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피키 블라인더스’ 시즌6은 토미의 뒷모습을 비추며 2013년부터 시작된 장대한 서사를 마무리했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고 떠난 지난 시리즈 이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시리즈의 영화 버전이 제작된다는 소식은 전세계 팬들을 기대감으로 사로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토미가 스크린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와 이 긴 서사의 마지막 장을 써 내려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피키 블라인더스: 불멸의 남자’는 이미 완결된 신화 속 주인공을 다시 불러세운다. 그만큼 이 시리즈를 오랜시간동안 함께 해온 팬들에게는 지난 시즌들의 명성을 훼손하는 불필요한 사족일 수도, 못내 아쉽던 공백을 채워 줄 끝판왕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영국판 대부’로 불릴 만큼 시대극과 갱스터 누아르 장르에서 정점을 찍었던 ‘피키 블라인더스’는, 시즌6으로 완성된 서사에 6년의 시간이 흐른 1940년대로 무대를 옮겼다. 치열한 2차 세계대전의 전황 속에 나치의 '버밍엄 대공습'으로 수많은 영국 노동자들이 희생당하는 것으로 영화는 포문을 연다. 형 아서와 아내, 딸까지 무엇보다 지키고자 했던 가족들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토미(킬리언 머피)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둔하며 자신의 인생을 글로 써내려간다. 토미가 수많은 피로 쌓아올린 사업은 큰 아들 듀크(배리 키오건)가 물려받았다. 토미와 집시여인 젤다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듀크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더 지독하고 맹렬하게 조직을 운영한다. 여동생 에이다는 듀크의 무모함이 불러올 위험을 막기 위해 다시 돌아와달라고 애원하지만 토미는 외면한다. 그러나 젤다의 쌍둥이 여동생 카울로(레베카 퍼거슨)를 만난 토미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돌아온다.

‘피키 임팩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만큼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피키 블라인더스’는 당대 영국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실존했던 범죄 조직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집시의 피를 물려받은 셸비家를 중심으로 주인공 토마스(토미)가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 속에서도 영국 일대를 장악한 범죄 조직의 수장이 되고 조직을 성장시키는 과정을 치열하게 그린다.
전쟁 참전 중 겪은 참혹한 기억으로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토미는 어떤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는 냉정함과 기민한 행동력,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두뇌로 어둠의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가장 지키고 싶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그 망령들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죄책감과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다시 거리로 돌아온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잊혀진 유령같은 존재이자, 조직원들에게는 왕관을 거부하는 왕이며, 많은 이들로부터 영원히 이름을 불리우는 불멸의 남자이기도 하다.
잊혀지길 원했으나 세상이 다시 불러낸 남자들의 이야기는 많은 창작물에서 차용돼 온 소재다. 세상은 계속해서 그를 기억하고 소환하며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은둔자로 남겨두지 않는 세상으로 다시 떠밀려 나온 이들이 필연적으로 비극적 산화(散花)를 맞이하듯 토미 역시 그 예를 따른다.

이번 작품은 제작진이 예고한 ‘피키 블라인더스’의 스핀오프 격인 시즌7을 앞두고 앞선 이야기의 막을 내리는 마침표와도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에서 킬리언 머피에게 목숨을 잃는 소년 역을 연기한 베리 키오건이 ‘듀크’(공작) 역을 맡아 부자지간으로 다시 한번 호흡을 이뤘다. 피키 블라인더스를 만들고 이끌어온 토미와 그의 차가운 얼굴을 대신했던 킬리언 머피를 보내는 장엄한 레퀴엠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가 남긴 ‘피의 유산’을 대물림할 아들 듀크의 인생을 서막을 여는 예고편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들인 소개 끝에 새로운 시대를 열 주인공으로 등장한 듀크는 소년 시절 콘래드 칸에서 베리 키오건으로 바통터치됐다. 아버지를 모른 채 살아왔던 어린시절과 사생아라는 자괴감, 집시라는 정체성, 아버지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려 발버둥치는 비틀린 청년의 모습을 무리없이 표현했다.

토미와 아서, 에이다를 중심으로 한 가족 서사, 정치와 범죄 사이를 오가는 권력 게임, 그리고 선택의 결과가 누적되는 스토리로 누아르 팬들을 열광시킨 ‘피키 블라인더스’가 한 시대를 마감했다. 인물의 동기와 감정선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과 서둘러 시리즈를 봉합한 아쉬움에도 ‘불멸의 남자’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여전히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매 시즌마다 호평을 받아온 음악은 이번에도 전율을 느끼게 한다. 거리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말끔한 수트를 차려 입는 토미의 모습은 진한 쾌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는 한때 모든 것을 가질 뻔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제 나는 자유다”라고 읊조리며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시대의 무대 위에서 사라진다. 영국 민요를 연상시키는 선율의 'Hunting the Wren'이 흐르는 엔딩은 토미가 마지막으로 남긴 "쓸쓸한 한 겨울에"라는 말과 함께 오랜 여운을 남긴다. 오랜 여운을 토미를 갱스터의 ‘신화적 존재’로 남기고, 불멸이라는 왕관을 씌워주기 위한 헌사인 이번 작품은 다가올 새 시대에서 셸비家의 신화를 확장하기 위해 공들인 마침표다.
정명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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