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리스마와 사랑스러움 오가는 재벌 남주 차세계 役 코믹과 관능 주무르며 로코계 새 요물 등극

로맨스 드라마에서 이런 재벌 남주(남자 주인공)는 흔하다. 흠잡을 데 없는 조건을 갖췄지만 정작 감정 앞에서는 서툰, 그런 남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이 어느 날 나타난 씩씩하고 가난한 캔디에게 속수무책으로 감겨버린 뒤 "나한테 이러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를 외치며 지갑을 열고 끝내 마음의 문까지 열어주는 전개는 로맨스물의 익숙한 문법이다.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남주 차세계(허남준) 역시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심지어 따귀까지 올려붙이는 당돌한 여자 신서리(임지연)에게 반하는 서사만 놓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익숙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터져 나오는 차세계의 리액션을 들여다보는 순간 드라마는 뻔한 궤도를 유쾌하게 이탈한다. 난데없이 서리에게 뺨을 맞은 세계는 넋을 잃고 반하거나 흥미롭다는 듯 쿨한 미소를 짓는 대신 황당함에 얼어붙었다가 이내 유치한 분노를 터뜨린다. 급기야 자신을 돈 귀신 취급하는 여자에게 길바닥에서 야자수 이파리로 '꽃타작'을 당하며 엎치락뒤치락 육탄전을 벌이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자 황급히 줄행랑친다.
로맨스 재벌 남주가 응당 지켜야 할 품격 따위는 미련 없이 내동댕이친 채 촐싹이고 지질한 인간적 빈틈을 드러내는 차세계는, 익숙한 클리셰를 유쾌하게 즐기는 영리한 돌연변이다. 바로 그 빈틈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됐고, '멋진 신세계'는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에서 상승 곡선을 그리며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차세계의 매력이 날개를 단 것은 전적으로 이를 연기한 허남준의 탁월한 완급 조절 덕분이다. 극 초반 피도 눈물도 없는 M&A 도살자의 서늘함을 내뿜던 그는, 사랑이라는 낯선 감정 앞에서 한없이 서툴고 유치해지는 남자의 거대한 낙폭을 천연덕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팅을 한 채 서리의 촬영장에 커피차를 조공하고도 단칼에 거절당하는 짠내부터, 광고 촬영장에서 서리의 미모에 눈이 멀어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장소고 나발이고 지금 저 여자밖에 안 보인다고!"라며 빽 소리를 지르는 허당미까지. 허남준은 꼿꼿했던 악질 재벌의 척추가 허물어지는 코믹한 붕괴의 순간들을 묘한 사랑스러움으로 완성한다.
무엇보다 허남준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지점은, 캐릭터를 가볍게 망가뜨리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완됐던 극의 공기를 단숨에 팽팽한 관능으로 조여내는 특유의 묵직한 장악력에 있다. 웃겼다가 어느새 설레고, 허술했다가도 순식간에 관능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기는 "요물 같은 파락호"라는 극 중 대사처럼 심장을 뛰게 하는 불가항력이 있다.
'스위트홈'과 '유어 아너' 등 장르물에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허남준은 '멋진 신세계'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증명했다. 코믹과 멜로, 지질함과 설렘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 배우의 반전 매력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기꺼이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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