기뻐하지 말고, 슬픈 일이 있어도 동요하지 마라. 그래야 필드에서 오래 버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필드의 통념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감정을 다루는 영역이다. 좋은 일에 기뻐하고, 나쁜 일에 슬퍼하는 감정의 민감도가 극대화된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다. 사람들의 평가와 악플에 무뎌지기 위해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훈련은 위험하다. 멘탈을 보호하려 끈 스위치가 자칫 음악의 감정 스위치까지 연동되어 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평가에 둔감해지기 위해 노래의 감정마저 무뎌진다면, 그것은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는 '인어공주의 비극'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필드를 눈앞에 둔 아티스트들은 어떤 마음의 근육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필터링 훈련이 필요하다.
타인의 반응은 내 영역이 아니지만,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내 태도는 온전히 내 영역이다. 과도한 찬양이 주는 순간의 도파민에 취하지 않는 냉정함, 세상 모든 사람이 악플러처럼 느껴질 때 돌아올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라는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일. 대형 기획사에서는 이를 시스템으로 훈련시키기도 하지만, 개인 창작자라면 이 감정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구축해 두어야만 필드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대중이 쏟아내는 평가의 바다는 앞으로도 결코 잔잔해지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친 파도는 때로 아티스트의 영혼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가혹한 비평은, 대중이 그만큼 그 창작물에 깊게 개입하고 싶어 한다는 뜨거운 열망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마주치는 시련과 상처는 무작정 피해야 할 독이 아니라, 다음 노래의 깊이를 만들어낼 가장 소중한 재료가 된다.
대중이 던지는 차가운 평가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그 감정에 온몸이 잠식당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수문을 열어주는 것. 평가의 소음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지켜내고 그 상처마저 예술로 바꿔내는 유연함이야말로, 내가 필드로 나갈 아이들의 손에 꼭 쥐여주고 싶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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