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러웠었다. '레이'를 보면서 그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서도 그랬다. 음악 자체가 주는 즐거움, 천재음악가가 선사하는 감동, 그리고 둘의 조화가 끝내 떨구게 하는 눈물. 이런 영화를 만든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린 왜 이런 음악영화를 만들지 못할까.
9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는 이런 부러움과 안쓰러움을 말끔히 씻어준 수작이다. 진작 나왔어야 할 '충무로표' 웰메이드 음악영화이자, 엄정화와 박용우, 아역 신의재까지 배우들의 연기결이 촘촘한 가족영화다. 그 속에 깃든 모성이나 재회 등이 신파라고? 엄정화의 신들린 눈물에, 신의재의 아이답지 않은 고독에 충분히 보상되고도 남는다.
영화는 장르영화로서 음악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우선 소위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난 불우한 꼬마 윤경민(신의재). 음악영화에서 대개 주인공 꼬마는 천재다. '스쿨 오브 락'이나 '코러스'의 아이들이 그랬고, '앙코르'나 '레이'의 주인공 자니 캐쉬와 레이 찰스 역시 그랬다. 피아노를 사랑한 윤경민은 어쩔 수 없이 일본만화 '피아노의 숲'의 카이다.
그러나 천재소년만 있다고 음악영화일까. '코러스'에서는 작은 기숙사학교에 부임한 선생(제라르 쥐노)이 필요했고, '스쿨 오브 락'에서는 열정만은 인정할 만한 가짜교사(잭 블랙)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보석도 사람이 발견해야 보석인 법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는 도심 변두리에서 후즐근한 피아노학원을 차린 김지수 원장(엄정화)이 그 역할을 맡았다.
천재소년과 여원장이 만났으니 영화는 이후 일사천리다. 한마디로 뮤지션으로서 윤경민의 성장기이자, 한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가슴 징한 전기다. 겉보기에 꼬질꼬질한 꼬마 윤경민의 절대음감이 발견된 순간, 가슴 두근거린 사람이 어디 김지수 원장 뿐이랴. 또한 성인 윤경민이 피아노 독주를 멋지게 끝냈을 때, 기립박수를 친 사람이 어디 극중 관객 뿐이랴.
영화는 여기에 두 사람의 갈등과 사랑이라는 따뜻한 온기를 보탰다. 윤경민은 어려서 차사고로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를 여위었고, 김지수는 집안형편으로 피아노 유학을 포기했던 것. 역시 세상에 고민과 아픔 없는 사람은 없는 게다. 영화는 해서 단순한 천재소년 발굴기를 뛰어넘어, 사연 많은 두 사람의 갈등과 사랑을 살뜰하게 음악으로 풀어내고 봉합한 가족영화로 읽혀진다.
보너스! 피잣집 사장으로 나오는 박용우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 영화에 한없는 가벼움과 치밀히 계산된 유머를 선사한다. 김지수 원장이 꿈꾼 러시아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치를, '공포의 해변'(Horror Beach)으로 해석하는 대목은 박용우만이 할 수 있는 코믹연기의 절정판이다. 25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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