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해본 적 있는가. 혹시 이 질문에 못 해봤다고 항변하는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한 일이다. 결코 염장지르려고 한 소리는 아니니, 각설하고 질문을 바꿔보자. 그럼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성공으로 끝났든 실패로 끝났든 한번 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KBS '개그콘서트'의 '패션7080'도 아니고 공포의 2대8 떡진 머리에 소신껏 위로 치켜 올린 배꼽 위 50cm의 일명 배 바지차림. 유행 지난 주름 잡힌 면바지에 하얀색 운동화. 물론 면바지가 바닥에 '행여나' 끌릴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번 걷어 주는 '센스'.
어디 아랫도리만 그럴까. 고개를 들어 윗도리를 봐도 역시 가관이다. 아무리 레이어드 룩이 유행이라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같은 계열의 남방을 하나는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채 바지속으로 집어 넣고 다른 하나는 여지없이 풀어 헤쳐 놓았다.
이 사람? 물론 연애 한번 못 해봤다. 그 이유가 이러한 외모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오타쿠에 소심함은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다. 그런 그를 보고 있노라면 학창시절 사람 구실 못하는 친구들을 놀릴 때 사용하던 단어가 떠오른다. '쪼다'.
영화 '전차남'은 이런 연애 쑥맥이 절대미녀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지난 2004년 일본 사이트에 전차남이라는 닉네임으로 올려진 연애담을 영화화 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미 책 연극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감동실화다.

일견 한국의 '개똥녀'를 연상케 하는 어감의 '전차남' 사연은 지하철(전차)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과 천만 네티즌의 관심을 모았다는 사실 외에는 '개똥녀'와는 전혀 딴판이다.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웠지만 '똥'이야기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전차남'은 어느날 전철에서 만난 여성에게 첫눈에 반한 소심남이 인터넷에 조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사연을 올리면서 천만 네티즌의 응원과 도움에 힘입어 그녀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연애담을 그린다.
영화의 묘미는 소심남의 작업(?)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서는 설렘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문자보낼 때의 가슴 떨림. 답장이 오기까지의 지루한 시간들. 첫 데이트를 위해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과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울고 웃는 모습에서 현제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과거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면 당시의 설렘을 추억할 수 있으리라.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남의 연애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남의 연애담에 그토록 열광하는 네티즌은 어쩌면 꼭 그만큼 자신들의 상황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네티즌은 평생 연애 한번 못해본 사람들, 불화를 안고 사는 부부, 골방에 틀어박혀 인터넷 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 등등 하나같이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치 연애를 완벽하게 다 아는 것 처럼 전차남에게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들 역시 전차남과 별반 다를게 없다. 즉, 전차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할 계제가 못된다는 것.
하지만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전차남을 이야기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얼핏 결점많고 '쪼다'처럼 보이는 전차남이지만 그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아니, 사랑 앞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는 전차남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사랑 앞에서 가슴 아파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즐겨라. 사랑에 빠진 자만의 특권이니까.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