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컴 투 동막골' '천하장사 마돈나'로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켰지만 류덕환은 알고보면 아역배우 출신이다. '뽀뽀뽀'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출연했으며, '전원일기'에 순길이 역으로 10여년 동안 안방극장을 누볐다. 중학교 시절에는 일본에서 뮤지컬도 출연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연기자의 길은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는 달리 아버지는 류덕환의 연기 외길이 마뜩찮았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처럼 류덕환 역시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류덕환은 못된 아들이었다고 가슴을 쳤다.
5월2일 개봉하는 영화 '아들'에는 그런 류덕환의 진심이 담겨 있다.
류덕환은 이 영화에서 세 살 때 헤어졌다가 15년만에 단 하루 동안 자신을 만나러 온 무기수의 아들로 등장한다. 아버지에게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묻는 것, 목욕탕에서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손을 꼭 잡고 걷는 것,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자 류덕환 스스로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영화 속에서 그렸다.
"'아들' 촬영을 시작하기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못된 아들이었죠. 돌아가시기 이틀 전 부산에서 영평상 신인상을 탔는데 아버지가 전화로 소감이 어떠냐고 묻더라구요. '뭘, 그런 걸 물어'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죠. 영정을 바라보는 데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생겼구나, 난 지금까지 아버지 사진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류덕환은 '아들'에 어떤 연기적 계산도 없이 들어갔다. 그 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를,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차승원과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지만 절로 아버지와 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류덕환의 진심이 큰 역할을 했다.
"고교 시절이었죠. 한 번은 성적이 뚝 떨어졌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할 바에는 연기를 때려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에 악이 바쳐서 죽어라 공부를 했죠. 그래서 반에서 1등을 했어요. 전교등수는 40등이었지만. 그런데 아버지는 전교등수가 낮다고 뭐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소리를 치며 대들었죠. 한 대 맞을 각오를 했는데 아무 말없이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시는 거에요. 그 때 '아, 우리 아빠 많이 늙었다'란 생각을 처음 했어요."

'웰컴 투 동막골'을 찍기 전 장진 감독이 '아들' 시나리오를 쓰는데 어떨 것 같냐고 슬쩍 물었다. 류덕환은 몸이 달았다. '천하장사 마돈나' 촬영 중에도 장진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됐냐고 채근됐다. 차승원이 아버지 역으로 결정됐다고 했을 때는 긴가민가 했다. 키 차이부터 너무 나기 때문에 안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안어울리기에 부자 사이를 맡는 게 '딱' 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차승원 선배는 톱스타가 잡기 마련인 '가오'(떠세)가 없어요. 처음 만난 날 먼저 전화 번호를 묻더라구요. 그리고 우리 집까지 태워다주고. 잘 들어갔냐고 전화하고. 그 뒤 매일매일 서로 통화했어요. 우리 아버지와는 하지 못했던 일이죠.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지금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화려한 방송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류덕환은 애써 술 담배를 피했다. '웰컴 투 동막골' 촬영장에서 노상 벌어졌던 술판에서는 어떻게든 끼어야 겠다는 생각에 소주잔에 우유를 따라 마시며 버텼다. 그런 술자리에서 누군가 '너 조숭우 닮았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조승우랑 박해일이랑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고 했다가 선배들에게 면박도 당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술은 당신에게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괜히 그 약속을 지키고 싶더라구요. 그러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찍을 무렵 아버지에게 배웠어요. 고등학생이었지만 살을 찌워야 하니 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죠.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업어봤어요. 가볍더라구요."
그렇게 살을 찌워가며 찍었던 '천하장사 마돈나'는 류덕환에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웰컴 투 동막골' 시사 때 누구보다 아버지의 소감을 듣고 싶었어요. 욕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 말도 없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천하장사 마돈나' 때 나즈막히 '잘했다'고 한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키는 한 때 류덕환에게 커다란 컴플렉스 중 하나였다. 키 때문에 연기를 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웰컴 투 동막골'을 촬영할 때 그런 생각이 절정에 달했다.
"그 때 신하균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관객들은 네 연기를 보러오지, 키를 보러 온 게 아니다. 컴플렉스를 떨치는 데 큰 힘이 됐죠. 또 아버지와 싸우면서까지 걸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연기가 내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했죠."
류덕환은 차기작으로 스릴러 영화에 출연한 뒤 학업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공부와 연기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연기겠지만, 현재 자신의 직업은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어요.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워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제가 기초부터 연기를 배우는 걸 원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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