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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으로 다시보는 '왕의남자'..공길·동성애·쿠데타

실록으로 다시보는 '왕의남자'..공길·동성애·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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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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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를 1000만 관객이 봤다면 솔직히 '상업영화'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그랬듯이 '왕의 남자'도 이제는 한국영화사에 확실히 자리잡은 문화텍스트가 돼버린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들춰보며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를 다시 살펴봤다.


일단 이 영화 상영도중이거나 아니면 끝난 다음, 가장 큰 궁금증은 그 예쁜 광대 '공길'(이준기)이 실존인물인가 하는 점일 게다. 정답은 잘 알려진대로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 11년 12월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보다 앞서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전하는 요순 같은 임금이요, 나는 고요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 아니나 고요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또 '논어'를 외워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공길이 연산군 집권 당시 배우이자 신하였다는 것, 꼬장꼬장 연산군 앞에서 직언을 올렸다는 것, 그리고 연산군의 미움을 사 유배를 갔다는 것. 영화에서도 공길은 천한 광대였고 궁중 한판으로 연산군(정진영)의 총애를 받아 종4품에 올랐으며 결국에는 허구의 인물 장생(감우성)과 함께 최후를 맞았다.


그러면 연산군과 공길의 그 '묘한' 관계가 실제로 벌어졌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영화에서는 기습 키스신까지 등장, 둘이 어느정도 동성애 관계임을 암시하지만 연산군일기에는 그런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곳곳에 궁내에서 동성애가 횡행했다는 사실이 여러번 나온다. 대표적인 게 세종실록에 나오는 다음 내용이다.


"봉씨(세종의 두번째 세자빈)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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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 처선(장항선)의 존재도 궁금하다. 영화에서 장생과 공길 광대일행을 궁으로 끌어들인 주인공인 처선은 어떤 인물일까? 실제로 목 매달아 자살했을까. 일단 처선은 연산군일기에 무려 26번이나 등장하는 실존인물이다.


"왕이 내관 김처선을 보내어 어서를 김감에게 내리기를.." "내관 김처선은 무례한 일이 있으므로 죄주어야 하나 도설리가 없으니 우선 장 1백을 속하라" 등. 이로 미뤄 처선은 영화에서처럼 왕의 최측근이었다가 팽 당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연산군이 실제로 궁 안에서도 성(性) 역할이 바뀐 연희를 즐겼을까 하는 점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 연산군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왕이 풍두무를 잘 췄으므로 매양 궁중에서 스스로 가면을 쓰고 희롱하고 춤추면서 좋아하였으며, 사랑하는 계집 중에도 또 사내 무당놀이를 잘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모든 총애하는 계집과 흥청 등을 데리고 빈터에서 야제를 베풀었는데.."


여기서 풍두무(豊頭舞)란 처용무를 개칭한 것으로, 연산군은 이 풍두무를 '허리가 가는 여자가 사뿐히 추는 춤'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킬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이밖에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연산군일기에는 "폐비한 일을 원망하여 성종의 후궁을 장살하고..소혜왕후를 후욕하여 마침내 근심과 두려움으로 병나 죽게 하고서는.." 등 영화 막판에 숨가쁘게 그려진 내용도 실제로 기록됐다. 영화에서는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 윤소정 분)가 분노한 연산군에 의해 연희 현장에서 밀쳐져서 즉사하는 것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영화 막판 중종반정의 시점도 눈길을 끈다. 과연 성희안(윤주상) 박원종(박수일) 등이 주도한 쿠데타 시작 시점이 영화처럼 연산군과 장녹수가 장생과 공길의 외줄타기를 바라보고 있을 정도로 평상시에 이뤄진 것일까.


연산군일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왕이 후정 나인을 거느리고 후원에서 잔치하며 스스로 초금 두어 곡조를 불고 탄식하기를,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 하며 읊기를 마치자 두어줄 눈물을 흘렸다."


연산군이 분명 잔치를 벌이는 와중에서도 쿠데타 움직임을 감지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이 구절 다음에 곧바로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장녹수 등을 어루만지면서 하는 대목이다.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치 못하리라."


한편 요부 장녹수의 이야기는 연산군일기("임술 계해년 무렵에 이르러 장녹수에게 빠져 날로 방탕이 심해지고")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TV사극에서 몇번씩이나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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