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의 설정에 오늘의 사회적 문화 결합해 현실감 배가

지극히 연상호스러운 일본 드라마다. 올해 영화 ‘군체’에 이어 연상호 감독의 이름이 다시 오르내릴 작품이 나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가스인간’이다. 연상호 감독이 류용재 작가와 공동 각본을 맡고 총괄 프로듀서도 겸했다. 일본 인기 원작 만화 ‘기생수’의 스핀오프 ‘기생수: 더 그레이’로 한일 합작을 이끌었던 그가 이번엔 일본 도호 스튜디오, 그리고 주목받는 일본 감독 가타야마 신조와 손잡고 도호의 전설적인 특촬물 ‘가스인간’을 리부트했다. 그 결과 한국적 이야기와 일본 장르 연출이 자연스럽게 결합한 독특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가스인간’은 ‘선산’ ‘기생수: 더 그레이’ ‘얼굴’ ‘군체’ 등 연상호 감독의 작품을 제작해온 와우포인트와 도호가 공동 기획·제작했다. 1960년대 혼다 이시로 감독의 특촬물 영화 ‘가스인간 제1호’가 원작으로, 연상호 특유의 사회 비판과 군상극이 더해지고 일본 장르물의 질감이 입혀졌다. 연상호의 뚜렷한 세계관이 일본의 투명인간 SF 스릴러 장르와 만나 익숙하면서도 하이브리드만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만약 일본 원작을 그대로 가져온 한국 드라마였다면 지금 같은 시너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실종’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간니발’에서도 높은 표현 수위와 섬세한 인간 심리 연출로 호평받은 가타야마 신조 감독은 연상호의 각본을 현실적인 연출과 장르적 감각으로 풀어낸다. 첫 화에서 벌어지는 첫 살인 장면, 가스인간과 경찰의 대치 액션 시퀀스는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며 감독의 연출력을 단번에 각인시킨다.
드라마는 원작에서 주요 캐릭터와 설정만 가져왔을 뿐 내용은 다르게 전개된다. 원작이 가스인간이 된 청년 미즈노와 그가 연모하는 무용수를 중심에 뒀다면, 드라마는 가스인간을 좇는 켄지 형사와 그의 여자친구이자 방송기자인 쿄코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원작에서 신문기자였던 쿄코를 방송기자로 바꿔 미디어의 시선을 적극 활용하며 가스인간을 추적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구성했다. 원작 속 가스인간이 우주비행 실험에 참여했다가 몸이 가스로 변한 설정이라면, 드라마 속 가스인간은 그보다 더 비극적인 사연을 지녔다. 인간의 고독을 그린 원작의 정서는 드라마에서 새로운 시대의 사회적 비극으로 확장된다.

극이 전개될수록 폭주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오구리 슌도 인상적이다. 거구의 가스인간으로 등장해 위압감과 묘한 매력을 동시에 내뿜는 신인배우 우타(UTA) 역시 눈길을 끈다. 출연진 중에서는 아오이 유우가 한층 깊어진 얼굴과 헌신적인 연기로 가장 두드러지는데,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모습에서 대배우의 관록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멜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다케노우치 유타카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파격적인 분장과 악랄한 야쿠자 연기로 놀라움을 안긴다.
주인공 켄지와 쿄코가 가스인간의 실체에 접근하며 드러나는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 사건들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사회정화 정책을 내세운 국가폭력이 연상되는 한편, 원폭과 원전을 둘러싼 역사적 기억도 겹친다. 드라마 속 원석 관련 사고와 거기에 얽힌 인물들은 국가 권력의 편에 선 자와 사회 시스템에 희생당한 약자로 나뉜다. 원작의 가스인간이 개인적 동기로 범죄를 저질렀다면, 드라마의 가스인간은 범죄의 이유가 훨씬 복잡다단하게 그려져 원작보다 더 비극적이다.

8화로 구성된 드라마는 회차마다 다른 장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초반에는 예고 살인 사건을 쫓는 미스터리 수사물처럼 전개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SF, 정치 스릴러, 사회파 드라마로 확장된다. 호러 전문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 남매 역의 히로세 스즈와 하야시 켄토가 활약하는 4화 ‘공포지대’는 지하 아이돌 문화와 B급 감성을 적극 활용해 이질감을 주면서도 유독 개성 넘치는 회차다. 특촬물답게 가스인간이 등장할 때의 효과음과 사운드 디자인이 뛰어나고, 공포 효과와 특수효과의 조합도 수준급이다.
도호의 ‘변신인간’ 3부작은 액체인간, 전파인간, 가스인간으로 이어졌다. 드라마 ‘가스인간’은 단순한 리부트에 그치지 않고 원작의 설정을 오늘날의 사회 문제와 결합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이 정도 완성도라면 다른 ‘변신인간’ 시리즈도 새로운 해석으로 돌아오길 기대할 만하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 이어 일본 IP를 새롭게 해석하는 연상호의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동시에, 글로벌 OTT 시대 한일 공동 제작 모델의 가능성과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덧붙여 한국어 더빙판으로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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