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아무리 최첨단 하이테크를 달려도 공포영화 속에는 여전히 흰 소복의 처녀귀신이 가득하다. 2006년 여름을 노린 공포영화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모의 여성, 긴 머리, 흰 치마나 검은 옷 등등 영화속 그녀들의 모습은 세상이 변하고 변해 귀신들의 유행마저 변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궁금하다. 형형색색 원색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경쾌한 퍼머머리를 한 귀신을 볼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한 공포영화 관계자는 먼저 이렇게 자문해보길 권했다. '귀신이 그러고 나와도 과연 무섭겠느냐?'고.
이들이 처녀귀신 이미지가 누리는 변함없는 인기의 이유로 가장 먼저 든 것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귀신의 원형' 이미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공포의 고전이라 할 만한 '월하의 공동묘지', '전설의 고향'을 거치며 한을 품은 처녀 귀신이 대표적인 귀신 상으로 정형화됐고 그것이 2006년 현재의 관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귀신은 한국인들이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 이미지"라고 입을 모았다. 관객이 무서워한다면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공포물이란 장르는 관객을 비명지르게 하고 오싹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임을 다하지 않는가.
처녀귀신의 이미지는 '아랑설화'를 모티프로 삼은 '아랑'(사진)에서도 확인된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의 귀신이 입는 옷은 흰색 원피스와 까만 원피스가 전부. 영화 '전설의 고향-쌍둥이자매비사'는 아예 소복입은 처녀 귀신을 그대로 등장시킨다. 영화 홍보관계자는 "소복귀신은 존재 자체가 공포"라는 감독의 말을 전하며 "보기만 해도 그녀가 슬픔과 한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전형적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처녀귀신' 이미지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강풀의 동명만화가 원작인 '아파트'를 투자·배급하는 아이엠픽쳐스 관계자는 "기존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것을 만들면 관객이 그것을 공포라고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흰 옷을 입고 피를 흘리며 가는 여성의 모습과 아파트의 세 공간을 소개한 광고 이미지를 예로 들며 '아파트'가 처녀귀신을 내세운 영화도 아니고 그 속에 등장하는 귀신의 이미지와는 약간 다르지만 영화의 특성과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성, 흰 옷과 검은 옷, 긴 생머리는 그 자체로 유용한 공포영화의 소재이기도 하다. '아파트'를 만든 공포영화 전문제작사 토일렛픽쳐스의 김정수 PD는 "남자를 귀신으로 등장시키면 공포감이 줄어든다. 여성의 높은 하이톤 비명에 비하면 남자의 비명 역시 공포효과가 떨어진다"고 평했다. 피튀기는 슬래셔 무비가 아니더라도 흰 옷은 빨간 피를 비주얼적으로 가장 잘 드러내주는 바탕이 된다고 김 PD는 덧붙였다.
'아랑'의 제작사 관계자도 늘어진 검은 긴 머리나 어둠 속에서 지나가는 검은 의상이 주는 긴장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긴 머리 뒤에 감춰진 것에 대한 두려움, 검은 머리가 화면을 뒤덮을 때의 으스스함을 살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봉한 원신연 감독의 '가발'은 사람의 신체이면서도 신체가 아닌, 칠흑같은 긴 머리카락의 공포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예다.
공포영화만큼 각종 법칙이 많은 장르가 또 있을까. 처녀귀신의 이미지 역시 으스스한 효과음, 높은 비명소리, 쓰러졌다 갑자기 일어나는 살인마처럼 이미 공포영화의 법칙이 됐다. 하지만 반복만 할 수는 없다. 공포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신선한 공포물을 만들면서도 어떻게 장르적인 쾌감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심한다. 흰치마 긴머리의 처녀귀신 이미지는 공포영화가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공포의 원형이자 극복해야할 관습인 셈이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