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진 결혼이 아까웠다. 지난해 결혼 직전 개봉한 영화 '창피해'를 보고 든 생각이다. 김효진에게 배우로서 전환점을 맞은 작품을 드디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활동영역이 넓어질 수 있을 텐데 결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제약이 따르지 않을까란 아쉬움이 들었다.
김효진에겐 배우라는 수식어보다 패셔니스타란 별명이 먼저 온다. 배우로서 더 많은 재능과 깊은 생각들이 겉보기에 묻혀버린 것 같았다. 김민희처럼 X세대로 주목받았던 배우들에겐 패셔니스타는 숙명처럼 따라붙은 장점이자 올가미였다.
그런 김효진은 결혼을 앞두고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 출연했다. 노출이 심하다, 칸 초청을 염두에 뒀다 등 말들이 무성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김효진은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시나리오에 꽂혀 두말없이 '돈의 맛'을 선택했다.
김효진은 재벌가의 돈과 권력, 욕망이 점철된 '돈의 맛'에서 재벌가 딸로 등장한다. 돈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어머니와 관계를 맺는 김강우를 유혹하면서도 가족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나미 역이다. 김효진은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된 것일까?
-'돈의 맛'에 출연했을 때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고 그래서 노출은 안된다는 조건으로 선택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노출 때문에 캐스팅이 어려웠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내 역에 노출이 없었다. 그래서 노출은 선택에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가볍게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만 꼽혀버렸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과연 내가 전념할 수 있을까란 생각은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빠져들었다.
-결혼 전 개봉한 '창피해'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저예산독립영화라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배우로서 한 꺼풀 벗은 느낌이었다. '돈의 맛'은 배우로서 전환점이 될 수 있단 생각에 선택했나.
▶100% 올인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이게 분기점일까란 생각은 안 한다.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다. 임상수 감독님 영화가 좋았고 처음 만났을 때 말이 잘 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도 처음엔 나를 긴가민가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고 마음에 들어하셨다.
-임상수 감독은 그의 영화처럼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에게 익숙하거나 친한 사람들은 그 솔직함과 잘난 척을 귀엽게 생각하지만. 임상수 감독 특유의 직설적인 영화는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게 오히려 좋다. 좋은 소리만 하는 건 솔직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패셔니스타란 수식어 때문에 배우로서 장점이 가려져 왔는데.
▶내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배우가 되고 싶고 배우란 소리를 듣고 싶다. 하지만 패셔니스타라고 사람들이 생각해주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난 내가 이 만큼 갖고 있다고 드러내려고 하는 성격도 안되고 사람들의 시선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 충격을 준다. 때로는 연극적이고. 그러다보니 감독이 배우들에게 원하는 게 분명해 도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임상수 감독님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고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걸 감독님 어법처럼 영화에서 다 드러내신다. 감독님이 원하는 게 너무 분명해 처음에 어려웠다.
하지만 감독님이 원하는 게 나를 바탕으로 한 것이란 걸 깨닫고 난 뒤에는 오히려 좋았다. 감독님화가 아니라 김효진의 나미화를 추구하셨다. 예를 들어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감독님이 나를 카메라에 담아서 계속 보여줬다. 목소리가 저음이고 소년 같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런 식으로 내게서 나미를 끌어내줬다. 처음부터 임상수 감독님을 흡수하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보니 내가 쉽게 김효진을 연기할 수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백윤식이나 윤여정, 김강우 등 '돈의 맛'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워낙 쟁쟁한데다 찍은 캐릭터들도 워낙 셌다. 그 중에서 나미는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는 역이라 중심 잡기가 힘들었을 것도 같은데.
▶맞다. 다들 워낙 센 캐릭터라. 나는 나미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심을 잡았다. 그러다보니 원래 말이 많진 않지만 이번 현장에선 다른 때보다 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이 가족이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역이었으니깐.
-센 캐릭터들 사이에 있다 보면 좀 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생길 법도 한데.
▶자극은 됐지만 드러내고 싶은 욕망 같은 건 별로 없다. 뭔가를 해서 드러낸다는 게 불편하다. 윤여정 선생님처럼 나이가 들고 싶다. 인터뷰에서 노출이 당황스럽다고 하셨지만 현장에서 얼마나 당당하셨는지.
-영화 속 나미의 욕망과 실제 김효진의 욕망이 있다면.
▶나미의 욕망은 분명하다. 성적인 욕망이다. 김강우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귀엽게 드러낸다. 김효진은 욕망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관심을 갖는 게 마음을 컨트롤 하는 것이다. 뭔가에 집착하면 불행해진다. 욕망보단 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고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

-남편인 유지태도 배우이긴 하지만 같은 배우다 보니 서로 작품에 충고는 오히려 안할 것 같은데. 유지태는 배우든 연출이든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성격이기도 하고.
▶충고보단 용기를 많이 북돋아준다. 그리고 한계를 인정하는 남자는 매력이 없지 않나. 난 자학이 심하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컨트롤 하는 방법을 나도 오빠도 알고 있는 것 같다.
-'돈의 맛'이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는데. 유지태도 '올드보이'로 칸에 갔었는데.
▶내가 칸에 가는 것보다 칸 가는 영화에 함께 하게 된 게 기쁘다. 오빠는 조언보단 축하한다고 해주더라.
-유지태는 영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부부끼리 남편이 메가폰을 잡고 아내가 출연하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들도 해봤을 것 같은데.
▶얼마 전 오빠가 연출한 '산세베리아' 촬영이 다 끝났다. 끝나고 나서 "너하고 (영화를)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어떤 역을 줄건데라고 했다. 부부끼리 창작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정말 멋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상수 감독 영화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려 한다. '돈의 맛' 역시 그럴 것 같은데. 김효진에게 불편한 진실이 있다면.
▶글쎄 '돈의 맛'은 돈과 권력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맞다. 내가 돈 가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돈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권력으로 행사하려는 것 같다. 내게 있어 불편한 진실이란 글쎄, 사람들이 내게 어떤 걸 보고 싶어 하고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맞춰주는 게 싫다. 그리고 굳이 불편한 진실이라고 실제 내가 이래요라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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