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기남'(감독 김형철) 이야기를 하려면 꼭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간기남'은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고, 본인이 간통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남의 간통 현장을 기다리는 거라고.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한 코미디라지만 결혼한 지 채 다섯달이 안 된 고운 새댁에게는 제목부터 이래저래 부담일텐데, 박시연(33)은 시치미를 뚝 뗐다.
"제목이 좀 자극적이라면 자극적이잖아요. 꼭 더 설명을 해야 돼요. 시부모님이요? 잘 안 물어보세요."
화보 한 장 찍으면 '팜므파탈'이라는 수식어가 제 맘대로 따라붙던 그녀였다. 고양이 같은 눈에 더해진 빼어난 비주얼이 물론 큰 몫을 했다. 더욱이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라 말하길 주저 않는 박시연이 생각하기엔 조금 억울한 수식어였다.
'간기남'은 그런 박시연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작품이 아닐까. 그녀가 맡은 수진은 남편 살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남편의 장례식장에서도 불륜 행각을 서슴지 않는 속 모를 여인이다. 지금껏 박시연이 맡은 캐릭터 가운데 가장 팜므파탈이란 설명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 게다가 파격적인 노출도 있었다.
"팜므파탈,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처음부터 착한 수식어는 거의 없었어요. 나는 아닌데, 그렇다고 변명하기도 그렇고. 어쩔 수 없죠. 보여지는 게 그런 걸. 이번에는 대놓고 팜므파탈 역할이에요. 저는 그래서 더 좋은 게 있어요. 뭐만 해도 '팜므파탈이네' 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찍고 붙는 수식어가 더 좋잖아요."
이 쉽지 않은 캐릭터와 연기가 욕심이 났던 건 재미있는 시나리오와 상대 배우 박희순 때문이었다. 박시연은 처음 받은 시나리오를 자리도 안 뜨고 내리 두 번을 읽었다. 풀었다 조이는 코믹 스릴러의 호흡도 좋았다. 더욱이 상대가 늘 함께 연기해보길 바랐던 박희순이라니 그림이 절로 그려졌다.
도리어 그녀를 힘들게 했던 건 섹시한 팜므파탈 속의 변화무쌍함이었다. "팜므파탈 한 가지만 가지고 2시간을 끌고 가는 캐릭터가 아니었어요. 그 안에서도 연기를 해요. 순수한 척을 했다가, 보호본능도 자극했다가, '이 여자 뭐야' 싶게 했다가. 팜므파탈이네 하는 이미지보다는 그 단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컸죠. 조금씩 변해가는 걸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3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그녀가 수진 캐릭터를 위해 받은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도 수차례. 수진의 성적인 학대 경험, 트라우마에 간접 경험만으로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시연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 준 의사의 도움으로 없는 수진의 과거사까지 그려가며 그녀의 심리, 반응을 이해해갔다. 처음 도전하는 노출신·베드신도 프로답게 마무리했다.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는 감독님, 희순 오빠와 정말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열변을 토해가면서 했죠. 수위도 그렇고 디테일한 하나하나를 맞춰놓고 찍지 않으면 그 때 가서 애드리브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선 정말 한 번에 갔어요. 서로 지켜주면서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준비된 상황에서 했기 때문에 다 촬영하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거나 찜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괜찮았던 것 같아요."
'구미호가족'에서는 섹시한 구미호 딸이었고, '사랑'에서는 처연한 사랑의 주인공이었으며, '마린보이'에서는 마약운반에 연루된 여인이었다. 그녀의 궤적은 '평범한 사람'과는 꽤 차이가 있어 보인다. 취향인 걸까? 박시연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표정의 냉기가 늘 그랬듯 일순에 사라졌다.
"저는 평이한 역할이 잘 안 들어와요. 저도 하고 싶어요. 캔디같은 캐릭터, 순수한 여인. 그런데 안 주시더라고요. 그 안에서 고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죠.
처음엔 그게 싫었어요. 나는 무난한 성격인데 왜 평범한 역할이 안 들어올까. 생각도 많이 하고 고민도 했어요. 이제는 그런 부분은 놨다고 할까요. 관객이 원하고 찾는 이유가 있겠지요. 팜므파탈이든, 강한 캐릭터든 할 만큼 다 하고 나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겠지 해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첫인상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겠다며 앞으로만 내달렸던 데뷔 초. 작품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강박처럼 다른 작품, 또 다른 작품을 찾았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생각도 바뀌었다. 급하게 다른 작품을 찾아가기보다는 하나에 올인하는 게 맞다는 게 그녀의 요즘 생각이다.
"어느 작품을 해서 마음이 변한 건 아니에요. 작품을 대하는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시작하고 나면 너무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도 제 철칙 중의 하나고요. 작품 때문이라기보다 세월이 지나며 제 마음가짐이 변하는 것 같아요. 연기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은 있죠. 스스로도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보신 분들이 더 좋게 봐 주시고요. 하지만 작품 하나로 제가 변하지는 않았어요."
그렇다면 결혼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박시연은 "결혼하니 좋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좋기만 한 신혼의 이야기지만 적어도 결혼이 '배우 박시연'의 행보를 크게 바꾸지는 않을 성 싶었다.
"든든하고 편해요. 남편이 제 마음을 편하게 해줘요. '왜 그랬어'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하라',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라'고 이야기하죠. 저를 또 믿어주고요. 작품에 대한 상의요? 저는 사무실 식구들과 하는데요. 남편과는 충분히 대화를 하려고 해요. 저는 그래서 앞으로도 작품을 쭉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도 얼른 낳아야죠. 빨리 낳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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