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이 가장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 그가 이병헌, 손예진을 필두로 한 믿고 보는 배우들의 손을 잡고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온다.
19일 서울시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제작보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이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박찬욱 감독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가장 만들고 싶은 이야기"라고 언급하며 깊은 애정을 보인 바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올해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는 "이런 날이 온다"면서 "소설 원작을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고 생각한 지 20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이 한 작품에만 매달린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노력해 왔는데 이렇게 성사됐다. 빨리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어 "제가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많이 읽어왔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렇게까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없었다. 대개 미스터리 장르가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가는 거고,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다 해소되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건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멀쩡했던 보통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내몰리게 되는 과정은 몇 번을 곱씹어봐도 재밌었고,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러 가지로 심리적인 장치가 잘 돼 있다. 자기가 상대하려고 하는 희생자들이 자기의 분신 같은 존재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주 씁쓸한 비극인데 부조리한 유머를 넣을 만한 가능성이 보였다. 이것을 내가 만든다면 좀 더 슬프게 웃긴 유머가 살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라는 제목에 대해 "새로 지은 제목인데, 생각해 보면 비겁한 정서가 담겼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합리화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나쁘게 보면 비겁한데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 인물에 대해 좀 들여다보면서 연민을 느끼면 '어쩔 수가 없었겠구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꼭 '만수'의 마음뿐만 아니라 '만수'를 해고하는 사람의 입에서도 나온다. 충돌에서 빚어내는 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병헌이 박찬욱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2000), '쓰리, 몬스터'(2004) 이후 세 번째 호흡을 맞춘다. 그는 25년간 헌신한 제지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만수'로 분한다.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 시나리오를 읽은 뒤 박찬욱 감독에게 "웃겨도 돼요?"라고 물었다고.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재밌는데? 감독님이 만드신 작품이 맞나?' 싶은 정도로 웃음 포인트가 많더라"라며 "내가 맞게 읽은 건지 물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감독님이 그저 웃긴 느낌이 아니라 영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슬프면서도 웃기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들면서 우스운 상황이 생긴다.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실 것"이라고 기대를 높였다.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 속 인물은 다 평범한데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한다. 그게 관객들이 이입하는 데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게 다가갈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업했다. 그런 것이 없이 상황에만 맡기게 되면 관객들이 감정 이입하면서 보다가 어느 순간 빠져나가게 되는데, 배우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손예진은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미리' 역으로 7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다. 남편 '만수'의 실직에 질책보단 위로를 건네고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미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랜만에 영화로 인사드리는데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하는 작품으로 인사드리게 돼서 기쁘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쩔수가없다'를 복귀작으로 선택한 데 대해 "가장 큰 이유는 박찬욱 감독님이었고, 이미 (이) 병헌 선배님이 캐스팅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서사의 이야기였고, '이걸 내가 하는 게 맞는 건가?' 생각이 들면서도 '안 하면 안 돼'라는 생각도 들어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특히 '미리' 역을 연기하는 데 출산이 도움 됐다고 밝혔다. 손예진은 "아이를 낳고 처음 찍는 작품이라서 그게 도움이 됐다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아이 엄마 역할도 해보고, 이혼녀 역할도 해봤지만 실제로 경험한 것은 비교할 수 없더라. 그래서 엄마 역할이 자연스러웠다. 모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가족을 책임지고 싶어 하고, 긍정적인 모습이라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몰입하기가 쉬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신인의 마음으로 임했다. 이병헌 선배님이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궁금했다. 사실 이번에 제가 '미리'라는 역할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은 크지 않았다. 미미하게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저한테는 너무 큰 도움이 됐고, 재밌었다. 이번 작품 하면서 조금이라도 저의 가능성을 봐주시면 그것만으로도 큰 만족"이라고 했고, 박찬욱 감독은 "저건 거짓말이다. 영화를 보고도 역할이 미미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업계 불황 속에서도 잘나가는 제지 회사의 반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출' 역을 맡은 박희순은 "제가 나름 영화배우로 먹고 살았는데 영화 기다리다 굶어 죽을 것 같아서 OTT 전문 배우가 됐다. 근데 오랜만에 받은 영화 대본이 박찬욱 감독님의 '어쩔수가없다'라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님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작품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저한테 대본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기로 마음먹었고, 대본을 받았는데 너무 재밌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았다. 극적인 갈등이 고조될수록 웃음 강도가 커졌다. 그러면서도 페이소스가 있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이런 작품을 박찬욱 감독님이 쓰셨다고?' 의아함이 들 정도로 독특했고, 웃음 포인트가 많지 않나 싶다. 박 감독님이 칸을 포기하고 천만을 노리시나 싶었다"고 농담했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저는 언제나 천만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번이라고 새삼 다를 건 없다"고 덧붙였다.


이성민은 종이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범모' 역을 맡았다. '범모'는 자신이 평생 몸담아왔던 제지 업계로의 재취업을 포기하지 못해 '만수'의 잠재적 경쟁자가 된다. 그는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기다려 왔다며 "처음엔 이 역할인지도 모르고, 대본을 봤다. '만수가 나인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무슨 역할이든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어쩔수가없다'의 '아라' 역으로 연기 변신을 예고한다. 반복되는 오디션 낙방에도 자신감과 낭만을 잃지 않는 '아라'는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다. 염혜란은 실직 후 시들어가는 '범모'(이성민 분)에게 실망하면서도, 한때 사랑했던 남편의 열정적인 모습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 역할을 왜 나한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름다운 미모'라는 지문이 약간 걸렸고, 이 역할이 내 역할이 맞나 싶었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염혜란과 첫 호흡을 맞춘 계기에 대해 "한 시상식에서 '마스크걸'로 상 받는 모습을 봤는데 그때 각본을 쓰고 있던 때라서 눈에 번쩍 뜨이더라. '너 사람 시키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차승원은 제지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숙련된 기술자였으나, 구조조정으로 실직 후 구두 가게 매니저로 생계를 이어가는 '시조' 역을 맡았다. 박찬욱 감독은 차승원에 대해 "승원 씨와는 넷플릭스 '전, 란'을 같이 했고, 친분이 있었다. '시조'가 등장하는 시간은 비교적 짧은데 '만수'의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똑같은 비중을 가지기 때문에 결코 존재감이 처지면 안 됐다. 등장 시간은 짧은데 심리적 비중이 큰 캐스팅이 어려운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성민은 "얼마 전에 봤는데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감상하는 게 이런 거라는 생각을 했다. 유명한 미술관에 가서 몇 시간씩 기다려 작품을 보듯이 우리 영화도 많은 분이 감상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고, 손예진은 "보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영화가 나왔다. 꼭 관람해 주시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박찬욱 감독은 "해고자의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어둡고, 무겁고, 심각하게만 한 영화는 아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들여다볼수록 우스운 구석이 있고, 웃기면서 슬프다기보다는 웃겨서 슬프다고 할 수 있고, 슬퍼서 웃긴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을 안타까운 상황에 던져놓고 비웃는 종류의 웃음은 아니다. 다 내 안에 있는 모습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웃에게서 볼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웃을 수도, 눈물 흘릴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한편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9월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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