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감독을 위한 '맞춤 배우'가 등장했다.
12일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활'(제작 김기덕필름)의 여주인공 한여름(본명 서민정)은 주변에서 '김기덕 감독을 위한 맞춤 배우'로 불린다.
김기덕 감독의 전작 '사마리아'(2004)에서 원조교제로 만난 남자들과의 섹스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녀 재영 역을 맡았던 한여름에게 김기덕 감독과의 만남은 그간의 활동이 모두 무의미할 만큼 강렬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
"이전에 모델도 했고 TV에도 나왔는데, '사마리아'가 진정한 저의 데뷔작이에요. 이전부터 김기덕 감독님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극단적이고 우울한 독특한 세계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이유가 바뀌었죠. 지금은 감독님의 영화에서만 보이는 판타지적인 느낌이 좋아요."
"'해안선' 이후 감독님이 세상과 화해를 한다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엔 감독님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일 뿐이에요. 사람은 살다 보면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 같아요. '사마리아'와 '빈집'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작을지 몰라도 초기 작품 '악어'와 비교하면 너무 달라요. 따지자면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감독님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22세의 나이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 두 편에서 주연을 맡은 한여름은 지금 김기덕 감독에게 푹 빠져있다. 마니아 수준을 넘어 '김기덕홀릭'(holic)에 가까운 한여름은 스스로 김기덕 감독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한다.
"스틸 사진을 많이 찍었고 예쁘게 잘 나왔는데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관객이 스틸을 보고 영화를 짐작하기 때문이에요. 이 영화의 매력은 비밀이고 김기덕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핵심인데, 너무 노출되면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포스터에도 바다와 활이 거꾸로 서있는 이미지만 있어요.
'사마리아' 때는 베를린영화제 진출한 뉴스만큼 좋은 홍보는 없었을텐데도 관객이 생각만큼 안 들었어요. '빈집'도 감독상을 받았는데 '사마리아'보다 안 들었구요. 오히려 지나친 노출은 관객을 위해서도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개하지 않고 실험적으로 개봉하는 감독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요."
대중 배우에게 있어서 '저예산 영화' 혹은 '예술 영화'에 출연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 자신의 출연작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작품을 인정받아, 이를 통해 미디어와 관객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한여름은 김기덕 감독의 '언론 시사 없는 단관 개봉'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감독님 영화가 '저예산 영화'여서 관객이 안 들었다는 것은 '저예산 영화'에 대한 개념이 잘못된 거죠. 적은 돈으로 효율적으로 찍었다는 의미에요. 어찌 보면 '활'은 흥행이 잘 될 수도 있어요. 보편성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인데, 미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3개관에서 개봉했는데 점점 넓혀가서 가장 흥행이 잘 됐잖아요. 난 감독님 영화가 너무 재미있는데, 사람들도 더 많이 봐주면 좋겠어요."

'김기덕 감독의 광팬' 한여름은 김기덕 감독이 그려낸 17세 소녀와 그녀를 배 안에 가둬두는 60대 노인의 사랑 방식에도 공감을 표시한다.
"17세 소녀와 60세 노인도 나이 차이는 있지만 언제든 이성으로 발전될 수 있어요.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말도 안되겠지만요. 전 노인의 사랑을 꼭 감금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보호일 수도 있고. 남들이 볼 때는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하지만 저는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난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게 사랑이구나' 느껴져요."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김기덕 감독의 영화 두 편에서 한여름은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며 기묘한 매력을 내뿜는다. 섹시하거나 순수하거나 아름답다는 일반적인 수식어와는 동떨어진 한여름만의 매력은 '기묘하다'고 밖에는 표현하기 힘들다.
"김기덕 감독님 영화는 모두 사랑 영화에요. 아름답고 외롭고 슬픈, 사랑에 관한 영화요.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감정은 그리움도 있고 설렘도 있고 여러 가지에요. 우리 영화에 비춰서 표현하자면 어떤 책에서 읽은 표현인데, 극도의 자제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것 같아요. 사랑하면 안되지만 마음과 심장이 움직이는.."
원조 교제를 하는 남자들에게 웃음과 마음을 선물하고, 자신을 평생 감금하고 지내온 노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역할들의 캐스팅에 한여름만한 배우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김기덕 감독을 위한 맞춤 배우'라는 주변의 평가도 수긍할 수 밖에. '일반적이지 않은'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녀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사진=구혜정기자 photonine@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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